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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31. 2019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독자와 작가 사이에서 맺을 수 있는 유일하게 가치 있는 관계는 글을 읽는 겁니다. 


-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 





소설 안의 소설 형식의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그려내는 소설 속 소설가의 두 등장인물 (네이선과 라파엘)을 통해서 '작가'라는 직업의 자신이 '글'과 '독자' 그리고 '작가'를 대하는 시선이 고스란히 투사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됐다. 아니나 다르게 소설 속 문장들은 결국 글과 작가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스터리 추리소설 장르에 버금가는 이야기 구성을 가졌음에도 나는 이상하게도 자꾸만 '글'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 '글쓰기'에 대해서, 그리고 그 글 앞에 서는 '작가'라는 사람들에 대해서.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기욤 뮈소, 밝은 세상, 2019.11.21.



소설 지망생인 '라파엘'의 시점에서 이미 소설로 '성공'이라는 반열에 들어선 '네이선' 은 우상일 것이다. 

한데 그 우상이 '절필 선언'에 들어가고 미스터리하게 '보몽섬' 이라는 곳에 은둔해서 살게 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소설은 자꾸만 나로 하여금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라든지, 그 삶을 지속하기 위한 아이러니한 삶 속 균열, 그리고 '출판'에 대한 생각들 (엉뚱하지만) 마저도 자꾸 하게 만든다.. 




반드시 훌륭한 작가가 되겠다는 내 의지와는 별개로 다시 글쓰기에 착수하기 쉽게 않았다. 내 글쓰기를 마비시키는 건 백지 공포증이나 아이디어 고갈이 아니었다.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막막한 느낌이 내 발목을 잡았다. 더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암울한 생각이 지속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내 글쓰기 작업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했다.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냉철하고 신랄하게 내 글쓰기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




아울러 소용돌이치는 이야기 저 끝까지 파고들 수 있는 어떤... 글력, 끈기, 인내.. 작가라면...



소설은 재밌었다. 

장르 소설의 장점은 속도감 있게 집중하다 보면 스스로 '빠져드는' 그 재미에 계속 찾게 되는 터.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은 그런 면에서 탄탄한 플롯 구성과 미처 예기치 못한 반전 스토리와 등장인물 간의 첨예한 관계의 연결고리들 (여기서 박수 한번! ) 덕분일 테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작가'에 대한 현실적 생각을 자꾸 해보게 되는 건...... 내가 아직도 소설을 쓰고 싶은 어떤 미련이 계속해서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로 산다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 없는 삶이니까. 


작가는 허구한 날 좀비처럼 살아야 하거든. 다른 사람들로부터 유리된 삶이지. 고독한 삶. 하루 종일 잠옷 바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식어빠진 피자 조각이나 씹으며 살길 바라나? (중략) 게다가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머리를 쥐어짜 낸 끝에 겨우 한두 문장을 써냈는데 독자들은 단 일초도 거들떠보지 않고 시큰둥해하지. 작가의 삶이란 바로 그런 거야. 


알맹이는 자네 글에 수분을 공급해주는 수액이라고 할 수 있지. 자네의 영혼을 휘어잡고, 목숨이 글에 달려 있기라도 하듯 일관되게 밀어붙이게 해주는 힘 말일세. 독자들이 글에 매료되어 깊숙이 빠져들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바로 알맹이야. 작가의 머릿속에는 모든 힘과 열정을 불사를 수 있을 만큼 절박한 이야기가 들어있어야 하지. 




작가로 성공했다는 건 어떤 걸 의미할까. 

물리적인 숫자로 통장에 찍히는 인세? 중쇄에 들어가는 횟수? 팬덤이 구축된 일정 수준의 브랜딩 된 작가? 형편없는 글과 짜깁기로 가득한 편집된 글이 가득한 상업 출판 내의 '잘 팔리는 글'을 쓰고도 과연 '작가'라는 수식어를 너무나도 당당하게 거론하면서 자신을 파는 행위를 일삼는 것은 어떨까? 자신만의 독창성과 개성, 사유 하나 없이 남들의 것들을 그대로 옮겨 심어 놓은 듯한 스낵 콘텐츠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작가'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사람은 어떤 글을 쓰고 있나? 돈에 휘둘러지지 않은 고매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가? 작가라는 직업이 자본주의 시대에서 애초에 가능한 것이었나? 이런 생각을 할수록... 어딘지 모르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 한다고. 

저자'와 '작가'라는 타이틀을 여전히 분리해서 사용하는 나로서는,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고행의 시간을 통과하는 이들이 진짜 작가이고, 반대로 부끄러운 글을 쓰고도 아무 반성 없는 이들을 작가로 대접해 주고 싶진 않다. 아직까지도... 그래서 내 마음속에 작가와 저자는 구분되어 있고 나는 그런 면에서 중간의 경계인 것만도 같다. 많이 부끄러워서 새해에는 조금 더 '글' 적인 면에서도 성장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진실을 말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진실은 단 하나뿐이므로. 

그런데 그 진실은 살아 움직이고, 따라서 진실의 얼굴은 변하기 마련이므로. 


- 프란츠 카프카 - 




진실을 말하기란 정말 어렵고도 용기 있는 행위겠지만. 

최소한 이 소설 한 권을 읽으면서 나는 느꼈다. 쓰는 사람의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주기를.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브런치만 봐도........ 그렇다) 



글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조금 더 스스로 말하고 새겨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소설 하나 읽었을 뿐인데 

나의 질문과 생각은 한없이 바닷속을 향해 헤엄쳐 나가 버린다. 

소설 읽기의 장점과 단점이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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