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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07. 2020

하나의 목소리, 두 사람의 기억

 

누군가 사랑하면 외로워져,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이제는 셉티머스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이어지고 그대로 눈을 떴다. 

비어있는 옆 자리를 보니 이미 출근을 한 그이의 빈자리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잠든 첫째 아이가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윽고 둘째를 찾으려 했다. 보온텐트 안에서 토끼과 곰돌이 인형을 각 양팔에 움켜쥔 채 눈을 감고 있는 아이. 그 둘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나는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을 향했다. 말끔히 치워진 적막한 집을 둘러보다가 시계와 눈이 마주쳤다. 새벽 여섯 시, 하루는 이미 다시 시작되어 있었으나 나는 마치 어제의 연속인 양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어떤 생각에 잠시 빠져들고 만다. 



녹초가 되지 않고서야 쉬이 숙면을 취하지 못하다는 건 보통 두세 가지 정도의 이유들 때문이라는 걸 

이미 아는 나이에 차 버렸다. 심히 걱정과 불안에 차오르는 사건과 마주했다던가 (예상된다든지) 아니면 잠을 줄여서라도 해야만 하는 (끝내야 하는) 일이 있기에 혹독한 의지로 잠을 이기려든지, 혹은 하나의 생각에 빠져서 그대로 침잠하다가 시계를 바라보면 어느새 지나가버리는 시간들이라든가. 아마 오늘은 였을지 모른다. 그런 것 같았다. 영문은 뚜렷이 알 수 없었지만. 



영하 10도 수준으로 떨어진 냉랭함에 같이 맞서 싸워주시려는 듯 

친정부모님의 '걱정' 덕분에 아이들의 등 하원이 조금은 수월해진 그제와 어제였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그럴 때면, 즉 누군가의 도움으로 인해 시간과 여유가 조금이라도 마련된 환경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내고자 하는 나름의 악착같음으로 나는 보통 이른 출근을 한다. 조용히 샤워를 마치고 5분 고양이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거울을 보며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남성들의 슈트가 일종의 사회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갑옷 같은 서글픈 무기라면, 여성들의 화장도 그와 비슷한, 아니 조금은 더 비장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하루를 대하는 어떤 비장함...이랄까. 



슬픈 눈을 감추기 위해 대신 진하게 치켜올리는 마스카라라든가 

잿빛 피부를 화사하게 만들어 주는 베이비파우더라든가, 상처 받은 채 굳게 닫힌 입술조차 억지스러워도 즐거움과 기쁨으로 하루를 기분 좋게 새롭게 시작하려는 다짐이라도 하려는 듯 말린 장미 색깔의 진한 레드 립스틱을 바르는 것이라든가. 어쩌면 남성 대비 여자는 언제 어디서든 화장을 무기 삼아 수시로 자신을 지켜내는 갑옷을 착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태어난 것도 꽤 나쁘지 않지 않나 싶었다. 정말 엉뚱하게도 그 짧은 시간에 다분히 섞이려 하는 감정적인 생각과 마주하려 했을 때, '엄마' 하는 목소리로 나를 찾으며 일어난 둘째 덕분에 나는 구원받았다... 



아이 덕분에 감정은 다시 이성이 된다. 양육을 시작한 이후의 감사함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리라. 



- 좋은 꿈 꿨어? 정음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 엄마가 좋아서. 엄마가 안 보여서. 보고 싶어서. 

- 아....



아이를 키우다 보면 스스로 맥이 '탁' 하고 풀려 버리고 마는 순간들과 불현듯이 마주치곤 한다. 

그것은 무장해제.... 마치 나로 하여금 어떤 목소리는 그대로 눈물을 툭 하고 흘리게 만든다든가, 혹은 화사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거나, 온갖 불투명한 미래와 불안한 감정을 그대로 묵살시켜버리고 만다. 오늘 새벽 둘째의 그 짧은 '고백'으로 하여금, 요 근래 회사에서의 불투명한 고용 불안과 작아지는 자신감, 현실적인 고민들과 미래의 대안들 등등으로 인해 적잖은 우울감을 품으며 살고 있었지만. 그 감정들은 모조리 '무장해제' 당하고 말았다. 아이의 목소리 덕분에. 



일시적 무장해제. 한 없이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그 사랑.....그 깃털 같은 사랑....이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한 때의 내 목소리도..



엄마가 좋다던 문장을 이제는 누군가에게 듣는 객의 입장이 되어 살지만 

사실은 한 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나는 순간 나의 '좋은 대상'을 떠올린다.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를 내며 그릇을 정리하는 여성... 아주 오랜 과거의 시절, 그녀의 껌딱지로 살았던 탓에 일을 하는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잠 못 드는 시간이 많았으리라. 이런저런 이유 탓에.... 지금은 쌍둥이들의 할머니로 갖은 욕심 덕분에 월급 버는 일과 돈 안 되는 일을 동시에 움켜쥐는 엄마가 되어 버린 누군가를 못마땅해하시면서도 반대로 그런 '딸'의 휘청거림을 곁에서 같이 지켜내려는 여자...



결국 한 사람의 목소리는 그를 둘러싼 또 다른 두 사람의 기억으로 내게 다가왔다. 

'우리'가 되어 버린 엄마와 나, 그리고 나의 아이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자의 나이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시간에 맞춰 마음을 서로 연결시키며 이 시절을 산다. 동시대에 따로 또 같이 살아 있다는 것에 한번 더 이상한 뭉클함에 심취되고 만 나는 그대로 '엄마가 좋아서'라는 말을 건넨 아이를 꼭 끌어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영롱한 반짝거림을 우리는 닮고 또 그렇게 계속 닮아간다..나는 아이를 키우며 그들을 닮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그 순수함을.



진절머리 나는 현실로부터 구원하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이런 '고백' 들일 것이라고. 

고맙다거나 사랑한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결국 '좋아'라는 그 단순 명쾌한 투명함 속에 담긴 진심의 목소리는 내내 기억될 것이다. 살면서 진흙탕에 빠져서 너덜너덜해진 자신과 마주하다가 눈물 흘리고 좌절하는 순간이 다시 찾아올지언정. 그 시절 나를 구원하려는 듯 찾아온 목소리는 바로 그런 것들일 것이라고. 



어떻게든 나를 일으켜 세워 나아가게 하려는 사랑의 목소리... 

어떤 문장으로도 쉬이 그 고마움이나 물렁해질 정도의 감동을 포착해서 붙잡아둘 수 없을 테지만, 기억의 단편 하나만큼은 이렇게 남겨서 힘들 때 꺼내볼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어떤 발악질을 해낸다. 



사랑할수록 커지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감춘 채로... 글을 쓰는 나를 발견하고 만다. 



너희 둘과, 나의 그녀와, 동시대를 흐르는 지금 이 현재가 나에겐 '헤븐'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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