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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15. 2020

그만두면 대신할 누군가가 나오니까

일곱개의 회의 

회사에 필요한 인간 같은 건 없습니다. 그만두면 대신할 누군가가 나와요. 

조직이란 그런 거 아닙니까. 


- 일곱개의 회의 - 





'꽃' 같은 조직 혹은 그룹과 같은 팀이 있는 반면에 '지옥' 같은 곳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양면성' 을 지닌다. 우리라는 인간 내면 안에서도, 한편으로 그런 우리들로 구성된 조직 생활 내 '그룹' 안에서도. '일곱개의 회의' 를 읽으면서 아주 순식간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던 건....사실 '나' 때문이었다. 나의 상황이 소설 속 인물들과 아주 동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 또한 그 등장인물 중 한 명으로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되었기에... 



일곱 개의 회의, 이케이도 준, 비채, 2020.01.20.



소설 속과 같은 사건 사고가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없다고도 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지극히 현실 오피스에서 일어날법한 모든 인간상들이 대조적이면서도 한번쯤은 우리가 회사라는 일터 안에서 스치듯 만나봤을 법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 편의 챕터 마다 따로 떨어진 이야기들 같지만 그것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 되어 있으면서 연결이 되다보니 그래서 더더욱 이 소설에 '몰입도' 만큼은 가히 역대 최고급의 이케이도 준의 오피스 소설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한자와 나오키' 보다 훨씬 더 좋았을 만큼. 




과장이잖아. 말 안 들으면 다른 데로 날려버리겠다고 확실히 말해주면 돼


그거야말로 직장 내 괴롭힘 아닌가. 


이제 이 회사에 제가 있을 곳은 없습니다. 퇴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핫카쿠가 사카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는지, 왜 기타가와가 사카도를 경질하려 했는지, 왜 임원회의가 그것을 승인했는지. 이제 전부 이해되었다. 




결국 일은 '사람' 이 하는 것이라 어쩌면 그 사람과 상처를 주고 받고, 한편으로 사람에게 위로를 느낀다. 

그래서 불완전하고 불안한 게 어쩌면 '인간' 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인간들의 '일' 이라는 것 또한. 현실에서는 있어빌리티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오피스와 브랜드, 네임드 회사라고 할지언정.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는 어디에나 있다는 걸 넌지시 상상해볼 수 있게 만든다.



대기업, 중견기업, 하청업체, 그 안에서 또 나뉘는 직급과 계급층들

이해할 수 없는 회사의 논리와 납득하지 못하는 부조리는 누군가에게는 상식이고 합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소설 속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 그 안에서의 첨예한 조직 인간 관계 속에서 서로의 생존을 위해 각자의 입장과 자리에서 은폐와 폭로를 해내는 양극단의 인물들을 통해서 내심 알게 된다. 




화려한 실적은 과연 무엇으로 지탱되었던가. 핫카쿠는 회사라는 조직의 추악한 무대 뒷면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이다. 이제 그 무대 뒷면을 지탱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네 인생을 개척하는 건 너 자신이야.  아버지 말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여기에 개척할 만한 인생이 있을까? 하라시마는 자문했다. 지우기 힘든 깊은 피로가 느껴졌다. 


배 속에서 밀려 올라온 패배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대체 뭐란 말인가. 이딴 회사 기필코 그만둘 테다. 하지만 동시에, 요즘 같은 경기에 이직이 쉽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닛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중략) 


송별회는 역 앞 술집에서 소소하게 열렸다. 혼자 오사카로 떠난 닛타는 석 달 뒤, 아내와 이혼했다. 




최소한 일터에서 종사해본 이들이라면...  

질책과 비난만 받기 일쑤이기도, 한편으로 정치가 승부수인 자와 대결하다가 쓰러지기도, 그에 맞서 힘겹게 변명이라는 것을 하려해도 쉽지 않다는 것에 공감하실 지 모르겠다. 조직의 쓴맛이란 어쩌면 감추는 사람과 드러내려는 사람이 공존하기에, 이기적인 사람과 한결 같이 배려하는 이타적인 사람들이 대립되기에, 조용히 칼을 갈며 기회를 노리는 자와 소란스럽게 빼앗으려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기에, 고통스러움을 감수하고 적폐의 현장을 정면직시하는 자와 비겁함이라는 감정을 숨긴 채 힘겹게 외면하는 자가 있기에. 그래서 '일터' 는 그리 달콤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는 것. 어쩌면 '일' 을 함에 있어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서' 이런 고통과 번뇌의 연속이 맞닿는 건 아닐까 싶고... 



같은 공간 다른 사람들의 공존....그것은 일터



.

소설은 소설이지만 어쩐지 나는 이 이야기가 비단 소설 속에서만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 아니라는 느낌 때문에 내내 꺼림칙한 무엇을 버리지 못하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의 문장 하나만이 내내 마음속에 닿았다. '나' 때문에....



곧.... 퇴사를 앞두는 '나'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인생이 기다리고 있든 이제 과거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어떤 길에도 미래를 열어줄 문은 분명 있을 테니까. 





덧) 하필 이 시점에 이 소설을 읽게 될 줄이야. 이건 운명의 '타이밍' 이던가 아니면...

그냥 '우연' 의 일치일까. 그 무엇이든 

나는....... 읽는 이 시간에 그저 감사할 뿐이노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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