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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28. 2020

어른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퇴사 D-1

아픔이란, 가슴속에 간직하고 죽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퇴사의 과정을 순식간에 치르면서

나는 이 또한 '어른' 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라는 문장이 보이자, 잠시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 순서 없이 뒤죽박죽 일터에서의 몇몇 선명한 장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팠고 힘들었지만 한편으로 고맙고 좋았었던 날들...'일'을 하면서 '성장'이라는 것을 하고 그로 인해 조금 더 '어른' 이 되어갔던 노동의 시간들이 조용히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아픈 기억만 조금 더 선명하게 남는다. 왜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회사에서는 '출퇴근'이라는 당연한 행위 앞에서조차 마음이 무너지는 시간이 많았다.

감정도 감수성도 조금 더 예민했던 나였으니 모두 '내 탓'으로 결론을 맺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고 말았을 때의 감정이랄까. 누군가에게 철저히 '미움받는 대상' 이 되고 있다는 자책감과 억울함, 그로 인한 우울함과 자신감의 하락은 계속해서 '미움받을 용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마는 나를 만들었었다.



온갖 주홍글씨를 달고 살았다.

유부남 꼬시는 홍일점 신입사원에서부터 꽃뱀, 상간녀, 지 할 말 따박따박하는 재수 없는 여자애, 남편 방패막이 삼는 소름 끼치는 동료, 도둑년, 이혼, 시댁 욕이나 하면서 회사 놀러 다니는 철판녀 등등. 직장인들의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나, 하다못해 건너 건너 직간접적으로 듣게 된 '나'를 정의했던 타인들의 단어는 그러했다.



멍 때리고 싶었던 날들이 많았던 건, 마음의 멍이 가득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여자의 적이 여자가 아니기를 바랐고, 여전히 바라며 살지만

때로 '여적여' 라는 그 비루한 단어는 일터에서 만큼은 때로 몸서리칠 정도로 맞다는 것 또한... 같은 젠더를 향하는 그 무쓸모하게 비뚤어진 인간 본성의 이기심과 시기 질투라는 감정은, 일종의 '잘난 사람 패널티' 같은 걸까를 엉뚱하게 생각하게 만들곤 했다. '남초' 회사였던 나 또한 이랬는데 '여초' 회사는 오죽할까 싶었고, 그런 회사에서 일을 하다 그만 둔 소수의 여자 친구들의 사연을 들으면서조차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를 헐뜯지 못해서 혈안이 되어 있을까 싶고. 한편으로는 난 그리 잘난 사람이 아닌데, 소위 '연예인급' 이 아닌 초평범 일반 여성인 내가 왜 그렇게 그녀들에게 한편으론 그들에게 저격 대상이었을까라는 정말 이제와서 쓸모 없는 생각마저 다시 서리려 한다.  



(졸라 연예인급으로 예쁘게 태어났으면 억울하지나 않았...내 향수 내가 뿌리는데 사주지 못할 망정 뭐 그리 불만들이...애 엄마는 향수도 못 뿌리냐 화장도 못하냐 꾸미면 안 되냐 니가 일 하는데 왜 남의 일상 거들먹거리며 불편한 탓을 하냐 바르고 쓴 소리 하면 다 꼰대냐 애 엄마는 화장 하면 안되냐 니들이 쌍둥이 키워봤냐...그 사람의 삶으로 살아보지 못하는 것들이 말은 참 많고...한편으로 나도 미혼 시절의 치기 어렸음을 반성 아닌 반성을 하며...)  



온갖 표식과 뒤에서 수군거리는 그 표딱지들을 나는 '모른 척' 하고 그냥 '일'을 하려 했다.

회사라는 곳은 '일'만 하는 곳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회사에서 일을 하는 어른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깨달았던 것 같다. 사실 일터가 힘든 이유는 '일' 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대하는 '나' 때문이라는 것 또한. 원래 '회사'라는 영리 집단뿐 아니라 사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이라는 걸 부여받고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 순간, 당연히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진리'도.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조롱하기 일쑤인 사람들을 겪으면서

물론 그 또한 '성장'의 계기가 되어 준다고는 하나, 어쩌면 자기 합리화하듯이 나를 달래는 수순일 뿐, 사실 피할 수 있다면 쓰레기나 똥은 피하는 게 맞다. '활용' 하지 못할 바에는. '나'를 진정 모르면서, 그들이 알고 싶은 '나'를 멋대로 포장해서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 버리곤 했던 그 시간들 때문에... 그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하마터면 같이 시들 뻔 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나중에 더 해 주리라...




'아빠' 때문에, 아빠의 말 덕분에.

 20년 이상을 근속했던 회사에서 IMF 직후 갑자기 퇴사를 해야 했던 친정 아빠였다. 4인 가족의 '생계'를 짊어져야 했던 그에 비하면, 감정을 철저히 숨겨야 그나마 살아지던 그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일터에서의 나는 정말 별 거 아닌 일들이었을 텐데...



회사를 다니며 힘들 때마다 끊임없이 '노동' 하는 두 노동자를 생각하며 버텼다.

생계를 책임지는 주 임금 노동자인 아빠와, 댁내 살림 관리와 동시에 주 임금 노동에 보탬이 되려 늘 부수입을 불리려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위치에서 일을 계속하려 했던 친정 엄마... 그 두 사람을 생각하면 어딘지 모르게 스스로 반성이 되고 힘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슬퍼진다. 아울러 사회 초년생 때, 그냥 '무섭다'라는 감정마저 느껴졌던 그 일터에서 아무 대책 없이 탈출하려 했던 때 아빠가 소주 한잔을 털어 버리며 해 주셨던 그 말을... 나는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어찌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아빠의 슬픔을 알아버렸던 밤,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알아버렸던 시간, 내가 너무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부끄럽게 깨달았던 밤을.



- 혜원아, 어딜 가도 널 미워하는 사람들은 계속 있을 거다. 도망치면 또 도망치게 돼. 버텨봐라. 그럼 네가 이기는 날이 올 거야. 지금을 후회하면 안 된다.



아빠의 말은 맞았다.

계속해서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한 때는 도무지 화가 나고 억울해서 영문을 알고 싶었지만 이젠 영문 조차 따지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의 사연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자기 마음 편하자고 남을 함부로 비난하거나 조롱하거나 희롱하는 것이 습관이고 일상이 되어버린 이들은 결국 타인의 불행을 먹고사는 더 불쌍한 인간들이라는 걸...'어른' 같지 않는 몸만 어른인 이들의 특성을 알게 되었으니까. 한편으로는 그들 덕분에 감사함 마저도 생겼다. 어떤 교훈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줬으니까.



회사라는 곳에서는 어떤 '감정' 들을 숨기며 지내야 한다는 것을, 절대 '틈'을 보여서는 된다는 것을.

나는 수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옅게 나를 괴롭히는 '일터'의 장면들은 실상 그리 달갑게만 기억하게 만들지 못해서 한편으론 안타깝고 그래서 슬프지만.



퇴사 D-1 일

'퇴사' 덕분에 그동안 일터에서의 주고받았던 어떤 관계 정리가 아주 쉽고도 선명하게 되었다. 남는 사람과 남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믿고 좋아했던 사람과 때로 그 사람에 대한 정의는 철저한 내 어리석은 착각이라는 것 또한.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아주 쉽고도 선명히 누구에게 더 에너지와 시간과 마음을 쏟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게 되었다.



순식간의 퇴사는, 마지막까지 큰 교훈을 남긴며

일터에서의 '어른'의 시간이 이렇게지나가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다시 새순은 피어날 것이다. 삭막한 나뭇가지같은 환경 속에서도. 악착같이. 생명은..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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