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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28. 2020

퇴직원을 내고 회사를 나오던 날  

퇴사, 디데이.

모든 작가들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설사 그들이 외면적으로 아무 일도 없는 듯한 삶을 살았다 해도 그래.  


-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






전사적으로 재택근무가 시행되던 날

자리에 없을 줄 알았지만 부재가 아니라던 '퇴직원 사인 담당 창구' 직원들에게 마지막 사인을 받으러 회사로 갔다. 사내에서 쓰던 노트북을 반납하며 IT 담당자에게 찾아갔을 때 그의 곁엔 꽤 많은 데스크톱과 노트북들이 놓여있었다. 퇴사자는 나뿐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알 수 있었다. 나뿐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신입사원 시절부터 마지막까지, IT 적인 문제가 있으면 늘 찾는 분이었고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에서 진심이 과연 전해졌을까 싶지만 그는 내 마음을 아신 듯 '수고하셨다'는 말을 보태주셨다. 고마워서 마음이 또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한마디가 정말 고마워서.



법인카드와 임직원 출입카드, 그리고 사무실 전화기를 반납하기 위해 업무지원팀을 찾았다.

그녀들이 있는 12층은 나름 여러 사내 '직장인 잔혹사'를 불방케 하는 소문의 근원지이자 '말 많은' 곳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스크를 쓰며 묵묵히 일을 하는 그녀들에게 또한 인사를 건네고 싶었으나, 막상 고맙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녀들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시종일관 바쁜 듯, 앞에 사람 두고도 모니터만 보고 있던 그녀들이었기에.



기계적인 반응의 형식적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던 냉담함 덕분에.

당신들도 언젠가 현재 내 입장의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녀들이 알까 싶다만, 그동안 업무 지원 잘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은 그냥 삭히기로 했다. 사실은 여전히 친절하지 못하다고 '끝까지' 생각하게 만들었으나 그들의 친절과  친절의 '기준' 은 결국 다른것 뿐, 그냥 그러려니 싶었다. 좀 전의 IT팀 직원분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팀 팀장님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는 부재였고 퇴직원을 조용히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때 옆 파티션에 계셨던 다른 팀장님이 선뜻 인사를 건네주셨다. 그녀와 눈이 마주했다. 오래전 나를 알아줬던 그녀는 팀장님이 되셨고, 나는 그런 그녀의 '힘' 이 회사에서 조금 더 커지기를 바랐다. '여성' 으로서의 어떤 응원이었다...



- 아.. 왔어요?

- 네. 조용히 나가려고 퇴사 인사 메일도 일부러 안 보냈습니다.

- 그래요.. 수고했어요

- 감사... 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조용한 울림과 떨림이 다시 전해졌다. 오랜 곳과의 마지막이 주는 무언의 감정들일까.




12층에서 2층으로 내려와 복도를 지났다.

복도에 걸려 있는 멋진 그림을 보자마자 나는 결국 끝내 아까부터의 울렁거림을 삭히지 못하고 눈물이 눈에 고이는 걸 참지 못했다. 그 그림은 '출근길의 주문'을 외우게 만드는, 나를 지탱하는 '한결같은 것' 들 중 하나였다. 회사라는 곳에서 아주 희소한 한결같음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서 잠시 아이들을 봐주시고 계셨던 친정부모님들을 귀가시켜드렸다.

두 사람을 보면 금방이라도 엄청난 후회와 아쉬움과 억울함과 분노와 연민과 알 수 없는 감정의 교차 끝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다시금 흘릴 것만 같아서. 일부러 서둘러 집에 보내드렸는데 두 분은 그것이 못내 아쉽고 서운하셨나 보다. '너 생각해서 왔는데 다시는 안 온다'는 메시지를 남기셨다. 마음이 아파왔다. 난 여전히 못난 딸인가 싶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마지막 날까지도.



퇴사, 디데이.

퇴직원을 제출하던 비 내리는 오늘. 코스피와 다우지수는 폭락했다. 보유 종목들의 새파란 마이너스들, 차가운 빗방울과 좀 전에 느꼈던 퇴사자를 대하는 몇몇 일터 사람들의 냉소적 반응들, '권고 퇴사'와 꽤 적절한 조합 같기만 했다. 상승장을 기대하는 마음과 동시에 사실은 뭐랄까, 처음 겪는 것들이 다가온 것만이 넌지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고정 임금 대신 변동 수입이, 직장인 말고 프리랜서라는 처음 겪는 세계가.  



새로운 세계에서는 어떤 분투력이 조금 더 앞서려했다. 더 잘 살고 싶다는 진한 다짐이. 보란듯이 잘살아야겠다고..더욱.




나는 아마도 이 시간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나쁜 기억' 이든 '좋은 추억' 이든 한 장소에서 나이를 먹어가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겪어 내린 무수한 시간들을. 아울러 퇴사라는 과정을 통해 선명히 남는 일터의 교훈들도 함께. 내가 사랑이라고 감히 정의 내렸던 회사를 향한 착각과 집착으로부터도 홀연히 벗어나게 만든, 이 강제적 자유를 당분간은 천천히 조금씩 만끽하려 한다.



훗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것이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게 만들어 준, 하나의 불꽃같은 트리거였다고.

프리랜서의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다고도...




출퇴근길의 주문을 외우던, 고마웠던 곳...



2008년의 편지는 2020년이 되어서야 출입카드에서 빠져나왔다. 고마웠어...많이.



몇 권의 책은 점심시간의 이곳에서 탄생되었다. 감사하다....



#퇴사 끝

#시작 프리랜서,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일단 백수 도비!  

#수고했다....헤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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