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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05. 2020

정답 없는 인생의 길목에서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인생의 관문에는 그런 정답이 없습니다. 

저마다 다르고, 때마다 다른 답이 있을 뿐, 

실은 그것이 정답인지조차 확인할 길 없는 게 인생입니다.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너무나도 잘 읽은 터라

이번 신간도 너무나 기대했었다. 그리고 장담하고 싶을 만큼 이 책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두고두고 보시라고 선물 드리고 싶을 정도의 '명문장' 이 가득했으며, 역시나 싶을 만큼 각 챕터 별로 인문학적 사고와 인간애가 느껴지는 구절이 가득해서 읽는 내내 정말이지 천천히 읽고 싶었다. 순식간에 읽고 싶지 않았을 만큼, 재독을 두고두고 각 부분 부분마다 하고 싶을 정도로...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인플루엔셜, 2020.02.25.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부모' 와 '일' 그리고 '사랑'에 대한 생각이 가장 깊게 남았다. 

특히 변변찮은 밥벌이여도 그 밥벌이를 유지하려는 '우리' 들은 얼마나 가상한가를.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헐뜯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그 밥벌이 연장하며 사랑하는 사람들 지켜내는 모두는 사랑받아 마땅한 귀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새삼 여러 책갈피 속 문구들을 필사하면서 또 어떤 삶의 철학들을 다시금 되새겨볼 뿐이다. 




삼시 세끼 때를 놓치지 아니하며 밥을 먹고, 그 밥벌이를 위해 종일토록 수고하고 땀 흘리는 우리들. 그것은 지겨운 비애가 아니라 업의 본질을 엄숙하게 지켜가는 저 성스러운 수도승에 비겨야 할 일이 아닐까요. 

p.35


일이냐 삶이냐 문제는 그 둘 간의 조화와 균형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인생을 일과 삶의 대립으로 간주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한 것, 어차피 일도 인생이고 삶도 인생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을 사랑하는 자는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편애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59

p.59



생업과 노동...밥벌이와 돌봄은 그렇게 닮아있다.




퇴사 후 아이 돌봄이 우선이 되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일'을 버리지 않는 나에게 

이제는 모든 '일'을 하는 이유는 다시금 선명해졌다. 결국 그 '아이들' 과 '가족' ... 사랑하는 '그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는 것. 따라서 그들을 향한 나의 헌신적 돌봄, 때로는 좌충우돌로 인한 우울들, 그 모든 시간 속 감정들조차 담담히 쌓아내려가는 '지금'이라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너를 돌보며 내가 자랐다'라는 말을 훗날 후회 없이 할 수 있도록. 




자녀에 대한 사랑과 돌봄도 그러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녀가 즉시 곧바로 변하길 기대한다면 로봇을 사십시오. 반려동물도 그러지 못합니다. 변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잔소리하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집착의 징표입니다. 

p.79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마음과 의지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육아든 봉양이든 돌봄은 시간과 비용의 허용 범위 내에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비용을 대려면 직장을 다녀야 하고 시간을 맞추려면 직장을 관둬야 하는 갈등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안타까운 장면을 두고, 요즘 사람들은 이기적이라든가, 자식 다 소용없다든가 하는 말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중략) 돌봄이 여의치 못한 상황이라면 원망보다 연민을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님이 오죽하면 저러실까 이해해야 하고, 부모는 자식의 속앓이 걱정하며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p.97




가도 가도 긑이 없는 길... 어쩌면 그 길을 가는 '일' 또한 축복은 아닐까. 갈 수 있는, 가고 싶은 길이 있다는 의미일테니..




혼자 살아가기가 퍽 쉽지 않은 사회적 동물이 바로 인간이라 하지만

반대로 '개개인성'을 놓치고 살면 아무리 단체 속 1인으로 사는 걸 받아들인다 한들 그 또한 개인과 다수 속의 나의 적절한 절충이 없다면 결코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또한 인생이겠지 싶다. 다시 말해 '관계'의 윤활함이 필요하다는 것일 텐데. 그런 면에서 작가님의 현답은 마음에 두고두고 새겨두고 싶을 정도다. 




대상에 대한 적당한 거리와 시간의 간격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너무 일희일비하는 것은 마음 건강에 해가 됩니다. 자중자애할 수 있도록 여유를 부여해 줘야지요. 그러려면 너무 잘하려는 마음을 조금은 버려야 합니다. 지금은 조금 못할 수도 있고 조금 우울하거나 불행할 수도 있다고, 어차피 정답은 나중에서야 알 수 있는 거라고, 조급한 마음 내려놓고, 다그치지 말고 다독여야 합니다. 153

p.153


가면 속의 자아는 쉬지 않고 묻습니다. 너는 누구냐고.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느냐고. 이 질문을 거듭하며 예술가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통합한 인격체로서 성숙해가는 것이죠. 즉 시인의 개성은 타고난 자연조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형성해내고 초월해내는 과정에서 획득하게 되는 선물인 겁니다. 

p.270




여러 역할극을 해나가는 와중에도 나는 '자아'에 묻는다. 

잘 살고 있냐고, 잘 흐르고 있냐고. 그래야만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고 계속 신념을 지키며 초심을 거듭해볼 수 있어서. 흔들리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비록 흔들림에 아파할지언정, 지금 가는 그 길에 스스로 믿음마저 흔들리지 않기를 나는 감히 바랐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넘칠 정도의 감동은 책을 덮은 내내, 하루가 지나도 이렇게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는 것처럼....  감사하다.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지금의 이 시절이. 



계속 나아가보는, 건너가 보는 힘... 그건 독서에서 나온다. 요즘도 변함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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