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의 거리, 그때도 함께였었다고.
임시 처방은 결국 오래 못 가.
삶이란 약간의 시간과 많은 관계를 요하니까.
자신의 고통만 볼 때 날 못 보는 법이네.
- 오두막 -
직장을 다니며 쌍둥이들을 키워내던 시절은
평일이면 무려 10시간의 거리로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되도록 출근 근태는 지키려 했던 스탠다드에 융통성 없는 나 때문에, 피해를 본 건 어쩌면 쌍둥이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갓 걸음마를 떼고 돌이 지났을 때부터 바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던 아이들은 언제나 1등 등원 꼴찌 하원 신세였으니까. 늘 죄스러움과 미안함과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했던 직장 생활이었다.
어떻게 지켜왔는데.
그 생각 때문에, 씩씩하게 생활을 유지해나가는 일상에서도 감정은 종종 널뛰다 눈물로 변하곤 한다.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치도 않았을, 멀리 떨어져 보면 그리 보잘것없을지도 모르는 커리어였는데. 그걸 유지한답시고 아이들 고생을 꽤 많이 시켰다는 걸 생각하고 마노라면. 나는 퇴사를 '당한' 지금에서야 조금씩 느끼곤 한다. 그때의 10시간에 비하면 이제 반 이상으로 등 하원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아이들과의 스치는 대화들은 여전히 나를 콕콕 쑤시곤 하니까.
- 어린이집 가기 싫어
- 왜 가기 싫을까?
- 안 가. 엄마 미워!
- 요즘은 매일 미운 오리네 엄마가...... 우리 가지 말까?
- 안 가도 돼? 엄마 출근 안 해?
- 음... 해 (집으로... 돈 (아직은) 못 버는 출근을..)
- 어차피 보낼 거면서. 엄마 거짓말쟁이. 맨날 일찍 온다 하고선.
-.... 이제 일찍 가잖아. 예전보다 훨씬 일찍 보잖아.
- 엄마가 없잖아. 어린이집 가기 싫어.
-..... 미안해. 그래도 우리 떨어져 있어도 같이 있어.
- 없는데 뭐가 같이 있는 거야. 엄마는 그것도 몰라
- 그러게... 그것도 모르네.... 눈 앞에 없는데 같이 있을 리가 없네. 그래도 가자. 오늘만 가면 내일은 아빠랑 놀 수 있어.
- 싫어!
아이들은 10시간을 어떻게 버티고 있었을까...
그 생각을 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코끝이 시큰거리고 두 눈엔 이미 눈물이 한가득 고여 버리고 만다. (지금처럼...) 하물며 그 10시간도 버텼던 아이들인데 5시간가량으로 급격히 줄어든 요즘은 즐거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뭐랄까. 아예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떼로 인해 적잖은 '아침 전쟁' 이 시작된다. 회사를 다니나 안 다니나 누군가를 보살핀다는 것은 매 마찬가지로 복합적인 죄스러움을 선물하곤 한다. 빈도의 차이일 뿐...
코로나라고 하는 빌어먹을 중국발 감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상 패턴 습관 형성 및 양육환경으로부터의 아주 잠깐의 탈출(?)을 위해 등 하원 가능한 상태라 당차게 보내버리고 마는 매정하고 무정한 '엄마' 소리를 자청하더라도... 이런 내가 때로 참 못마땅하고 스스로도 가끔 이해 불가할 때가 많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성향의 사람으로 살아보고 있는 것을.
우린 그때 함께 있었다고.
나는 그래도 계속해서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5세 아이들이 그 마음을 알 턱이 없고, 다만 내 마음 편하자고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문장을... 그래도 오늘은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다. 임시 처방은 오래 못 간다 했는데 정말 임시 처방 격인 발언임에도. 그 문장을 말하는 순간, 조금 더 내 사랑이 너희 둘에게 닿을 것 같아서... 보이지 않는 '사랑' 은 언제쯤이면 그들 마음으로 하여금 보이게 될까... 시간은 결국 답이 될까. 회사를 다녔을 적에도, 심지어 퇴사를 했음에도. 마음이 아파오는 건 왜 여전한 걸까. 너희 둘을 생각하면 왜 난 자꾸 눈물이 날까.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때때로 우울해지고 때로 눈물을 흘린다.
사랑이 흔적을 남기니 그런가 보다 한다.
너희들과의 사랑이 지금의 흔적으로 기억되니 그러는 것이라고.
나의 친정 엄마가 그러했을 때처럼.....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