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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13. 2017

29. 기념일

결혼을 기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직까지는 유효한-)  


‘도무지 불공평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아침 출근 길에 듣게 된 볼 빨간 사춘기 속 이 노래 가사가 유독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 그와의 짧은 대화 속, 서로 연결된 긴 감정 싸움 탓일 지도 모르겠다.   


6년이 흘렀다.   

 이틀 밤을 지내고 나면 나는 꽉 찬 6년차 그의 아내가 된다. 예전 같았으면 결혼기념일을 은연중에 기대했을 나였겠다. 신혼 시절에는 약 한달 전부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디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설렜으니깐.


 적잖이 이런 여자와 사는 삶이 피곤한 그와는 달리 나는 피곤하지 않았다. 그러니 즐길 수도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와의 시간을 추억하는 건 나를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멋진 장면을 함께 하고 싶은 대상과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건 살아있는 '기적'일 수 있다... 그치 그래서 우리 둘은 기적이라고..



기억하고 싶은 대상과의 시간은, 되도록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좋았던 과거를 붙들고 사는 애쓰는 여자. 그게 나였다.   


 과거가 좋은 기억으로만 가득하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문제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튼 그 좋은 과거의 느낌을 현재로 타임리프 시키려고 애쓰는 여자. 그래. 나는 부단히 애를 써온 바보 같은 여자였을 지도 모르겠다.


 왜 바보냐고? 사랑을 지킨다는 핑계로 사실은 제멋대로 마음과 시간을 다 줘버리곤, 결국 제멋대로 바라다가 그 바람들이 다가오지 않았을 때 털썩 주저 앉고 마니깐, 나는 내 스스로 바보를 자처한다.


 6년 중 1년은 바보인 줄 몰랐고, 2년차는 바보인가 싶었고 3년차는 바보로 그냥 살았고 4년차는 바보가 억울했고 5년차는 바보 따위 생각할 겨를 없이 아이를 낳아 길렀고 6년차인 현재는, 바보인가 아닌가를 되묻고 있다.

 

애쓰고 싶지 않다.   

 시간을 애쓰지 않고 그저 흘러가보기를 결심한 순간, 명상과 글쓰기에 조금씩 근육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꽤 괜찮은 삶을 지금 살고 있구나 라고 스스로를 위안 삼을 줄 아는 혜안이 길러졌다고 믿고 있었다. 대화 전 까지는.

 

 아직도 마음에 있는 내 생각을 거침없이 그것도 앞뒤 맥락 없이 갑자기 던져 버리는 비상식적인 여자인 나는, 상식적인 앞뒤 논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길 바라는 이성적인 남자가 내 옆에 그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말았다.   


아이 등원을 오랜만에 함께 시키고 신랑의 차를 얻어 타고 회사에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기 내가 뭐 좋아하는 지 알아?”  
“갑자기 또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남자들의 흔한 패턴을 알고도 물어봤다. 난 바보다.   


“아니 그냥 ...궁금해져서. (손편지는 또 엎드려 절 받기겠다)   
“아 참 나 오늘도 저녁에 뭐 약속 있네. ”  
“아… 나 오늘 듣고 싶은 원데이 클래스 있었는데….”  


 억울이라는 감정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냥 시간을 계속 양보해야 하는 상황과, 쓰고 읽는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를 체감할 때. 나의 욕망은 그와는 반대로 항상 중첩된다.   


욕망과 현실이 부딪히는 순간 나의 슬픔은 결국 나를 끌어 안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원한 게 아니라 전무님이 부르시고 다른 팀장들도 참석해. 나만 빠질까?”  
“알겠어. 대한민국. 여자. 일하기 힘들어. 하고 싶은 것도 쉽지 않아 정말. 남자인 자기보다 최소한”  
“내가 언제 양보 안 했어?”  
“응. 했어 양보. 근데 언제든 양보 할 때 핑계 댔어.
양보 받아도 불편하게 했어. 지금처럼.
그 말 듣고 양보 받는 시간 내내 가시방석이야. “  
“그만하자”  
“어제 저녁에 자기 주려고 가디건이랑 셔츠 사면서 기뻤어. 나 그런 아내야. 알고 있어?
아침에 술 먹고 힘들어 해서 워크샵 돌아온 당신에게 라면도 주고 싶었어. 그래서 했어.
계란 넣고 파 넣고 오뎅 넣고 떡 넣고 다 넣어서.
그게 자기가 좋아하는 걸 아니깐.
“이런 실랑이 할 거면 하지 말지 그랬어"
“손 편지. 글쓰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바라도 자기한테 받는 게 쉽지 않아.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그것 (손편지) 좀 그만 강요하면 안되?”  


 강요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아, 이 대화는 애초부터 망했구나 싶었다.


 사실 이미 내 서글픔은 차오를 데로 차 올랐기 때문에, 그리고 이 남자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에게 부정하고픈 대상, 그 이상도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물론 의미 없이 그냥 내뱉은 단어일 지 모른다. 그러나 내 남자의 오늘 대화는 대상을 잘못 골랐다. 그것도 한참. 가뜩이나 소설을 다시 써본다고 읽고 쓰며 감수성이 오를 대로 차 오르고 있는 요즘의 내게 말이다. ‘강요’라는 단어 하나에서 난 수 많은 문장들과 과거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서 미쳐버릴 것 같은 나에게 말이다. 그래서 난 알겠다는 말로 상황 종료를 시켰다. 더 이상 감정 소모 할 만한 에너지가 요즘 점점 빨리 없어짐을 느낀다.  


감정이 화르륵 올라오기 전에 마음의 단지에 잠시 덮는 연습을 한다. 나의 일상 명상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의미는 다른 데서 찾는다.   

 내 마음이 가끔 그에게 닫혀질수록, 그리고 작은 사건들이 잦아질 수록 안타까움은 비례하여 쌓인다. 안타깝다는 감정도 사랑의 다른 면이라면 나는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다. 아직 말이다.


 시간이 지나가면 잊혀진다. 그러나 잔흔이 남는 탓에, 사실 어느 해부터 내게 결혼기념일은 그냥 흘러가는 무의미한 하루 정도에 불과하게 변해버렸다. 무의미하다는 게 슬퍼서 억지로 결혼기념일을 챙기려 애쓴 내가 존재했고 말이다. 사실 몇 번의 해들은 이런 감정 싸움을 한 날이 하필 결혼기념일이기도 했고 더군다나 작년엔 피하고 싶은 날이기도 했다. 


 결혼을 기념하는 날을 가끔 부정하는 내가 존재한다.
그래서 차라리 기념의 의미는 일상의 곳곳 다른 데서 찾기로 했다.
그런 의미로 올해는 기념하지 않기로 했다.   


 기념하지 않아도 매일이 기념일이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애쓰다 휘청거리고 자칫 서로의 핀트를 건드려 폭발하듯 터져버릴 감정이라면 애초에 그 지점을 서로 건드리지 말자고. 그래서 객관적으로 마치 업무 대하듯 약간의 거리감을 두어 보자고. 나를 너무 드러내진 말자고. 아이러니 하나 그 날은 좀 더 드러내지 말아보자고 말이다.   


모든 것엔 대가가 치러진다.   

 눈빛을 맞추는 데 이미 익숙한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 앞선다면 구지 뭔가를 기념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애써 생각해 본다. 그런 게 사랑이었음 좋겠으니깐.   


 눈을 보고 목소리를 섞고 대화를 한다.
서로 잘 알지 못해도 이미 익숙하게 서로를 탐색하고 싶은 그 감정

사랑의 감정이 남아있는 그 시간을
일상에서 마음속에서 기념하기로 한다.

그게 바로 내가 요즘 선택한 사랑의 기념일이다.
 

 예전처럼 심한 감정소비는 하지 않았다. 

 짧은 몇 분의 대화로 종료된 걸 보면 말이다. 어느새 꽤 담담해진 마음씀씀이(?) 덕에 복은 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기도 하는 걸까? 그 대가로 이후 점심시간엔, 대화를 나누면 기분 좋아지는 미소가 매력적이며 가벼움과 무거움이 공존하는 기품을 가진 매력적인 남자와! 식사를 하며 어린 아이마냥 신나서 주절대는 나를 재발견했으니깐.   


 그리고 나를 또 어처구니 없이 웃게 만든 정말 또 어처구니 없는 의외의 대상으로부터의 메일, 예상치 못한 선물 (그것도 술!) 덕분에.


 나의 오후는 오전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즐거움으로 가득 찼으니. 이 현실만으로 일단 감사해 보기도 한다. 사실 나름의 단련(?) 이 되어 가는 중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와 나, 우리 둘은 이미 서로에게 익숙해 진 가족이라는 관계가 되었기에.


한 베게를 쓰고 같은 반지를 낀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편안하고 빛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얼마나 필요한 걸까..


 그치만 말이다. 한편으로 씁쓸하고 또 안타까운 이유는 가족이라는 건 마치 말하지 않아도 아는 '초코파이'가 되야 하는 관계가 싫어서 일 지 모르겠다. 초코파이는 달콤하지만, 말하지 않은 침묵과 닫힌 대화는 쓰니깐. 맛이 없다. 그래서 난 그 맛없는 관계들은 이젠 거절하고 싶다.


 뭐가 됐든 중요한 건 오늘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내가 욕망하고 사랑하는 대상들을
있는 힘껏 사랑하며, 내 스스로 움직여 볼 작정이라고..


그래서 나는 오늘 밤, 편지를 쓸 생각이다. 내일 결혼기념일을 맞이할 누군가와는 비교도 안 될 손편지를 써 보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더불어 그에게 바라기 전에 먼저 써 본다. 편지는 손으로 쓰는 그 맛, 사각사각 거리는 그 소리와 문장 속 마음의 맛일테니깐...

사각사각 소리가 좋다. 대상이 누가 되었든 손편지는 역시 쓰는 맛이다. 그는 그 맛을 모를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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