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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10. 2020

봄이지만 겨울인 채로

내가 죽고 나면 나라는 존재와 그를 둘러싼 모든 기억이 깨끗하게 사라져 버리기를,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 청춘의 문장들 -






다소 순조로운 아침 시작이라고 생각했었다.

일어나서 심술을 부리듯 괜한 투정을 부리지 않는 둘째와의 만남이 시작되면 그 날 하루는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하기에. 그의 조용한 기상은 마음 깊이 감사하기까지 하다. 하물며 상대적으로 순둥이 역할을 하던 첫쨰의 혼자서 책을 읽기 시작한 모습도 보이니. 오늘 하루 순탄하겠지 싶었지만.... 결국 아침부터 기어코 화를 내 버리고 말았다. 또..... 또 말이다.



아침의 루틴함을 지키려는 통에 강박이 좀 더 심해진 걸까.

새벽 기상, 잠깐의 침묵, 스스로의 다짐, 그리고 경제 신문을 잠시 살펴보고 글을 쓴다. 첫째가 먼저 일어나고 소변보는 것을 도와주며 하루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윽고 둘째가 일어나 조용히 소파에 누워 있는 모습. 거기까진 좋았다. 거기까지는...



청소를 어느 정도 해 두고 아침 준비를 서둘러하고 아이들을 찾았다.

가벼운 아침 끼니를 챙겨 대령해도 두 식구들의 영 먹는 게 시원찮은 모습까지도 괜찮았다. 살다 보면 먹기 싫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동안 고양이 샤워나 다름없이 정신없이 씻고 나왔을 때 일은 벌어져 있었다. 청소를 해 둔 안방이 온통 흐트러진 이불과 먼지 투성이... 창문을 열어 놓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가 버린 내 탓을 해야 맞지만 이상하게 화가 또 치밀어 오르려 했다. 아침 햇살은 참 좋은데 그 햇살이 마음에 들어왔더라면 그렇게까지 소리 지르진 않았을까. 모르겠다. 나는 결국 해선 안 되는 말을 내뱉어 버렸다. 그 문장은 치사하고 야비하고 치졸한 어른의 외침이었다.



- 도움이 안 돼 정말. 왜.. 도대체 왜. 나한테 왜..!




마른 나무 가지 같은 삭막함은 언제나 자주 나를 엄습한다.



첫째는 알았을 거다. 어리석은 문장의 감정을.

미안하다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차마 정면을 볼 수가 없어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나는 화를 내고 마는 나를 견디지 못하기에... 그대로 또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 잠시 다독이듯 TV를 틀어주고 마실 것을 챙겨준 이후

언제나 틈새 시간을 쪼개어 책이나 글을 쓰려는 나는 습관 덕분에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곤 메일함 속 한 통의 메일을 보고 마음이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주 순식간에, 별 거 아닌 메일이었음에도.



아쉬운 말씀을 드려야 하기에 회신 늦었다는 출판 담당자분의 메일이었다.

샘플 원고를 보낸 이후 다소 늦은 회신에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마음을 비웠지만 한번 더 공식적인 부정의 회신을 받고 나면 이상하게 거절당했다는 그 기분을 쉽게 떨치기가 아직도 쉽지 않다. 사실 상대 쪽에서  먼저 건네온 오퍼라 기대도 사실 적잖았고. 그러나 내 성의와 에너지는 결과까지 닿지 못했다. 이 나이를 먹었음에도, 거절당하는 용기는.... 쉬이 생기지 않는다.



그는 말했다. 필력이 좋고 책도 여러 권 출간했으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 믿는다고.

그러나 그의 문장이 왜 이렇게 슬프게 들렸던 걸까. 그 '활동'이라 하는 것도 영원히 녹슬지 않을 건전지를 지닌 로봇 마냥 에너지가 영원한 것은 아닌 탓에. 언제나 나의, 내가 좋아하고 하려는, 해내려는 '활동'들은  유지함에 있어서 꽤나 애를 쓰듯 쥐어짜내며 악착같고 이를 꽉 깨물어야 '이어지는' 환경이라는 것을.... 사실은 내가 아닌 그 누구도 알 길은 없다.



어둠이 진해야 꽃도 더 밝게 핀다고 믿지만...한편으로 아예 없없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두 존재 모두.



이 '처지'를 비관할 생각은 없지만.

한편으로는 얼마큼의 내적 고통과 서글픔이 인생에서 계속 따라야 하는 것인지를. 얼마나 나이를 더 먹어야 비로소 누군가의 '투정' 도, 누군가의 '거절' 도, 이 '환경' 도,  순조롭게 허허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모르는 채로... 이렇듯 아침에 화를 내기도, 메일을 보고 잠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그러면서 하고 싶었던 유일한 단 하나의 행위는 이렇게 느닷없이 순식간에 갑작스럽게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고 뭐라도 쓰고 싶은 절절한 마음에 아무 문장이나 이렇게 짖껄이고 있는 것...뿐이다.



봄이라는 계절은 왔지만, 아직도 나는 겨울에 갇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종종 든다.

그럼에도 오늘 아이들과 함께 몇십 분의 등원 길에서 벚꽃을 마주할 것이고 아이들을 잠시 기관에 보내 놓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선, 다시 마주친 벚꽃을 보면 괜한 눈물이 나올 같은 예상도 들지만....



나는, 조금은 참아보려 한다.

우는 이 못난 모습을 아이들이 부디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또 들 것이고... 그런 아이들이 건강하면 이젠 그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애써 어떤 변명을 스스로 하고 마는 나는... 실업자, 경력 단절, 전업 주부, 글을 쓰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그 알 수 없는 정체들 이전에 이내 돌봐야 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건강과 안위와 일상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금 흘러넘치려는 슬픔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줄도 알게 되어 버린



나는 엄마이기도 하니까....



봄....인가....지금 정말 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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