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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11. 2020

연락처를 지워버리며

나 역시 나만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지. 

나는 내 삶이 한 편의 눈부신 희극이 될 거라고 믿었어. 

당신은 그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우아한 인물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고. 


- 심연으로부터, 오스카 와일드 - 





핸드폰 속에 있던 이전 직장 동료들의 연락처를 정리하며 거의 대부분 지워 나갔다.  

약 천 개 정도였던 핸드폰 속 연락처를 100개 이하로 정리하면서, 나는 살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그동안 다녔었는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정작 일상을 주고받는 관계는 열 개 정도에 머무르면서도 어째서 그렇게 많은 전화번호가 필요했던 걸까. 아마 퇴근을 했어도 일의 연장선이 일상인 직장인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한 때' 직장인이었던 나도 그랬을 테고... 



연락처를 정리하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보고 나니 

묘하게도 잊혔던 기억들이 다시금 살아나 다가오기도 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보게 되었을 땐 바로 웃음이 터지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였으며 또 어떤 이름은 아예 누구였더라 싶어서 한참 기억을 해야 했다. 보통 지워지는 이름의 특징은 그런 분들이었다. '깊은 관계' 혹은 일상을 '자주' 주고받지 않았던, (그게 어쩌면 회사에서야 당연하겠지만) 그냥 딱 '일'로 엮였던 관계 그 이상으론 되지 못했던 이들의 이름은 핸드폰 속에서 사라졌다. 



살면서 정리는 여러모로 필요하지 싶었다. 여러모로.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그 혹은 그녀로 하여금 수많은 기억이 촘촘히 엮여있기 때문일 테다. 

기억할만한 에피소드가 없다면 기억 조차 할 수 없는 인물이 되어버린다. 상대에게 나 또한 그랬을 거다. 그렇게 기억에 남겨져 있든 흐릿해져 이미 없어져버린 존재가 되었든, 관계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참으로도 가벼운 것인가 싶은 생각에 문득 사는 게 별 게 아니다 싶기도 했다. 쉽게 잊힐 수 있는 관계들로 인해 뭐 그리 상처를 주고받고 애쓰듯 살았는지 싶었기에...



남겨진 이들의 이름을 바라보며 

여전히 '연결' 이 되기를 '기대' 하거나 바라기 때문에 지우지 못했나 싶었다. 연락처 속에서 삭제되지 않고 남겨진 이들의 이름을 떠오르며 드는 감정은 그랬다. 상대의 호응은 기대하지 않게도 되었다. 이제는... 있든 없든, 뜨뜻미지근하든 열렬하든. 다만 그저 '나'라는 인간의 일방적인 마음에 의지할지언정 '언젠가'라는 막연한 '기대'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남아있는 선심과 호의의 대상들이라... 바로 지워버리기에 어딘지 모르게 안타깝고 아쉬워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살면서 꽃과 편지, 책을 건네고 싶은 이들만 챙기고 살아도 충분하다. 그 관계는 이제 가족. 내겐 가족이 남았다.. 



연락처를 과감히 정리하고 한결 가벼워진(?) 핸드폰 속 리스트를 바라보니 

문득 살면서 이렇게 정리를 자주  해 나가고 싶다는 바람마저 다시금 앞서고 말았다. 더군다나 요즘 들어 철저히 '극소수 와 소통하기를 원하는 나로서는... 뭐랄까, 자의든 타의든 본의 아니게(?) 너무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어 나갔던 지난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니 잠시 멀미가 날 지경이었고, 정말 사랑하는 관계들, 나의 사람들 몇몇만 지켜 나가도 부족한 삶이라는 생각을 하자니, 한편으로 계속해서 지워내려 간 그 연락처를 떠올리며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은 거였다. (낸들 알게 뭔가 싶고) 



물건을 간소화하고 최소한의 청빈한 생활과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싶단 생각이 앞서는 요즘이다.

사람 관계는 더더욱 마찬가지... 시끄럽게(?) 타인과 왕래하며 지내고 싶지가 않은 건 왜일까. 조금씩 마음이 폐쇄적으로 닫히는 걸까 싶은 약간의 오만방자함(?) 이 밀려오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조용하게 '나' 혹은 내 옆의 '가족' 들을 챙기기도 사실 버거운 요즘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아니면 회사를 다니지 '않은' 환경이 내게 준 일종의 선물(?) 이자 정리(?) 인가 싶기도 하고....



이제는 '말'만 남는 관계에겐 쉽게 마음을 건네지 않는다.  그렇게 나를 지키는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타인에게 쉽게 그런 '나'의 이해를 구하려 드는 건 사실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며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준 고마운 '진짜' 관계들만 생에 남기며 살면 충분하다는 생각... 연락처의 2/3을 지워내면서 아마 앞으로도 다시 이 연락처에 또 누군가의 이름이 손쉽게 저장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흔히 주고받는 빈 말인 '언제 한 번 보자' '잘 지내지'라는 식의 안부를 건넬 관계라면 차라리 연락처 따위 주고받지 말자 싶기도 하다. 



'구체적 사랑' 은 그렇게 빈 말을 쉽게 건네는 관계에게 허락되는 것이 아닐 테니까. 

그동안 미련스럽게 길러왔던 다 상해버리고 무쓸모 해진 머리카락들을 싹둑 자르던 날, 나는 연락처마저도 싹둑 잘라내 버렸다. 그로 인해 마음은 한결 허전하면서도 홀가분해졌고, 그로 인해 나는 조금 더 무거움이 덜 해진 기분이 들었다... 



잎사귀는 그를 지탱하는 나뭇가지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많은 관계는 사실 필요 없다. 진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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