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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3. 2017

32. 일상의 일탈

일탈은 짧고 굵게!

일상은 연속이다.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하다고 일컬어지는 우리들의 오늘은, 어찌 보면 일상의 연속을 산다. 따지고 보면 행복할 수 있는 삶이다. 큰 사건 사고가 특별히 없는 한, 꽤 유연하게 무탈히(?) 흘러갈 수 있는 일상이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일상이란 때론 흔들린다. 원래 삶이란 게 흔들리는 게 당연하고 그 작고 큰 흔들림을 견뎌내며 그렇게 살아내는 게 일상일 수 있을 테니깐.


일탈은 자극이다.

 그렇다면 일탈은 뭘까. 그건 어쩌면 일상에 대드는 그리운 연인(?)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연인이 찾아온 일상은, 좋게 혹은 나쁘게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삶에 자극을 준다.


 그래. 자극. 사실 내게 일탈은 때로 지루할 법한 일상을
 자석같이 끌리게 다시 만드는, 자극 같은 존재다.


 물론 그 자극을 주는 일탈의 형태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주체인 내가 만드는 일탈이 있고, 내가 원치 않았을 때 주변 객체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일탈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시도한다. 위험하지만 주체로서의 일탈을 말이다.


 주체로서의 일탈은 스스로의 의지로 즐거움과 기쁜 자극이 될 수 있고, 객체로서의 일탈의 맛봄은, 다소 슬픔과 고통을 겪기 마련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어찌 됐건 일탈이란, 유지해온 일상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커다란 파장임은 분명한 듯싶으니 말이다.


새벽 1시에 귀가한 지난주 수요일 밤은 그야말로 ‘오지고 지리는 빼박 캔트’ 일탈이었다.

 사실 그러려는 의지는 다분히 적었으나 여하튼 결론은 새벽 1시에 술을 먹고 집으로 귀가한 만행을 저질러 버렸다. 이유 불문 나는 이제 엄마이고 누군가의 아내로서 삶을 꽤 잘 유지하고 있는 요즘이기에, 항상 마음속엔 유지해야 하는 일상들이 규칙적으로 정해져 있는 삶을 모르는 바 아니기 때문에 나는 일상에 충실한 요즘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저번 주처럼, 늘 집으로 들어와야 하는 시간을 한참 벗어났다는 것 그 자체야 말로 어마 무시한 일탈임엔 분명했다. 위험한 건 밤이 아니라 어쩌면 그 시간을 만든 나였을지도 모를 테고 말이다.


핑계여도 상관없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와 그녀들이 내 곁에 아직 있음에 감사한 요즘이다. 나의 새벽 1시의 일탈도 그들 덕분에 생기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사실 급 만남도 아니었으며 이미 예견된 만남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까지 그리고 그 취함까지 가리라곤 상상치도 못했다.

예견된 일상은 때론 예측하지 못한 채 어느새 일탈이 되기도 한다.


그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와 그 시간 자체에 취해 버린 나 때문이었다.


“사표 쓴다고 했더니 물어 보더라고. 왜 그러냐고.”
“당연한 거 아녜요? 내 보기엔 뻔하네 뭐, 연봉 올리려는 수작이었죠?”
“어 들켰네. 예리한데. 역시 매력 있어. 글 쓰는 사람은 눈치도 빠르네”
“거 봐 이 인간 그럴 줄 알았다니깐. 거 뭐 돈이 중요하다고”
“잠깐. 돈이 중요하죠. 세상에 돈 가지고 안 되는 게 뭐 있나?”


그 한마디에 잠깐 돌아(?) 버려서 연거푸 마신 사케 잔 탓을 뒤늦게 해보는 나였다.


“세상에 돈 주고도 못 사고 못 파는 것들도 있어요. 가령 내 새끼? 사랑? 꿈?
빌어먹을. 이 나이 (쳐드시고도) 아직 그런 순수한 가치를 따지는 내가 바보인가요? 아 바보네 바보야”


그래. 난 잠깐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돌아버림 끝엔 결국 길거리에 파전을 붙였던 기억과 (쓰읍) 1차 이자카야에서의 꼬치는 스킵하고 다분히 도쿠리만 원샷을 질러 버렸으며 2 차가 서는 청하에 처음처럼을 말아먹은 어마 무시한 여자가 되고 말았다고 감히 고백해본다 (하 술을 잘 못 마시지만 그런 미친놈 기질은 어디서 나오는지, 아들 쌍둥이 낳고서 만들어진 건 그저 알 수 없는 무식한 본능과 용기라며)


술마시고 쓰는 글이 제일이라...요즘은 사케가 땅긴다. 위험하다 하아...!


 그 여파로 저번 주 내내 한 글자도 쓰고 읽질 못했다. 자책이라는 감정이 밀려왔지만 그럼에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 삼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덕분에 내가 유지해 온 일상을 다시 돌이켜 보고 감사할 줄 아는 내가 있어서 일 지 모르겠다.


 때론 일탈이 좋은 점은, 그저 일상의 도피 때문은 아닐지 모르겠다. 일탈이라는 자극은 이미 지니고 있는 일상의 작은 것들에 대한 새삼스런 존재감과 감사하고 사치스러운 현실을 돌이켜볼 수 있게도 만들어 주니깐.


일탈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삶

 나는 일탈을 권장하는 (다소 위험한 캐릭터에 속하는) 편이다. 그 일탈은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아니 사실 거창하면 위험(?) 하니 그렇게 작은 일상의 일탈들을 우리들은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말이다. 누군가에겐 퇴근 후 혼자 영화 보는 것이, 누군가에겐 술 한잔을 진탕 마시고 꽐라가 돼 보는 것이 (이건 좀 비 추천이겠다마는) 누군가에겐 고백하고 냅다 차여 보기도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 또 누군가들에겐 사업계획을 준비해서 스타트업 질러보며 그렇게 세상의 거칠지만 새로운 세계로 뛰어드는 도전들이, 누군가에게는 매일 김밥 먹다가 오늘 하루는 레스토랑 가서 한 끼의 근사한 밥을 먹는 것.... 등등  그 모든 것들이 말이다.


일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작고 큰 일탈을 즐기고 만들어 낼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누군가의 일탈도 용서될 그런 넓은 마음도..


일상에서 변화를 꿈꾸는 간절한 의지 충만한 행동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일탈을 꿈꾸게 만든다.



일탈은 우리에게 그랬으면 좋겠다.

 지루하고 그럴 싸 해 보이는 쳇바퀴 굴러가듯, 물 틀어 놓은 듯한 비슷한 일상일지라도, 내 마음과 욕망이 추구하는 어떤 표현할 수 없는 가치를 충족시켜주는 오아시스 같은 목마름의 물기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삶의 유쾌한 도구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전히 일탈을 꿈꾸고, 그 덕분에 언젠가 다가올 나의 유쾌한 일탈에도 가감 없이 나를 맡겨 내고 싶다. 물론 덜 위험하게, 그리고 좀 더 편안하게(?) 그 일탈 후의 시간이 덜 후회되도록 말이다.


 지난주 친정엄마에의 미안한 잔소리를 무진장 얻어먹을 수밖에 없었던 나의 ‘빼박 캔트 일탈’ 덕분에 비록 체력과 에너지가 급 소진되었을지언정 대신 나는 그 시간에 얻은 것들에 감사한 마음에 더 집중해 보기로 했다.


 내 곁에 지금 함께 하는 이들과 꽤 괜찮은 생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감사, 솟구쳐 흐르는 어이없는 글감들과 상상들, 여전히 이 나이(?) 임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내 마음속 뜨거움, 그리고 행동으로 상상을 이루어 내고자 하는 똘기 어린 추진력 까지. 그냥 전부 고마운 일상이다. 그리고 또 새삼 알 것도 같다.


비행기는 볼 수록 나를 설레게 만든다. 내 일탈의 최고의 도구였었던 A380이 새삼 그립다


 내가 만든 크고 작은 일탈의 자극 덕분에, 지금의 일상이 생겨났음을.


 사랑으로 가득한 선한 일탈은 역시 사랑으로 결국 되돌아올 거라는 다분히 맥락 하나 없는 어이없는 이유를 덧붙여본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일상의 흐름에 작고 큰 일탈을 사랑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삶은 이미 일상의 여행이나 다름없고, 그 여행에 일탈이라는 장소 하나가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한 여행길로 나를 인도해 줄 수도 있을 테니깐.


단 일탈은 짧고 굵게. 너무 취하는 건 이젠 좀 덜 하는 걸로.
일상은 길고 일탈은 짧기에.


언젠가 다시 가볼 공항에선, 마음껏 일상도 일탈도 바라는 장면을 그려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녕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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