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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06. 2020

신 (神)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 자기 앞의 생 -



한때 나의 신은 '돈'이었다.

'의식주'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반복과 같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겠지만, 반대로 빈자들에게 그것은 매번 도전이고 투쟁이며 분투해야 겨우 얻어지는 것이라는 걸. 조금은 일찍 '부의 불평등'에 대한 생각을 10대 후반부터 했던 것도 같다. 부모님을 지켜보며 이상하게 미안했고 안쓰러웠으니까. 어쩌면 당시의 나는 철저히 돌봄을 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가족을 살피며 생존과 생활을 유지시켜 나가는 두 분의 삶에 시나 소설, 문학은 없었다. 그럴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을 뿐더러 '개인' 의 어떤 부분을 살피는 시간 대신 그들은 가족이라는 '다수' 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다뤘으니까. 나의 부모님은 그랬고 나는 한편으로 죄스러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입고 자고 먹고 읽고 쓰는 모든 나'만'을 위한 시간들이.



그 시절, 나는 내가 읽던, 쓰던,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들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기적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자신도 없었던 것 같다. 책이라든지 글과 같은 것들을, '나'라는 1인의 온전한 기쁨을 위해 삶에서 계속 유지하고 버텨내자니,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무언가를 빼앗는 것만 같았다. 부모님은 소설을 읽지 않고 돈을 벌었으니까. 문학을 포기하고 돈을 모시기로 했다. 이왕 모실 바에 아주 철저하고도 뜨거운 계획 하에. 정식으로 일터라는 노동 현장으로 뛰어든 나는 사회초년생이었고, 그 시절 나의 신은 이미 '돈' 이 되었다. 계산과 셈에 심신이 온전히 익숙해지려는 순간, 묘하게 내내 슬펐지만 그것이 내가 속한 세계 속의 생존 방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돈'이라는 신을 모시기로 한 이후의 과정은 지난한 혹독함을 겪어야 했지만,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 그로 인한 결괏값은 꽤 만족스러운 '숫자'로 되돌아왔다... 나쁘진 않았다. 물론 완전한 기쁨을 느끼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읽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철저히 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오만하고 잘난 그 생각엔 균열이 발생했다.

출산 후 느리지만 조금씩... 아이를 기르며 깨닫는 것들 중 선명한 몇 가지의 교훈과 반성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나 자신이 자연스럽게 '조연' 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그것이 그렇게 슬프거나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고 (좌절은 자주 하겠지만) 또한 어떤 부분에선 경험하지 못한 자들 대비 누구도 함부로 갖지 못할 생의 어떤 고귀한 의미와 성장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내가 아닌 타인을 돌봄과 살피는 지난한 시간은 나로 인해 조연으로 물러나야 살아지게 만들었다. 그 시절, 쌍둥이를 보살피며 나는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인생에서 '주연' 이기를 포기해야 얻어지는, 비교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생의 기쁨들이 있다는 것을.



어느새 나의 신은 '아이' 들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이것은 마치 등가교환의 법칙 같기만 하다. 새로운 생의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되고 그것을 교환하는 시간들... 온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곁의 누군가들을 제대로 살피려 하지 않았던, 오직 '나' 에게 맞춰진 오만한 시점이 무너지던 날, 나는 늘 눈가가 붉어졌지만 묘하게 기뻤다. 옹알이를 하며 누워만 있던 어떤 생명체가 직립보행을 하며 언어를 활용하고 문장을 구사해내기 시작하는 경이로운 순간, '사랑해'라든지 '보고 싶다'와 같은 말을 내게 뿜어내던, 나의 신(神)...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는 여전히 나를 울리면서도 웃게 만든다.



석양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는거야. 고마워서... 너희들을 돌보면서 기뻤지만, 한편으론 그랬다...




여태껏 내가 다가가려 했던 신(神)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탄생된 것이라면

이 신의 존재는 매 순간, 생의 시절들을 통과하며 내게 어떤 비밀스러운 가르침들을 선물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신들로 인해 '나'라는 인간은 매번 새롭게 성장하는 과정을 겪는 것일 테다. 그러니 현재의 나는, 다음에 다가올 '신'을 향해 수줍지만 뜨겁게 간청하곤 한다. 다음에 나타날 신은 다름 아닌 '현존' 하는 '시간'을 모실 수 있는 '나' 이기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있는 '현재'라는, 지나면 없어질 그 시간에 '사랑' 하는 '마음'을 계산하지 않고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조금 더 강하게 성장한 '나' 자신이기를. 계산하는 시대에서 계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신념이 담긴 우리들의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유한한 생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내면의 잠들어 있는 나의 '신'과 함께, 오늘도 나는, 무언가 '나답게' 만들어 나가 보는 중이다. 방법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이 길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뿐. 살아 내고도 있다는 어떤 뜨거운 진실뿐... 각 시절들 속에서 내가 모시는 이 '신' 들과 함께, 주어진 환경설정 안에서 필요하다면 설정값을 바꿔가기도 하며 나는 떠올려본다.



지금껏 나를 만들어 준, 그리고 앞으로 만날 고마운 '당신' 들을.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날개를 찾아 가는 시간은... 얼마나 축복이던가.  그러니 이 삶은...선물이겠다. 행운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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