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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3. 2020

원하는 마음   

에필로그 

정녕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를 원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그를 원할 때뿐이다. 


- 사랑의 기술 - 



그와 '부부'가 되기 전까지, 서로의 '혼자'는 어쩌면 결혼과 동시에 깨졌을지도 모른다. 

소속된 국가나 사회, 단체를 구성하는 낱낱의 사람을 뜻한다는 '개인' 으로서의 삶은, 실상 존재는 하지만 집중되지 않아야 했었다. 그래야 당신과 나, 우리 두 사람이 덜 아플 수 있었다는 걸 왜 그땐 몰랐던 걸까. 결혼은 처음이니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자신의 민낯으로부터 도망치는 인간의 비루한 변명 같기만 하다. '결혼제도'에 입성하기 이전에 '사랑의 기술' 이 부족했던 한 인간의 성숙한 사랑이 없었다는 것을, 나는 그때 몰랐다. 그랬으니 당신도 슬픔을 감당해내며 지내왔다는 것도 몰랐겠다. 



사랑의 품을 측정할 수만 있다면, 나는 먼저 그래야 했다. 

그랬다면 당신을, 그리고 나 자신을 덜 아프게 했을까. 당신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어제와 오늘의 대화를 돌이켜보면서 글을 쓰는 시간 동안 눈물이 미소보다 앞선 건 왜 그런지, 나는 알지만 모르는 척을 하며 뻔뻔한 마음을 무장한 채로 키보드를 꾹꾹 누르며 적어볼 뿐이다. 당신을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았던, 부부가 된 '우리'의 시간에 대해.  



하늘은 안다 하던데... 나는 그 하늘 앞에서 자꾸만 부끄러워지고 만다. 당신에게 미안해서.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곧 10년을 '부부'로 살아가게 된 우리 앞에서, 나는 지난 내 사랑을 잠시 탓한다. 

처음 그와 주고받은 내 얄팍한 그릇의 사랑에 대해. 그것의 방향과 태도는 처음부터 설정값이 틀렸다고. 부끄럽고 초라한 고백이지만 이제라도 자각해서 다행이지 싶다. 한없이 사랑받기를 원하는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과 슬픔의 크기를 알지 못한 채 당신의 아내가 되어 버린, 어린날의 고집 같았던 당신을 향한 사랑에 대해.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p. 66, 50주년 기념 리커버판 中 - 



오늘, 그이는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가입한 보험 내역과 보험금액이 잘 정리되어 인쇄된 A4 용지였다. 가계부를 적는 나는 이미 주기적인 관리를 하고 있기에 놀랄 것 없는 내용이었지만 오히려 평소 답지 않은 그이의 행동이 놀랐다. 그리고 출근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에서 깬 아침의 아이들과 일상을 지내며 부산스러운 오전을 보내고 혼자 남겨진 집에 돌아와 다시 식탁 위에 펼쳐 둔 그 종이를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여전히 생각하고 만다. 나의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의심하던 때, 내가 저지르고 살았던 잘못 중 하나는 선택의 대상 탓을 돌릴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선택의 주체였던 나라는 인간의 '사랑의 기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간인 '나' 에게 있었음을. 



- 이게 뭐야? 

- 보험 내역. 정리해 본거야. 

-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어? 왜 이걸... 

- 그냥. 별 거 아냐.  그냥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참조하시라고.  

- 뜬금없으니까 무섭잖아...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 아니 그냥 정리해본 거야. 나도 궁금해서. 내 나이가 그럴 나이인가 봐

-.....



오늘의 색감이, 어제의 흑백이 되어 버린다는 걸, 좀 더 기억하려 해. 그래야 더 사랑하며 살 수 있을테니까. 



나는 이제야 제대로 알아가는 중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결국 영원하지 않음을. 

불사할 수 없는 인간은 결코 그럴 수 없음을. 그래서 '사랑하기도 모자란 시간'이라는 문장은 결코 가볍게 흘려야 하지 않을, 얼마나 무거운 일침이 담긴 문장인지에 대해서도. 당신과 대화를 주고받는 '부부'로서의 시간과, 이제는 그것을 넘어 '부모' 로서의 시간이 쌓일수록 나는 무섭지만 제대로 알아가는 것만 같았다. 우리의 '마지막'에 대해서 가끔 상상할수록. 당신과 나의 '늙음'을 떠올려 볼수록. 



영원히 당신'만' 사랑하며 살겠다는 '부부' 로서의 약속은 사실 내 안에서 깨졌다는 걸 안다. 

나는 종종 당신 이외의 사람을 꿈꾸기도 했었으니까... 여전히 가끔은 그러고도 사니까. 또한 나는 이제 당신 이외의 다른 동거인이자 우리가 만든, 그가 아닌 다른 남자 둘을 더 사랑하며 살게 된 여자가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한편 나는 또 안다. 그런 나와 여전히 '부부'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향하는 우리 두 사람의 사랑은 이렇게 느리게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사랑의 형태는 죽음 앞에서나 마침표를 찍으며 완전해지는 것이라면, 나는 되도록 일찍, 완전한 깨달음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그가 나와 우리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그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그리하여 내가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서로 원하는 마음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믿는다. 

부부의 대화가 이어지고 아내나 남편의 기억이 서로를 향해 사라지지 않는다면,  비록 무균실의 순함과 같은 순정의 마음은 마모되어 가며 때로 퍼석한 소리만 들릴 지언정. 서로의 일상을 지키려는 부부의 세계는 견고하고도 촘촘하게 비로소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어제와 오늘의 대화를, 내일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볼 뿐이다. 당신에게 그리고 자식이 되어 버린 그 둘에게 읽힐 언젠가를 위해서. 아니 어쩌면 읽히지 않아도 좋았을, 당신을 향한 아내의 마음에 대해서 오늘도, '글'이라는 형태로, 아프고 원하는 마음을 품은 채로.  


보이지 않다가도 보이게 되는 것, 하늘의 구름, 그리고 당신.... 우리의 사랑은 하늘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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