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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28. 2021

소년을 읽다

책 추천을 한다면, 이 책을 감히 추천합니다. 반드시....

민우는 생애 17년 만에 첫 번째인 일이 두 가지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재미있는 책을 만났고, 자신만을 위해 책을 읽어준 최초의 어른이 생겼다.

이 사실이, 나는 눈물겹다. 


소년원에도 '사람' 이 살고 있다. 


- 소년을 읽다 - 





책을 매년 읽으며 나는 기록을 한다. 

어떤 책을 언제 읽었고 몇 권을 읽었고 어떤 내용이 담긴 책이었고 그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달의 나름의 베스트를 스스로 생각해보곤 하는데, 아마 2021년, 신년 첫 달 최고의 책 중 하나로 아마 나는 '소년을 읽다' 를 꼽지 않을까 싶었다. 그 정도였다. 두 번을 읽을 정도로.  처음 읽고 몇 구절은 눈물이 나서 읽어내릴 수가 없었고 그러면서도 궁금해서 계속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 



'소년을 읽다' 에서 나는 이 시대의 '희망' 을 읽는 것 같았다. 

감히 그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나는 이 국어교사께서 소년원에 가서 소년들과 함께 책을 읽고 동아리를 만들기까지 했던, 그들과 부대끼며 지냈던 시간 자체가 왠지 모르게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따뜻함이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희망' 으로만 느껴졌다. 수십조원을 가진 기업가나 100억부자라는 이들, 부동산 부자나 슈퍼개미, 월 천만원이 어쩌내 하면서 불로소득 올리기에 모두 신나하며 급급한 사람들이 많은 이 자본주의 시대에서. 그들이 조용하고 뜨겁게 만들어내는 그 시간이야말로 정녕 '사람' 같이 느껴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나로하여금 '희망' 이라는 단어를 내뱉게 만든 이유는. 


소년을 읽다, 서현숙, 사계절, 2021.01.25.




사실 몰랐고 여전히 모르며 모를 수밖에 없는 '타인' 이자 '독자' 에 불과할 수 있다. '소년들' 을 대해야 했던 작가님의 처음 마음처럼. 그러나 나는 어느새 소년들을 통해 주고 받는 기분, 감정, 생각,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생각하게 만드는 어떤 '힘' 들에 대해서. 결국 그들도 '사람' 이고 그 사람이 산다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 에 대한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아야 하는 시대에 책임의 대다수를 아이에게 전가해버리는 '무능한 어른' 에 대한 생각을. 여전히 무능한 어른이 많은 시대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맥락과 서사를 지닌 소년은 범죄자도 쓰레기도 인간 말종도 아니었다. 그저 소년일 뿐이었다. 만나면 수줍게 웃고, 나와 눈을 맞추고 시를 외울 때면 눈빛이 순해지는 소년. 소년은 틀릴까봐 눈빛이 흔들리며 조심스럽게 시를 외운다 


- 프롤로그 중 - 



"사람이 바닥까지 추락하게 되면..."

"이 구절이 왜 인상 깊어?"

"지금이 저에게 그런 시간이에요. 바닥까지 추락한 시간"


- 선생님과 소년의 대화 중 - 






책이라는 물성이 지닌, '기적'을 읽는 기분에 빠지고 만다. 

'소년을 읽다' 는 내내 그런 에세이였다.  '활자가 주는 여러 종류의 재미를 경험하게 하고 싶다' 는 이 국어교사이자 작가님의 마음이 결국 소년들에 닿고, 소년들은 그렇게 새로운 세계로 접하며 잠시나마 분노를 잠재우고 자신의 마음, 감정, 세상을 좀 다른 시선으로 찾아가게 되는 시간.... '소년을 읽다' 에서 희망을 읽는 것같은 기분이 자주 들었던건 그들의 시간 그 존재 자체가 주는 어떤 감동 때문이겠다. 



아이에게 '책으로 말을 거는' 일이 쉬우면서도 위대한 힘을 지녔다는 것, 심하게는 사람의 영혼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책을 함께 읽은 사람들은 감정을 나누고 서로 마음을 연다. 서로를 향해 무장해제한다. 주변의 일들에 함께 물음표를 꽂아본다.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 소년원에서 독서동아리를 만들던 때 -



소년의 말에서 자꾸만 울컥했었던 건 어쩌면 그들의 '서사' 를 상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싶었다. 

 '에그타르트를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그들의 순함, '15점짜리 부모 밑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 는 말에 담긴 무겁고 슬픈 생각, 책을 쓴 작가를 만나고 질문하는 그들의 호기심, 세상과 사람을 향해 호의적인 면이 분명 있는 그들, 그러나 타인은 절대 알지 못하는 '자신' 의 절망....환경, 원인, 소년원에 들어오기까지의 그만 알고 있을 개인적 서사.... 때문에. 



자동차는 고장 나면 고칠 수 있잖아. 나도 내 인생을 고쳐 보고 싶어

누구도 탓하고 싶지 않아

15점짜리 부모 밑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아이도 있어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다



- 소년원 내 독서동아리의 소년들의 말들. - 



변화시킬 수 없음이 이곳에서 나의 몫이다. 평소오 다른 결의 바람을 잠깐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나의 최대치이자 한계이다. 그런 것 같다. 아마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있는 힘껏 노력하고, 그 결과물이 나뭇가지가 늘어지도록 주렁주렁 열리는 인생의 시기, 그런 시절도 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마음과 정성을 들이고 허전함과 쓸쓸함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고 길을 걸어야 하는 그런 시기인 것이다. 이 생각을 하면 나는 잠시 슬퍼진다


- 선생님이 왜 슬퍼지셨는지...나도 알 것 같았다. 분명 '소년' 을 생각하셨을게다. 분명. -



'다음' 이 참 궁금해지는 에세이는 정말 오랜만이다. 

이 다음은? 소년을 읽은 이 다음의 소년들의 이야기와 선생님의 이야기.... 여운을 많이 남기게 되는, 정말 좋은 책을 만난 덕분에 나는 생각에 잠긴다. 생각은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작은 변화는 시선으로 이어진다. 내가 앞으로 바라볼 '소년' 에 대한 생각도 그렇게 변해가는 중이지 싶다.... 책을 읽기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 동안에도. 



'소년을 읽다' 를 읽고, 소년을 모른다고 생각했었던 나의 시선은 그렇게 변해간다. 

환대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줄 아는 그들도 결국 '사람' 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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