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을, 그래서 두려움이 밀려올 수 있음에도.
편지를 주고받기로 선뜻 마음을 내 주신 민님께.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라 말씀해 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정말요... 기쁨과 감사는 연인 같다는 생각을 그 덕분에 떠올렸습니다. 기쁘니 고맙고, 또 고마우니 기쁜 마음이 다시 생기고. 떨어지고 싶어도 쉬이 떨어뜨리지 못하고 마는 그런 연인이랄까요.
좋아했던 한 시절을 함께 지냈던 사람의 존재는 삶의 큰 선물이고 축복이겠죠.
알 것 같습니다. 그 마음... 저도 그랬던 사람이 덕분에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미루지 않고 보셨을 동기분들과의 시간, 좋으셨을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사람의 생일을 단 둘이 축하할 정도의 인연은, 그리고 시간이 오래 흘러 만났어도, '다정한 무관심' 이 있었을지언정. 분명 전생에 어떤 강한 끈으로 연결된 고마운 인연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문득, 지금도 아름다우신데 그 시절의 민님은... 허허.. 정말이지 꽤나 여러 학우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으신 건 아닐까 엉뚱한 상상마저도 해 버렸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왜 민님의 글에서 '멋지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기도 했어요.
사실 언제나 민님의 서평이나 산문을 읽고 있자면 단순하게 즐겁거나 훌륭하게만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제가 뭐라고 멋대로 이런 생각을 해버리곤 할 때가 많았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가지고 계신 엄청난 작가님이다' 라면서 요. 민님의 대학 시절 이야기, 그리고 읽으셨던 책, 그와 연결되어 '글'에 대한 생각들이 담긴 편지를 읽었을 때 비로소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이제 이해가 더 잘 되기도 하고요. 생각을 하게 만들고 다시 한번 읽게 만들고. (그러다가 팬이 되어 버렸;)
민님의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대학시절이셨을까요.
대학시절의 민님이 좀 더 궁금해졌어요. 언제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들려주시길. 그때 공부하셨던 것들, 그것이 '글'에 어떻게 묻어 나오시는지, 여전히 그러하신지도요. 잠시 제 대학시절을 말씀드려보자면, 사실은 단출하면서도 너무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 한창 젊은 시절의 제게는 참 미안할 정도로요...
여유 없이. 정말 여유가 별로 없었던 이십 대 초반이었습니다.
저는 외국어를 전공했어요. 영어영문학과 출신에 일본어도 복수로 전공을 했었기에, 나름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함이라는 자기 합리화에 빠져 (하...) 일본으로 교환유학을 다녀온 영문과 학생이었죠...(쓰고 보니 정말 저란 인간은 좀 이상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할까 싶고요.) 대학 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두 어개씩 달고 살았고 (그때부터 돈을 좋아했던 걸까요; 허허) 밤에는 야학교 교사로도 바쁘게 지냈던 시절이었네요. 밤에 검정고시 준비하시는 어머니들께 나름 인기 있는 영어 선생님이었는데. 아참 영어도 가르쳤지만 도덕과 윤리도 가르쳤었어요. 생각해보니 엄청나게 부끄러운 역설이긴 합니다. 제가 전혀 도덕적이기도 윤리적이지도 않은 인간인데 말이죠...
흘러넘치려 해서 잠시 pause 버튼을 눌렀습니다. (마음에 '꾹' 하고-)
민님께서 그러셨죠. 제 글은 흘러넘치는 것 같다고. '솔직함이 진심이라면 순도 백 프로의 진심을 담은 글' 이라고요. 흉내 낼 수 없다 하셨을까요. 그렇지만 반대로 저 또한 민님의 글을 흉내 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네요. 보일 듯 말 듯 한 작가의 어떤 감춰진 서사들, 그 안에 베어든 짧지만 강한 감정이 묻어나는 문장들. 있는 힘껏 누르며 묵혀두었다가 비로소 민님의 언어가 문장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울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고 하셨던 민님의 글이 모아진 책을 읽고
반대로 제가 대신 울어버렸었네요. 울보 인증하자면, 저는 민님의 편지글을 조목조목 읽어가면서도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왜였을까요. 그건 아마도 이해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지도요. 잃고 싶지 않은 어떤 순수함.... 절대 버리고 싶지 않은 삶의 순정한 어떤 마음들. 그리하여 온 마음을 담아 글로 쏟아내는 제 자신. (쏟아낸다는 표현밖에 저 또한 달리 어떤 동사를 찾는 데 실패를 합니다)
저를 누군가에게 이해받은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물며 그 생각과 마음이 '글'로 연결이 되어 있기에. 지금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이 시간이 한편 제게는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어서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 그럼에도 기쁨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이 흐름이 언젠가 가져올 '기적'을 바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계속 살아라'라는 말은 '매 순간 있는 힘껏 사랑하라'라는 말과 같다.
만약 나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사랑과 죽음의 차이를 알게 된 것이고, 바로 그 장소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다.
- 앞으로 올 사랑, p 24, 서문 -
'디스토피아 시대의 열 가지 사랑 이야기'가 담긴, 서문도 매력적인 이 책.
민님 덕분에 (이제야) 읽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게 건네주신 책 글귀를 보자마자 마음이 움직였거든요. 그리고 아마 저는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이제는 민님과 함께 써 보게 되는 '기적'을 얻게 되니. 이 시절 자체가 제게는 기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번 편지는 조금 짧게. 흘러넘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이번에도 망했다는 약간의 서글픔을 슬며시 감추며. 사월의 첫 편지를 띄워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방금 민님의 글 덕분에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이번 달엔 꼭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완주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습니다. 그러나 장담은 못하고 이미 민님 덕에 또 기웃거리고만 있는 에리히 프롬의 '자기를 위한 인간' 은 언제 읽을 수 있을지요. 행복한 고민을 이렇게 달고 삽니다. 퇴사하길 잘했을까요... (허허)
4월의 시작이네요. 저도 오늘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혼자 돌아오며 찍어본 사진 드려 봅니다.
민님의 훌륭한 사진에 비하면.... 흑. 저는 키보드나 두드려야겠습니다. (씽긋)
사월, 민님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헤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