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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스트 Aug 29. 2024

치료의 목적

2번 방




  2-3주에 한 번은 규칙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병원 진료를 2주나 늦게 만신창이가 되어 방문하였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가야 하는데,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화요일 저녁인데, 내일은 수요일이니 수요일은 담당 의사 선생님이 안 계시니 하루 버티고 목요일에 가야겠구나. 목요일에 병원에 방문을 하니 아차, 담당 선생님의 휴무가 목요일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런 날이 수도 없이 많았다. 진료실을 3번 방이 아닌 2번 방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1년에 몇 번 내가 이럴 때마다 마주하는 2번 방 의사. 차트를 보니 너무 늦게 왔다고 했다. 왜 이렇게까지 늦게 왔느냐는 말씀에 두서없는 말을 내뱉은 나. 누구나 의사 앞에 변명하듯 일이 바빴다는 한마디면 되는 걸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었을까.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이거 저거 복잡하고 얽히고 설킨 것들 때문에요.

 그런데 그게 중요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왜 그랬을까요.


 치료를 하는 의미에 대해서 돌아볼 때가 됐어요.

 치료를 원하는지 왜 치료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급한 것을 우선으로 치르고 있어요.

 나를 살리는 치료를 놓치고 있었다면, 정말 나에게 치료가 필요한지를 돌아봐야 됩니다.


  평소 같으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넘어갈 수 있는 대화에서 웬걸, 눈앞이 흐려진다. 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을까. 왜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나를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나는 다른 것을 보고 있었구나. 급한 불만 끄고 살았구나. 참 서러우면서도 그 본질이 이해가 되어 마치 집으로 돌아온 것과 같은 밀려오는 따뜻함에 서러운 눈물들이 떨어졌다.


  아 왜 이러지.. 이럴게 아닌데 말이에요.


  과거는 지나가는 것이고 앞으로 다시 계획을 세우고 지켜나가면 됩니다.

  진료날에는 스케줄을 미리 빼놓으세요. 그날은 알람을 맞춰 놓으세요. 미리 생각하고 계획하세요.


  휴지 한 장 뽑아 차분히 듣는다. 어쩐지 평소에 차갑게 느껴졌던 2번 방 의사는 항상 나를 치료해주려고 했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보살피지 못하니까, 내가 치료의 목적을 모르니까, 그동안 그 사람이 차갑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치료의 본질로 돌아갔을 때 하얗고 차디찬 그곳이 사실은 치열한 혈투 끝에 생명을 살리는 그들을 만날 수 있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내가 살 수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익숙함에 속아 본질을 이해 못 해서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줌에도 흘러들어 색안경을 꼈던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심을 원하면 나도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았다. 하얀 가운을 입은 그와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동안의 서러움들이 모두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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