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리스트 Sep 08. 2024

낡은 피아노

백조의 호수





  우리 집엔 낡은 피아노가 있다. 어렸을 적, 몇 년 배웠던 기억으로 가끔 필이 꽂힐 때 몇 시간이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한참을 연주하곤 한다. 기억에 의존하여 더듬거리다 보면 감을 찾아 그때 그 감정과 선율을 되찾곤 한다. 몇 개 없는 악보를 반복해서 치는데 가장 좋아하는 건 백조의 호수, 팀의 사랑합니다, 사명, 타이타닉 OST,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 바비킴의 소나무, 캐논이다.


  맑고 투명한 소리가 났으면 좋겠다. 연습을 꾸준히 하는 건 아니니까 매번 투박한 소리가 난다. 평소에 일을 하거나 쉴 때, 하루종일 피아노 연주곡을 틀어놓는데 그런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마음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부드럽고 소중하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본 적이 있다. 슬프면서도 찬란한 순간을, 그리고 광활한 우주를 탐험하듯 자유롭게 세상을 헤엄치는 듯한 그의 연주를 보고 있노라면 나까지 그의 손을 마주 잡고 세상을 헤엄치는 듯했다.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면 어느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강물이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줄 수 있을까. 고요한 소리에 매료되어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같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 결론은 무엇일까. 곡의 결말은 무엇일까.


  글을 쓸 때, 결말을 정해놓고 쓰지 않는 편이다. 정해뒀다고 생각하고 쓰더라도 글은 스스로 생명을 일으키어 호흡하여 살아 숨 쉰다. 글은 자신의 인생을 한 편 만들어간다. 작곡가들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결말을 정해놓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생명력 있는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호흡은 거대해져 클라이맥스를 도달하고 마침내 결말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가끔 피아노 연주에 꽂힐 때, 한 곡만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백조의 호수 곡의 경우가 그러한데, 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하지 않고 감정을 잘 실어서 완벽하게 마칠 때까지 몰입한다. 처음에는 연약하고 부드러운 백조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고 이후에는 그 연약함 안에 숨겨진 폭발적인 자유의지를 표출하고 싶다. 왠지 백조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아서, 나는 계속 끝없이 연주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차분해질 때까지 달래주려고, 내 마음이 나아지기를 기다려주려고, 나는 나에게 그렇게 집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료의 목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