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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멀리스트 귀선 May 02. 2021

네 고집만 있냐, 내 고집도 있다.

미완해서 미안해

미세먼지 최악!!!!


나는 아이의 안전에 예민한 엄마다.

기관지가 조금 약하고 비염이 있는 아이를 위한 일이라며 집에 있는 먼지도 유독 예민하며 미세먼지와 꽃가루가 많이 날리는 날이면 아이와 집 밖을 잘 안 나가도록 애쓴다.


날씨가 좋던 어느 날, 하원 후 자전거를 타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자전거를 가지고 나오려는 도중 습관처럼 미세먼지 어플을 보았다.


'미세먼지 최악'

까만 방독면을 쓴 그림이 나오며 절대 외출을 금지하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요즘 안전동화책을 즐겨보는 아이는 미세먼지와 황사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엄마, 미세먼지 확인해볼래요. 오늘은 미세먼지가 빨간색이네. 미세먼지 책에서 밖에 나가면 안 된다고 했어. 코랑 목이랑 눈이랑 아파요."


미세먼지와 황사가 있는 날에는 스스로 나가지 않던 아이 었다.


그런데 하필 미세먼지가 최악인 날, 그날따라 아이가 때를 쓰기 시작했다. 너무 심하지 않은 날은 수치를 보고 결정한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타협할 수 없는 수치였다. 초미세먼지까지 나쁨.


"자전거 탈 거야~나갈 거야~~"

막무가내인 아이와 절대 안 된다는 였다.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나쁘니까 특별히 집에 가서 초콜릿도 주고 유튜브도 틀어줄게~ 같이 들어가서 보자. 그리고 내일은 미세먼지가 좋으니깐 꼭 자전거 타자. 약속!!"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브도 초콜릿도 통하지 않았다.

나도 슬슬 짜증 이나기 시작했고 아이는 더 화가 많이 났다.

아이의 입장이 이해는 갔지만, 아이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서는 양보 못하는 나였다. 분명 기침이 날 테고 눈도 간지러워할 텐데 나가서 놀게 하는 건 나와 아이에게 귀찮은 일이 생길게 뻔했다.


"그럼 너 혼자 나가서 놀고 와! 엄마는 미세먼지 최악이어서 나가기 싫어. 엄마는 집에 갈래."


그리고 집에 올라가는 척을 했다.

아무리 때를 써도 엄마 없이 혼자 4살 아이가 놀이터를 갈까 싶었다. 그래서 던진 말이었는데...

아이는 갑자기 자전거를 낑낑 들더니 혼자 1층 자동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다른 이모의 이름을 부르면서...


순간,  '저 고집쟁이 누가이기나 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따라가지 않았다. 

그리고 가란다고 진짜 가버린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게 무슨 일인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잠깐 동안 황당한 상태가 되었다.


자전거 타는 아이를 부르며 쫒아가야 하나 생각했지만, 이때 쫒아가서 아이를 데리고 오기에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지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고집쟁이 엄마랑 아들이었다.)


'내가 그냥 나오니 엄마도 따라 나왔네?'

아이가 혹시나 이런 생각으로 앞으로도 그럴까 봐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놀이터에 있는 언니에게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몰래 숨어서 아이를 지켜보았다.


언니가 아이에게  엄마 없이 놀이터 나오면 안 된다고 얘기하고 집으로 데려와주었다. 아이도 순순히 언니 말을 듣는듯했다.

나는 아이가 집 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다시 집 쪽으로 가서 기다리는 척을 했다.

언니는 혼자 나오면 엄마가 속상해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온갖 짜증이 난 상태였던 아이는 평안을 되찾았는지 나를 보더니,

"엄마, 많이 속상했어요?"라고 묻는다.

그러고서는 놀이터에서 그만 놀 거라는 말과 집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던 듯이 함께 손을 고 집에 올라왔다.


3층을 올라오는 내내 내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엄마 놓고 혼자 놀이터 갈 거야? 왜 집에 왔어?"

"안 갈 거예요. 미세먼지가 많아서요. 엄마 이것 봐요. 열매예요~~~"


아이가 어떤 생각으로 집에 왔는지, 아이도 속이 분명 상했을 텐데, 엄마에게 놀이터에서 주워 온 열매를 건넨다. 다시 해맑게 웃으며.

아이 입장에서 열매를 주는 것은 엄마와의 화해의 목적일 것이다.(꽃, 열매,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


열매를 받은 나는 웃을 수가 없었고 미안했다.(평소 같았으면 오버해서 고맙다고 할 텐데)

열매를 들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분명 너를 위한 일이었는데 왜 우리 둘 다 속상했어야 했는지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너무 어려운 초보 엄마다.


어쩌면 아이 때문이라는 말보다 내가 아이를 잘 못 돌봤다는 죄책감과 함께 병원을 가는 귀찮음 때문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도 들며 고민이 많아지는 밤이다.


미완해서 미안한 엄마라는 말이 와 닿는 밤이다.

미세먼지 싫어.
미세먼지  좋은 날


어쩌면 나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쉽게 용서하는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쉽게 상처 주고 있는지 모른다.

미완해서 미안한 엄마.


<엄마의 바운더리  중>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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