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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멀리스트 귀선 Sep 13. 2020

25년 된 내 밥그릇을 되찾다.

진정한 제로 웨이스트


"승현아, 이 밥그릇 엄마가 25년 전에 먹던 거다?"



  외할머니댁을 방문했다.

외손녀의 아들이 보고 싶어 하루가 멀다 하고  영상 통화하자며 전화하시는 외할머니댁에 드디어 놀러 왔다.


"아이고, 시상에 그새 많이 컸네. 왕할미가 밥 차려줄텐게. 좀 만 기다려잉?"


 3살 꼬맹이는 83세 할머니 앞에서 온갖 재롱을 떨었고, 나는 할머니를 도와 점심을 준비했다.


우리는 80살 차이랍니다.


 반찬을 담을 그릇을 찾으려고 할머니 집 상부장과 하부장을 열었는데, 그 순간 내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할머니, 이런 건 다 어디서 났어요? 이거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컵인데.."


"몰러~ 다 옛날부터 있던겨~"


내 나이보다 더 오래된 컵들(탐나는 할머니네집 상부장)
탐나는 레트로컵들


  내 나이보다 더 오래된 컵들.. 진정한 레트로다.


"이제는 나는 하나도 안 써~ 다 옛날에 썼지~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


 내가 너무 관심을 보였나, 레트로 컵을 선뜻 내어주시는 할머니였다.

 나는 밥을 차리던 것도 잊고 할머니네 집 상부장, 하부장을 구경했다. 어렸을 적엔 그릇에 관심이 없어서 못 봤었는데, 오랜만에 온 할머니 집에는 탐나는 보물들이 많이 있었다.


"어머, 이건 내가 애기 때 먹던 밥그릇이잖아?"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외갓집이랑 가까워서 항상 저녁밥은 할머니 집에서 먹었다. 그때 먹던 추억의 숟가락, 밥그릇, 물컵까지.. 족히 20년은 넘은 그릇들을 할머니께서는 아직도 쓰고 계셨다. 순간 우리 집 그릇들이 생각났다. 주부 65년 차 할머니께서도 그릇을 이렇게나 오래 쓰시는데, 나는 고작 4년 차 주부가 그동안 그릇 욕심에 그릇을 사고, 바꾸고 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친정집에서도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쓰던 그릇들을 쓰고 있다.


"엄마는 그릇들을 엄청 오래 쓰네요?"


"멀쩡하잖아."


 나는 그동안 멀쩡한 그릇들을 놔두고 사고 또 사고했다.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겠다는 이유로.


 지금 우리 집에는 내가 아끼고 자주 사용하는 그릇들만 남아있다. 나는 친정집과 할머니네 집 상부장을 보고  그 그릇들이 깨질 때까지 써야겠다고 한번 더 다짐한다.


할머니께서 30년 된 레트로그릇으로 차려주신 밥상


 할머니표 맛있는 점심을 먹고, 할머니께서는  반찬을 싸주신다고 반찬통을 찾으라고 하셨다.


"할머니, 저 여기다 싸가도 돼요?"


"그거 가져~ 나 안 써~ 다 가져가~ 애기 밥도 거기다 주면 좋아. 깨지지도 않고~"


 그릇은 많았지만 반찬통이 부족한 우리 집이었다. 마침 요즘 반찬을 만들면 보관할 곳이 부족해 반찬통을 몇 개 더 사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최대한 한 번 사면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위생적인 반찬통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오늘 할머니 집에서 득템 했다. 스테인레스라서 위생적이고 관리도 쉬우며 디자인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할머니는 안 쓰는 물건을 물려줘서 좋고, 나는 필요하던 반찬통을 득템 해서 좋고.


 깨끗하게 씻으니, 오래된 반찬통이 반짝반짝하다. 집에 있는 뾱뾱이로 포장까지 하니 새 반찬통을 산 느낌이다.

반찬통의 실리콘 뚜껑이 조금 변색된들 어떠하리


"할머니, 음식물 쓰레기는 어디에 버려요?"


  아무리 찾아도 쓰레기 비닐도 없고, 음식물 쓰레기통도 없었다.


"으응~ 여기 못쓰는 노란 냄비있응게  여기다 버리고 뚜껑 닫아놔~ 내가 이따가 버리고 올겨~"


 할머니 집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못쓰는 냄비에 버리고 뚜껑을 닫아놓고 저녁에 비우고 오신다고 한다. 그리고 깨끗하게 헹구고 다시 쓰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비닐을 쓰지 않으신다. 뚜껑을 덮어놓으면 냄새도 나지 않고   그날그날 바로 버리고 오면 헹궈내기도 쉽다고 하셨다. 할머니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냄비는 정말 깨끗했다. 약간의 번거로움을 참으면 우리 집에서 일회용 비닐봉지를 못 끊던 이유 중 하나였던,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용도로 쓰던 비닐을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내 고민이 한 번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집에서 못쓰는 냄비를 어떻게 처리했지? 우리 집에도 못쓰는 냄비가 있던가?'


  오늘 밤에 쓰레기장을 한 번 가봐야겠다.


할머니집의 음식물 쓰레기통(못쓰는 냄비)


 65년 차 주부의 내공은 대단했다.

내가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려고 여기저기에서 방법을 찾으며 노력하고 있었는데, 내가 배워야 할 진정한 제로 웨이스트는 가장 가까이 있었다.


 '친정 엄마''친정 엄마의 엄마', 그녀들의 딸인 나도 그 길을 열심히 따라야겠다.




필자의 여담

'아빠의 맛있는 비빔국수'


"오늘 저녁은 아빠가 맛있는 비빔국수 해줄게~"


 오늘 저녁 맛있는 비빔국수를 만들어먹자는 아빠가 3인분을 만들고서, 라면을 끓여 드신다고 한다. 이유는 1인분의 비빔장이 모자라서..


 라면을 끓이려는 아빠를 말리시며, 엄마가 가위를 들고 오셨다.


"무슨 라면이야~ 비빔장 통 줘봐. 내가 1인분 만들어줄게"


비빔면은 1.5인분이나 더 나왔고, 아빠도 국수를 맛있게 드셨다.


 통은 깨끗하게 씻어서 분리수거 완료.

마지막 비빔장을 긁어모으는 중


'엄마와 휴지심 제로웨이스트'


 전직 유치원 교사셨던 엄마는 휴지심, 키친타월심, 요구르트병, 우유갑 등을 항상 깨끗하게 씻어서 말려놓았다. 다 마른 것들은 박스에 모아두셨다. 그리고 한꺼번에 모아 유치원에 가져가서 아이들과 놀이할 때 쓰신다고 하셨다. 만들기 할 때 재료로 쓰면 아이들도 너무 좋아한다며 그 번거로운 일을 몇 년간이나 하셨다. 아빠랑 나는 그냥 지저분한 쓰레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귀찮아서 그냥 몰래 버린 적도 많다.


 얼마 전 퇴직을 하시고, 미쳐 가져가지 못한 남은 휴지심들이 있었다. 그 휴지심을 할머니 집에 놀러 간 아들이 우연히 찾았고, 드디어 묵혀있던 지심이 집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아이는 쌓기 놀이도 하고, 테이프로 이어서 구슬도 넣어보고, 망원경 놀이도 하고, 굴려도 보고, 한참을 재밌게 가지고 놀고는 다시 잘 넣어놓았다.

 할머니가 모아 둔 휴지심이 아이에게 최고의 장난감이 된 순간이었다.


'아들, 엄마 아빠도 휴지심 잘 모아볼게'

휴지심 쌓기놀이
휴지심으로 진정 신난 아이



"분리수거장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음식물 쓰레기통"


 할머니집에서 사용하시는 '냄비 음식물 쓰레기통'을 보고 좋은 아이디어를 얻어 바로 우리 집에서 못쓰는 냄비를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그래서 찾은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장.


 운명적으로 만난 버려진 코펠 냄비들..

그 중 가장 깨끗하고 뚜껑이 있는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깨끗하게 닦고 씻기니 새 것 같진 않았지만 꽤 괜찮았다.


운명적으로 만난 코펠, 아니 우리집 음식물쓰레기통


 이 전에 쓰던 비닐봉지를 치우고, 당장 코펠을 놓아보았다.

비닐을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쓰면 아무리 꽉 묶어도 냄새가 났지만, 이제 코펠 뚜껑으로 닫으니 냄새도 안 난다. 또 쓰레기의 물기가 많을 때는 줄줄 샐 때도 있는데, 이제 그럴 일도 없다.    

 단, 이제 음식물 쓰레기통을 씻어야 한다는 귀찮은 일이 생겼지만, 비닐봉지 사용을 줄일 수 있다면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손잡이도 뺐다가 접었다가 할 수 있다.
왠지 인테리어도 해치지않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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