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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Dec 22. 2018

임신 10개월 드디어 병원으로



1983년 8월 23일 화요일

깜깜한 밤에 식구들이 모여 포도를 먹으며 베란다에서 거대한 아파트 단지 전체가 새카매지는 등화관제를 구경했다.

1983년 8월23일 오후 9시30분부터 10시까지 서울시내 전역에 등화관제훈련이 실시됐다. 4백22개 동과 2332개 직장 민방위대에서 실시했다  출처:헤럴드포토 


불을 몽땅 끄고 있어야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어느 동인가 불빛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워낙 캄캄하기에 살짝만 불빛이 있어도 눈에 확 띈다. 울려대는 호루라기 소리, 집중되는 플래시에 다시 슬그머니 꺼지는 불빛. 그런 걸 구경했다. 재밌다. 


불 꺼요, 불 꺼!!!

큰소리 빵빵 치고 다니는 완장찬 경비들 세상이다. 배가 가끔씩 당기는데 그것이 진통인지 모르겠다. 

1983년 8월 24일 수요일

드디어 '이슬'이라는 것이 비쳤다. 팬티에 살짝 묻은 빨간 피. 책에 보니 요런 걸 '이슬'이라 한단다. 

일요일 밤 짐을 모두 챙겨 들고 친정으로 옮겨온지 3박 4일째. 

무서워하지 말고 알 낳듯이 쑥 낳아야 한다.

이슬이 보였다고 좋아서 덤벙대며 배웅을 나간 내게 그가 어깨를 톡톡 도닥여주며 이야기한다. 몇 번이나 읽은 '임신 출산 육아' 그 두꺼운 책을 다시 줄 쳐가며 읽고 있다. 이슬 비친 후 24시간 이내에 진통이 온다 한다. 그런데 아직 아프지는 않다. 가끔 당기고 아픈데 그것이 진통인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1983년 8월 25일 목요일

검붉은 핏덩이가 새벽 4시에 나왔다. 10시까지 기다려 의사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아픈 것도 없는데 어제 아침에 이슬이 비쳤고요, 오늘 새벽 4시쯤에 검붉은 핏덩이가 손가락만 하게 나왔고요, 9시쯤 또 콧물같이 시 커머 둥둥한 게 나왔어요.

그런데 왜 병원에 안 오나? 

아프지 않으니까요.

당장 입원 준비해서 어서 와요!!!


그 때  성모병원 출처 http://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4/76373?per_page=6&sch_txt



부랴부랴 엄마랑 병원으로 향했다. 내진하시더니 의사 선생님, 

4Cm 열렸어요. 당장 입원해요!
아니, 이렇게 쌩쌩한데요. 

주사만 놓으면 오늘 저녁에 낳겠어. 뭐하라 끌어. 끌 이유가 전혀 없는데. 
그래도 자연분만이 좋다던데. 


아, 그 주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통만 오게 하는 거예요. 지금 나올 준비가 다 되었다고요. 
점심 먹으면서 생각해보고요. 


그당시 너무도 유명했던 미성옥 사진출처:https://m.blog.naver.com/jaemin_youn/220805593561


엄마랑 난 미성옥에 가서 그 맛있는 설렁탕을 국물, 날김치, 신김치까지 추가로 시켜 천천히 먹으며 생각했다. 제일은행에 가서 의사 친구에게 전화해 조언도 들었다. 2시간에 걸쳐 엄마랑 충분히 의논한 결과,  


진통이 오면 오늘 밤에라도 다시 오면 되겠다. 모하라 주사를 맞나.

그래서 집으로 향했다. 꼼짝 말고 오늘 밤만 견디자꾸나. 코딱지만 한 방에 난 자리 깔고 누웠고 그 옆으로 식구들이 모여 포도를 먹으며 아이들의 교육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정말 내가 이제 엄마가 된다. 가끔씩 사르르 아프다. 밑에서부터 위로 아파온다. 진통은 진통인가? 진통이 오면 정말 까무러친다던데 난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다 참을 만하다. 

우리 그이도 임신 휴가 이틀을 받고 싱글벙글해서 돌아온다. 내일 아침 일찍, 나와 함께 입원할 거다.
정신무장 단단히 해야지. 안 무서워 난. 


1983년 8월 26일 금요일

가끔씩 싸르르 배가 아파와 잠이 깬다. 시간을 체크해보니 정확히 한 시간마다 오는 아픔이다.  견딜만했지만 매우 규칙적인 것 보아 이런 것이 바로 진통인가 보다. 무언가 싸르르하면서 아파오다가 문득 멈춘다. 오줌은 누어도 누어도 또 금방 마렵다. 

밤새 견딜만한 진통과 화장실로 싸우다가 이제 드디어 아침이 밝았다. 병원에 간다. 두렵지는 않다. 
이제 나의 아가를 만나게 되는데 환희와 기쁨으로 이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리라. 


병원 가기 전 만삭의 배를 기념으로 남겨놓는다


10시반, 병원 도착. 생전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이라는 것을 한다. 괴상한 잠옷을 주며 갈아입고 분만대기실로 가란다. 소변검사, 혈액검사, 혈압, 간호원의 지시로 별별것들이 다 행해진다. 관장한다고 치욕스럽게 하더니 이번엔 그곳에 면도를 한다. 아, 창피해. 

커다란 둥근 시계가 걸려있는데 정확히 35분을 덜 간다. 왜 그럴까? 고장인가? 이미 입원해 있는 두명. 의사가 다녀가면 분만을 앞둔 두려움에 우리 셋은 대화를 나누며 급속도로 친해진다. 모두 8개월인데 이상이 있어 입원 중이란다. 한 엄마는 1시에 제왕절개수술 예정이란다. 모두 아기가 거꾸로 들어서있단다. 아무 이상없이 건강하게 자연분만하러 온 나를 무척 부러워한다. 괜히 미안하다. 모두 괜찮을꺼라고 우리 힘내자고 서로 막 격려한다. 

담당의가 내진한다. 2 finger 열렸단다. 

주사 맞고 낳지 뭐. 

하며 나가신다. 얼마 후 삐쩍 마르고 싸납게 생긴 여자의사가 들어오더니

양수가 터졌어요? 진통이 언제부터 왔어요? 

상당히 쌀쌀 맞게 사무적 질문을 쏟아붓고는 다짜고짜 나의 그 곳에 손을 팍 쑤셔박는다. 아, 얼마나 아프던지. 모야? 이 여자는? 

아니, 무슨 산모가 이래. 이런 산모 또 처음 보네. 힘 빼욧.

하도 무섭게 구니까 난 그곳에 더욱더 힘이 들어가는가보다. 

아줌마, 아기 낳든지말든지 맘대로 해욧.

그리고는 휑하니 나가버린다. 얼마나 헤집어 놓았는지 아파죽겠다. 결국 내 담당의사선생님만이 
나의 내진을 하게되었다. 의사들도 많이 다녀가고 간호사도 많이 다녀간다. 이번엔 내 나이 또래쯤으로 보이는 하얀 가운을 유난히 깔끔하게 입은 여의사 두 명이 들어서는데......


아... 혹시? 
앗... 우리 어디선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아주 낯익은 얼굴. 


그런데 우리 어디서 봤지? 
한번 따져볼까요? 

하고는 하나씩 읊어대기 시작한다.


덕수 국민학교. 아니고. 

배화여자중학교, 아니고. 

정신여자고등학교. 아하. 정신여고. 

나 최혜영, 문과. 

나 이태순, 이과. 


그리고 보니 더 얼굴이 많이 낯이 익다. 카토릭 의대 본과 4학년. 지금 실습 중이란다. 오늘 처음이란다. 


정신여고 시험쳐서 들어간 마지막 세대. 1차에 실패한 아픔이 모두의 가슴한자락에


그때부터 우린 한 몸이 된다. 그 애 둘이 내 곁으로 바짝 다가온다. 


많이 힘들지? 이제 우리가 있으니 걱정 마. 아픈 거 다 우리에게 말해.
응. 알았어.


난 나의 느낌을 아주 상세히 이야기해주기로 한다. 그녀들은 내 손을 꼭 잡아준다. 힘내라는 듯이. 인턴, 레지던트들이 오가며 

이렇게 응원부대가 많은데 무슨 걱정을 해요?

우리 모습을 보고 즐겁게 한마디씩들 한다. 

아..... 아파. 아파온다.

태풍이 몰려오듯 저 밑에서부터 서서히 시작되는 용틀임. 쏴아아 아아아 무언가 뱃속의 모든 장기를 
뒤트는 듯한 묵직한 아픔. 으아아아아 아

혜영아, 아파? 많이? 조금만 참아. 지나갈 거야.

그 애들은 내 손을 더욱 꼭 잡아준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신기해한다.

혜영아, 정말 꼭 10분 만이야. 너 아까 아프다 한 때부터 꼭 10분 지났어.
아, 정말이야? 정말?
정말 책대로 되네.

처음 실습 나왔다는 태순이도 그 애 친구도 나도 정말 책에 쓰여 있는 대로 아주 규칙적으로 태풍 몰아치듯 몰려오는 진통이 신기할 뿐이다. 태순이랑 친구랑 잠깐 기다리라며 어디선가 무척 두꺼운 책을가지고 온다. 그 책을 읽어가며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이고 출산의 어느 과정임을 전문가답게 설명해준다. 그 사이 다시 난 아파오고 쏴아아 아 쏴아아 아


아파... 아파온다. 온다.. 또 와.

태풍이 몰려오듯 시작되는 진통에 그 애들은 다시 책을 뒤지고 시간을 재고. 

혜영아, 이젠 정말 5분 만이야.
계속 5분 만이야.

점점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난 병원에 올 때 남편에게 부탁했었다. 

여보, 어느 책에 보니까 진통 오는 순간을 기록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했어. 나 도표 좀 만들어 주어. 

난 이 순간, 내가 한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이 특별한 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일기장을 들고 입원했다. 무슨 애 낳으러 가는 애가 책같은 것만 한가득 들고가냐며 엄마는 모라하셨다. 그렇게 나의 가방은 임신 출산 육아 책으로 부터 일기장에 공책에 펜에 그런 것들로 가득했다. 


35년전 아기 낳으러 병원에 입원하며 들고갔던 나의 일기장


울 신랑이 만들어준 도표도 가지고 왔다. 그 도표는 내가 진통으로 너무 아파 정신없어도 쉽게 기록할 수 있도록 칸이 빽빽하게 나뉘어있다. 거기에 난 몇 시 몇 분 몇 초라고 기록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도표에다가 볼펜으로 적어 넣는다. 진통이 시작되면 난, 

웅... 1시 5분 10초, 1시 7분 25초

끈질기게 시계를 보면서 그 도표에 적어 넣는다. 점점 빨라진다. 2분 단위로 빨라지고 있다. 담당의사 선생님 내진. 

7 Cm. 음.. 이제 곧 낳겠군. 두 시간이면 되겠어.


내진,  내진, 또 내진. 


꼭 내 담당 선생님을 불러 줘...


그때마다 난 부탁한다. 친구에게. 그 무지막지한 여자가 오지 않도록. 무엇을 한번 휘저으니 뜨뜻한 물이 터져 나온다. 만세~ 하면서 똥 누듯이 힘을 주란다. 


응~ 너무 힘들어.
똥을 누세요~


똥도 나오고 소변도 나오고 무어 그냥 마구 줄줄 줄줄 쏟아져 나오고 터져 나오고 난리도 아니다. 아프다. 힘을 주자. 아, 정말 미치겠다. 똥이 마렵다. 밀어내란다. 하라는 대로 자꾸 밀어낸다. 분만실로는 모두 열려야 옮긴다 한다.  줄줄줄줄 모든 게 터져 나오고 이 난리가 나는데도 아직 안 열렸단 말인가. 
이게 끝이 아니란 말인가. 아가, 우리 힘을 더 주자꾸나. 아, 빨리 분만실로 옮겨야 아기를 낳든지 할 텐데. 이 난리를 더 겪어야 한단 말인가. 

또 또 몰려온다. 회오리바람처럼 태풍이 몰려오듯 저 밑에서부터 우우우우 몰려온다. 끔찍한 고통이. 
4시 15분부터 회진이라고 친구들은 떠나간다. 아~무도 없다. 분만대기실에 나 혼자다. 이제는 도표에 기록할 수도 없다. 수시로 진통이 태풍처럼 몰려온다. 무시무시하게 몰려온다. 정말 이대로 꼴까닥 죽어버릴 것만 같다. 배를 뒤틀면서 올라오는 으으으으 저 끔찍한 아픔. 쉴 새가 없다. 계속 휘젓고 또
휘젓는다. 미치겠다. 나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아.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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