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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Dec 24. 2018

임신 10개월 그리고 드디어 출산



1983년 8월 26일 금요일


담당 선생님께서 오신다. 아아, 마치 구세주 같다. 무엇을 또 막 줄줄이 터뜨려놓고 가신다. 드디어 옮기라고 했는가 보다. 침대를 이동시키려 부산하다. 촉진제라고 한 손에 링거 주사를 꼽고 있는데 만세를 부르며 힘을 있는 대로 주라 한다. 어느새 나이 지긋한 간호사로 바뀌어 계속 내게 안내한다. 만세~ 를 부르며 힘을 주라고 힘주는 요령을 상세히 자상하게 설명해준다. 믿음 가는 그 간호사 말 대로 만세~ 하며 있는 대로 힘을 준다. 아, 그러나 만세 하면서 힘을 팍 주니 손에 꼽혀있는 주삿바늘이 떨어져 나가는 듯하다. 도대체 주사를 꼽은 채 어떻게 만세~ 하며 힘을 있는 대로 주라는 건지...... 아, 정말 미치겠다. 그래도 그 믿음 가는 나이 지긋한 간호사 말대로 하면 무언가 쉽게 아기를 낳을 수 있을 것 같아 열심히 따라 한다. 만 세 ~ 으으으응

내가 이 고생을 하는 동안 신랑, 아빠, 오빠, 남동생은 병원복도에서 초조함에  담배만 빡빡 ...출처:권태균 1주기 사진전  고인의 82년 작   ‘다방의 오후-경남김해’ 


드디어 침대에 실려서 분만실로 간다.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 간호사가 내 귀에 대고 말해준다.  힘을 주세요. 힘을. 만세~ 하며 힘을 주세요. 난 하라는 대로 만세~ 하며 힘을 준다. 똥 누듯이 힘을 주란다. 난 똥 눌 때를 연상하며 그 믿음 가는 간호사 말대로 열심히 힘을 팍팍 준다. 아. 너무 아프다. 태풍처럼 몰려온 진통이 그대로 머물러 있다. 이젠 쉬는 시간이 없다. 계속 뱃속을 휘젓고 꿈틀거리고 난리도 아니다. 정말 무시무시하다. 힘을 있는 대로 주며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친다. 조명등이 휘황찬란하고 열댓 명이 지켜보고 있다. 


똥을 계속 누란다. 침대에서 분만대로 엉금엉금 옮겨가는 순간, 아, 배고파~ 갑자기 너무나 배가 고프다. 허기가 지고 기운이 없고...... 그래도 이 상황에 이 난리 버거 지속에 배고파~ 라니...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에 핏 웃음이 돈다. 나도 참. 배고프다니? 아프다가 아니고 배고프다니? 얼마나 들 웃었을까? 아, 그나저나 너무나 아프다. 진통이 이젠 쉴 새가 없다. 그냥 온통 회오리치고 있다. 있는 힘을 다해 밀어낸다. 

마지막 힘일까? 무언가 둥근 공 같은 것을 똥 누듯 있는 힘껏 밀어낸다. 그리고는 까무러쳤는가 보다. 

한참만에 태순이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손을 꼭 잡아준다. 혜영아, 너 아들 낳았어. 뭐, 벌써 다 끝났다는 말인가? 


정말이야? 내가  아가를 낳았어? 벌써 끝난 거야?  

응, 그래... 아들을 낳았다니까. 


기분 좋은 잠에서 깨어나는 듯싶었는데 그게 끝인가 보다. 분만실에서 다시 분만 대기실로 옮겨진다. 나의 신랑이 벙글벙글 웃으며 들어온다. 내 곁으로 와 손을 꼭 잡아준다. 아~ 정말 내가 해냈구나. 


수고했어. 

아가 봤어? 

응, 아주 예뻐. 다리가 아주 길대. 

난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아, 해내었구나. 엄마도 오셨다. 엄마도 나 낳을 때 이렇게 힘드셨겠구나. 계속 분만대기실에서 잠을 잔다. 오줌을 누란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주어도 안 나온다. 10분, 또다시 10분. 우리 신랑이 수돗물을 틀어주고 쉬~ 쉬~ 도 해준다. 그래도 안 나온다. 밤 9시가 다 되어가는가? 

오빠, 병진이, 아빠, 모두 왔는가 보다. 빨리 나가서 만나보고 싶은데 소변을 봐야 나간단다. 결국 간호원이 오줌 줄을 끼워서 받아낸다.


자, 이제 입원실로 가세요. 혼자서 소변봐야 합니다.

남자들에 휩싸여 입원실로 향한다. 아까 1시에 수술받은 아가 엄마와 또 이제 수술 대기 중에 있는 여자가 이미 들어있다.  3인용 방. 너무나 덥다. 온몸이 피투성이다. 식구들도 물러가고 이제 그이와의 밤이 시작된다. 모두들 신랑이 보호자로 밤을 새우기 위해 남아있다. 환자의 침대에 보호자는 올라갈 수 없게 되어있는데, 신랑들은 모두 다 자기 와이프의 침대에 누워버린다. 가끔 간호사가 들어온다.


보호자가 침대에 올라가면 안 됩니다. 

따끔하게 한마디 하고 간다. 서로 협력하여 우리는 모두들 각자 와이프 옆에 누워있다가 간호원이 온다 싶으면 누군가 온다~ 했고 그러면 남편들은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와 계속 그렇게 있었던 듯 능청스레 밤 샘 간호사를 맞이한다. 간호사가 아무 야단치는 것  없이 나가면 일에라도 성공한 듯 서로 보고 웃으며 다시 사사삭 침대 위로 올라간다.  


 1983년 8월 27일 토요일


일찍 잠이 깬다.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며 좌욕실로 가란다. 들어가 보니 커다란 양은 대야가 세 개 놓여있고 그 안에는 뜨거운 물이 담겨 있다. 세 명의 출산녀들이 간호사에게 불리어 왔다. 이름 불러주는 대로 지정해주는 대야 위로 가서 바지를 벗고 궁둥이를 담근다. 뜨겁다. 살살 식혀가면서 하란다. 담갔다 뺐다 하다가 푹 담그고 있는다. 따끔따끔 아프다. 자꾸 해주어야 한단다. 우리가 나가자 다른 산모들이 불려 왔고 새로운 대야가 뜨거운 대야가 대령된다. 좌욕이라는 걸 처음 해본다 집에 가서도 물을 끓여서 자주 해주어야 한단다. 엄마는 어디선가 마른 쑥을 한 아름 구해오신다. 나 퇴원하면 푹푹 끓여 좌욕할 재료란다. 그래야 거기가 말끔하게 낫는다고.


명동성모병원에서 아기를 낳고 매일 몇번씩 하던 좌욕대야 


우리 아가를 본다면서 식구들이 와~ 몰려왔다. 아침 일찍  나도 가서 보았다. 정말 나의 아가인가. 울보로 통한단다. 엄마는 알아보지도 못한 채 간호원에게 안겨서 응애응애 신나게 울고 있다. 조그마하다. 야무지게 생겼다. 그이를 꼭 닮은 것 같다. 우리 신랑과 엄마 교대. 친구들, 친척들이 많이 다녀갔다. 순기, 경화, 경화 신랑, 정희 그리고 시부모님 시이모까지. 한 보따리씩들 들고. 순산이며 아들이라고 모두들 좋아하며 난리들이시다. 그런데 아 그런데 옆의 분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어떻게 그렇게 아들을 쑥 낳았쑤? 참 좋겠네. 우리는 세 번째 딸이라우.


내 옆 침대 분의 시어머니가 자꾸 내 침대에 와서 부럽다는 듯 한숨을 푹푹 쉬시며 당신 며느리는 세 번째 딸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자고 있을까? 며느리가 잔다고 생각해서 내게 와 그런 말을 하시겠지만 만약 그 말을 들으면 그 며느리 마음이 어떨까? 아, 난 그냥 웃으며 네네 할 뿐이다.


당시 독일에서 활약하던 차범근과 부인, 딸이 함께 나와 ‘하나만 더 낳고 그만두겠어요’라면서 가족계획 운동 동참을 호소하던 포스터


셋째를 낳으니 보험도 안돼요. 아들 낳아야 하는데  딸입니다. 


조금 나이 든 아저씨가 아내가 잠깐 없는 새 나랑 우리 신랑을 붙들고 하소연한다. 수술 대기 중이던 여자가 나가고 새로 입원한 분의 남편이다. 셋째를 낳으니 보험도 안된다고 큰일이라고. 어떡하나. 보험이 안되면 병원비가 꽤 나올 텐데. 게다가 수술인데 아 어떡하지. 괜히 우리가 막 걱정이 된다. 꼭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산모들인데 다시 딸을 낳아 서방님도 시부모님도 걱정이 태산이다. 나만 첫아들을 순산했다. 에고. 

1960~70년 대 산아제한 가족계획 포스터


그와의 또 하룻밤. 손님을 너무 맞이해서 피곤하다. 포도도 먹고 주스도 먹었다. 이도 닦았다. 그가 따뜻한 타월로 나의 몸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닦아준다.      


1983년 8월 28일 일요일


배꼽을 어찌하는 것인지 간호사에게 잘 설명을 듣는다. 자연분만 2박 3일 퇴원이다. 5만 원인가 밖에 안 나왔다며 우리 혜영인 참 건강해 아기도 싸게 낳는다고 싱글벙글하다. 그런데 나만 퇴원이다. 모두들 수술을 하고 아기를 낳아 더 오래 있어야 한단다. 그새 친해져 서로 껴안고 인사하며 아쉽게 헤어진다. 우리~ 아기 잘 키웁시다~ 하면서. 


오빠 차 안에서 나의 아가는 울지도 않고 얌전히 자고 있다. 그러나 집에 와서 나의 젖은 나오지도 않고, 아가는 죽어라 하고 울어댄다. 웬일일까.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저 깐난쟁이가 무엇이 그리도 슬퍼 저렇게 힘들게 빡빡 운단 말인가. 


1983년 8월 29일 월요일


친정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밤새 아가랑 고생했다. 집이 싫어서일까. 아가는 그 쪼끄만 몸으로 온 사력을 다 해 울어댔다. 코딱지만 한 눈으로 눈물도 꼭꼭 짜내면서 너무나 애처롭게 운다. 앙앙 으앙앙앙 으아 앙앙 공갈 젖꼭지를 물리고 우유를 먹이고... 엉엉 그래도 울고 또 운다. 공갈 젖꼭지를 어쩌면 저리도 힘차게 빨아댈 수 있을까. 신생아가 빠락빠락 우는 모습이라니. 엉엉 너무 안쓰럽다. 아가를 안으니 절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온갖 설움이 복받쳐 올라 나 역시 엉엉  엉엉엉  으아아 앙 울어버린다. 나오지도 않는 나의 젖을 아가에게 물린 채 엉엉 으아아 앙. 


아가야 제발 울음 좀 그쳐 주어~ 


밑에도 아프고, 위에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온통 아픈 곳뿐이다. 그런 채로 밤을 꼴딱 새운다. 엉엉  


출산일기는 <끝>이다. 고통 속의 출산이니 모든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어마어마한 '육아'라는 전쟁의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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