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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14. 2020

슬쩍 두 개?

KTX 특실 물품

서울을 왔다 갔다 많이 하니까 일 년에 몇 번 공짜로 아니 일반실 가격으로 특실을 사용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런데 전에 보면 승무원이 와서 공손하게 생수와 맛있는 과자를 주고 갔는데 오늘은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걸 주러 승무원이 나타나질 않는다. 모지? 왜 그럴까? 이젠 안 주나? 그래도 넛트와 쿠키를 열차 안에서 먹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아쉬움이 슬슬 밀려올 즈음 문득 보니 통로 문에 달려 있는 문구. 코로나로 인해 승무원이 직접 가져다주지 않고 객실 밖 통로에 특실 물품 놓아두니 직접 가져가라는 것이다. 아항. 그럼 그렇지. 그래도 비싼 특실인데 그 맛있는 걸 안 줄리가 없지. 오홋.


객실 밖 통로로 나가 본다. 짐을 싣는 곳에 커다란 박스가 있고 그 앞에는 생수 자판기가 있다. 우선  자판기를 보니 특실을 누르면 생수가 공짜로 제공된단다. 당당하게 특실을 누르니 생수 있는 곳에 빨갛게 화살표가 들어오고 그 화살표를 누르니 댕그랑 생수가 떨어진다. 출입구에 손을 넣어 아주 작고 귀여운 생수를 꺼낸다. 그다음 짐칸 위의 누런 커다란 박스를 열어본다. 헉! 승무원이 정중하게 가져다주던 작고 예쁜 종이박스가 한가득이다. 셀 수 없이 많다. 거기서 문득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나의 남편이 왜 생각나는고? 밤늦게 집에 가서 "여보~ 선물~" 하면서 꺼내놓으면 호홋 꽤 괜찮을 듯. 그래서 슬쩍 두 개를 가져왔다. 그래 놓고 가슴이 콩당콩당 아, 미치겠다.


특실이면서 코로나 19로 창가에 단 한 명씩만 배치되어 그야말로 객실은 여유롭다. 나의 옆 통로를 지나 창가에 앉은 신사복을 쫙 빼 입은 남자가 일어나 문쪽으로 간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오는 그의 손에 과자봉지가 들려있다. 헉! 그런데 두 개! 나는 불안하여 일단 봉지를 재빨리 뜯어 알맹이만을 나의 가방 속에 쓸어 넣기 바빴는데 흠 이 남자 그런 거 없다. 너무도 당연한 듯 과자 두 개 중 한 개는 의자 테이블에, 한 개는 지극히 여유롭게 가방에. 슬쩍 드는 생각, 저 남자도 집에 있는 아내가 생각났을까?


그러나 모두가 이렇게 두 개씩 가져간다면 그러면 누군가는 모자라서 못 가져가지 않을까? 특실 사람들 모두에게 주어지는 한 봉지씩일 텐데. 그깟게 뭐라고 난 왜 두 개를 슬쩍 집어와 이렇게 맘고생을 한단 말이냐. 다시 가져다 놓을 수도 없고. 차라리 당당하게? 아, 그래도 당당할 수는 없지. 내 몫이 한 봉지인데 난 슬쩍 두 개를 가져왔으니까. 문제는 아무도 안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중에서 딱 한 개만 가져오는 게 누군가 알아준다면 생색이 나고 신나겠는데 '저 여자는 참 정직하구나' 모 이렇게. 그러나  이경규가 간다도 아니고 누가 보면 정직하고 안 보면 슬쩍하고? 그건 아니잖아 엉엉 바보.


아무도 안 본다니? '하나님께서 보시고 계시잖아요.' 문득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재활용하는 날 흰 봉투 속에 돈이 든 줄도 모르고 함께 버렸는데 한참 후 분리수거하는 아주머니가 찾아오셨단다. 돈 함께 버리지 않으셨냐고. 단독 주택에 사는 친구는 하도 신기해서 물어봤단다. 아무도 안 보는데 현금인데 그냥 가지셔도 될 텐데 굳이 찾아주시나요? 했더니 그분의 대답이 '하나님께서 보시잖아요.' 였단다. 형편도 좋아 보이지 않던데 그렇게 말을 하며 돈을 가져와 무척 놀랐다고 했다. 그때 감동하며 그렇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지. 했는데 아, 난 양심이 글러먹은 걸까.


그런 예는 또 있다. 신앙심이 아주 깊은 성가대 내 옆자리 분이 말했다. 계산을 하고 보니 한 갯값만 냈는데 두 개가 겹쳐져 딸려 왔더란다.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서 그거 기다려서 한 개 돌려주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는 말을 했다. 아, 그럴 수 있을까? 살짝 겹쳐진 두 개가 한 갯값으로 계산되었다면 오호 횡재라. 이게 웬 떡? 난 그랬을 것 같다. 그 길고 긴 줄을 기다려서까지 돌려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 믿음의 차이일까. 그깟 과자 한 봉지가 무어라고 하나 더 들고 와서 이리 맘고생일까? 에구 나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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