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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l 18. 2020

무룡산

비가 쏟아져도 우리는 간다

舞 춤출 무 
龍 용 룡 
山 뫼 산 
옛날 옛날 아주 옛날 무룡산 꼭대기 연못에 일곱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일곱 명의 선녀들이 내려와 신나게 놀고 용들과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그런데 한 마리가 앞을 못 봐 가지 못한다. 함께 놀던 한 선녀는 마음이 아프다. '내가 남아 그를 지켜야지.' 결심하고 그 용의 곁에 남는다. 결국 여섯 명의 천사와 여섯 마리의 용만 하늘로 간다. 옥황상제는 불같이 화를 내며 올라온 선녀와 용들을 다시 그 무룡산 연못으로 보내버린다. 나중에 옥황상제의 노여움이 풀리고 선녀와 용들은 모두 승천한다. 그리고 연못은 없어진다.   



집을 나서는데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괜찮을까? 대장에게 전화를 하니 "언니 괜찮아요. 비 와도 갈 수 있는 곳으로 잡았어요." 그냥 고우 고우 진행이란다. 그래? 그렇다면. 비가 오는데 등산복에 배낭에 지팡이까지 꼽고 가니 사람들 시선이 내게 꽂힌다. 푸하하하 아, 쑥스러워라. 그러나 뭐. 남들 시선에서 자유로워야지. 그래. 난 빗속에 등산 간다. 비가 쏟아져도 우리는 간다. 파이팅!!! 푸하하하 



매주 수요일 우리는 산에 간다. 스카이라고 작은 애 고등학교 다닐 때 함께 학교 일하던 엄마들의 모임인데 애들은 이미 커서 사회에서 단단히 한몫들 하고 있지만 우리 엄마들은 그때처럼 만난다. 그중 산을 좋아하는 엄마들끼리 또 뭉쳤다. 딱 다섯 명. 너무 많아도 힘들고 너무 적어도 재미없고. S, L, P, C, 그리고 나. 산을 잘 아는 S가 대장. 운전은 L과 S. 막걸리와 안주는 P와 C. 나는 가끔 밥을 사기로 한다. 그리고 준비는 간단히. 자기 먹을 도시락만 싸오기. 



스카이에서 나왔으니 스카이 산악회라고 명명한다. 푸하하하 꼴랑 다섯 명의 산악회. 그러나 기동성 좋고 함께 한 세월이 크고. 오케이. 발대식을 날 잡아 멋지게 하기로 한다. 단 두 명이어도, 비가 쏟아져도 수요일 산행은 진행하기로 한다. 산에 들어서니 비가 더욱 쏟아진다. 우산을 하나씩 챙겨 들고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걷는다. 비와도 걸을 수 있는 곳이라더니 아닌 게 아니라 산으로 가는 길이 쫘악 포장되어 있어 쏟아지는 비가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도리어 분위기 최고다.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수요일이면 배낭 메고 등산화 신고 밥과 반찬 몇 개 넣어 훌쩍 떠나는 것이다. 수요일엔 산에 가요~  



비가 쏟아져도 도로가 깨끗하니 걷는 건 문제가 없는데 밥이 걱정이다. 산속에서 점심밥을 맛있게 쫘악 펼쳐놓고 먹어야 하는데 비가 오니 산속은 안 되겠다. 그렇게 잘 포장된 도로를 걷던 중 왼쪽으로 돌려 보니 앗. 멋진 정자가 나타난다. 와우. 일단 지붕이 있는 저 정자로 가자. 아직 점심시간은 안되었지만 너무 비가 쏟아지니 일단 좀 쉬기로 한다. 이미 그 정자에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빗속에 다가가니 "어서 오세요~ 이리 올라오세요~" 반갑게 자리를 만들어 준다. 빗 속에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 다 하나 되어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이 감자 좀 드세요. 서로 먹을 걸 권하기도 한다. 감사합니다. 하하 산에 오면 모두 친구가 된다. 그런데 다정한 부부로 알았던 그중 한 부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부부가 아니었고 그리고 새로 합류했다는 혼자 산에 왔다는 한 남자는 "친구들 데리고 올 테니 다음 주 수요일에도 여기로 오세요." 하는 통에 뭔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즐겁게 나누던 대화에서 약간의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우리가 쌀쌀해지니 그들도 떠나간다. 그러는 새 이미 12시가 넘었고 비는 계속 쏟아지니 멀리 가지 않고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대장 S는 항상 커다란 식탁보를 들고 다닌다. 산속 어디서고 펼치면 우리의 밥상이 될 수 있는. 오늘은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고 있어 지붕이 있는 정자 안에 상보를 깐다. 그리고 그 위에 각자 준비해온 맛있는 반찬들을 쫘악 펼쳐놓는다. 오이, 풋고추를 비롯해 깻잎 장아찌, 열무김치, 죽순 들깨 볶음, 콜라비 깍두기, 멸치조림, 달걀말이, 총각김치, 쌈장.... 각자 가져온 두세 개를 펼쳐놓으니 없는 게 없다. 무얼 먹어도 맛있는 산 위에서의 식사. 게다가 비는 주룩주룩 쏟아지고 안개가 피어오르듯 뭉게뭉게 산 위로 펼쳐지는 하얀 무리. 아, 춥다. 모두들 잠바를 꺼내 입는다. 한여름에 춥다니. 하하.


  

S가 서둘러 정자 밖으로 나가더니 꽃이 달린 몇 가지를 끊어 온다. 그녀는 다도를 즐긴다. 직접 다식도 만들고 과일 정과도 만든다. 그렇게 정성껏 만든 다식과 함께 보이차를 주어 우리의 디저트를 멋지게 해 준다. 꽃과 함께 펼쳐지는 산속에서의 우리의 디저트. 보이차를 마시며 우린 감탄한다. 아, 너무 깔끔해. 



비가 오니 위험한 건 계곡을 건널 때이다. 맑은 날엔 아무 상관없이 지나던 길인데 물이 좔좔 흐르고 있고 건널 돌다리를 찾을 수가 없다. 여차하면 빠질 판이다. 선발대가 지팡이로 이리저리 두들겨 돌을 찾아내고 그래도 없으면 주위에서 커다란 돌을 찾아 풍덩 빠트려 직접 돌다리를 만들며 건너간다. 비가 올 때 계곡은 위험하다던데. 그래. 빨리 서두르자. 빨리빨리. 휙휙.



드디어 위험한 계곡을 벗어나 안전한 돌다리가 있는 곳으로 나온다. 물이 좔좔 흐르는 이 곳에서 진흙덩이가 묻어있는 지팡이도 닦고 신발의 흙도 떨어낸다. 무사히 계곡을 통한 산행을 마친다. 안심이다. 



박상진 호수공원으로 이어진다. 커다란 호수에 미로 찾기 꼬불탕꼬불탕 나무다리가 놓인 곳을 하염없이 걷는다. 안전지대로 오니 이젠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걱정 없다. 거창한 계획 없이 그냥 우리의 일상인 듯 자연스럽게 매주 수요일엔 산행을 하자는 게 우리의 계획이다. 이름은 특별히 못 지어 그냥 스카이 끝에 산악회만 붙여 일단은 스카이 산악회다. 좋은 이름을 생각해오자~ 가 다음 주 과제이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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