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Mar 01. 2019

왜 굳이 내 옆이었을까?

젊은 청년이 옆에 텅 빈 커다란 테이블 마다하고 내 옆에 

참 이상하다. 그는 굳이 왜 내 옆이었을까? 이른 아침이었고 개방시간 막 지난 때라 아직 도서관 안은 빈자리가 많이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내 옆에 가방을 놓고 부석부석. 아마도 누구 자리를 맡아 주는 가보다 했는데 결국 그 자리에 앉는다. 헉. 왜? 살짝 둘러보니 커다란 테이블이 네 개씩 붙어 있는 이곳. 내가 앉은 곳을 빼고 내 앞의 커다란 테이블도 비어있고 그 옆 창가에 한 분이 앉아있고 그리고 내 옆의 커다란 테이블도 비어있는데 왜? 

살짝 조심스럽다. 난 주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데 혹시 그에게 거슬릴까 조심조심 소리가 안 나도록 최대한 노력하며 도도도 독 두들긴다. 그러면서도 너무 시끄럽지 않나요? 저기 옆자리로 가면 좀 조용할 텐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정말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웬 오지랖일까 싶어 꾹꾹 참는다. 맞다. 젊은이들은 귀에 이어폰을 꼽고 주로 공부하던데 그렇다면 상관없지. 하면서 살살 옆을  훔쳐보는데 헉 아무리 시간이 가도 귀에 무얼 꼽고 그러지 않는다. 그냥 맨 귀다. 아... 더 조용히 살살 살살. 


꼭 이 청년이어서뿐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노트북으로 주로 글쓰기 작업을 하는 분은 소음발생이 심하니 디지털자료실을 이용하시오!라는 경고문이 딱 붙어있다. 그러나 이 집중 잘 되는 곳을 두고 어딘지도 모르는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냥 버티고 있는데 정말 조용히 하느라 애쓰고 있다. 그래도 곁의 청년은 더욱 신경이 쓰인다. 행여 나의 노트북 두들기는 소리가 방해될까 봐. 그가 화장실 간 새 슬쩍 무슨 공부를 하는가 본다. 헉 두툼한 법학 관련 서적이다. 두꺼워도 두꺼워도 너무너무 두껍다. 그 책 가운데 작은 종이가 놓여 있고 거기에 잔 글씨로 무언가 마구마구 휘갈겨 적혀있다. 그러니까 그 청년은 그 두꺼운 책을 지금 손으로 마구 적어가며 외우고 있는 중이다. 아. 어떡하지? 외우는 것이라면 더더욱 얼마나 나의 이 두들겨대는 소리가 방해될까. 


그런데 왜 짜증 난 얼굴도 아니고 그리고 아직 옆자리 많이 비어있는데 내 옆을 고수할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본다. 와이? 혹시 그 자리가 그 청년의 붙박이 자리? 그건 나도 그렇다. 뭔지 모르지만 내 자리 같은 곳이 있고 거길 한 번 정하면 언제나 그 자리로 온다. 나도 신중하게 고른 나의 붙박이 자리가 있다. 처음엔 밑에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아 우아 모 이런 천국이 있나 했다. 뜨거운 여름이었고 시원한 도서관에 들어가며 감동했는데 창가에 앉으니 의자 밑에서도 바람이 솔솔 우아아아아아 너무 시원하다. 어쩜. 그렇게 감동했지만 도서관에 오래 있으려니 계속 밑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은 정말 부담이 되어 자리를 바꿨다. 전화 부스가 가깝고 화장실도 가깝고 그러면서 맨 끝이 아닌 끝에서 두 번째. 거기에서 책장이 있는 안 쪽으로. 의자도 밑에 거슬리는 게 없어 빙글빙글 잘 돌아가고 보고 싶은 책을 옆에서 척척 꺼내 읽을 수도 있고 아, 너무 좋다. 


그렇게 나의 붙박이 자리에 오늘도 나는 앉아 있다. 그런데 혹시 늦게 와서 내 붙박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을 때! 또는 나의 붙박이 자리 바로 옆에 누군가 있을 때 나는 멀리 다른 자리를 택한다. 게다가 나의 붙박이 자리 근처 테이블이 텅텅 비었을 때야 두말할 필요 있나. 옆 테이블로 가 앉는데 저 청년은 도대체 왜! 여유롭게 빈 테이블을 마다하고 내 옆자리에 콕 붙어 앉아있는 것일까. 외우는 공부를 하면서도. 정말 거기가 그 청년의 붙박이 자리이고 누가 있건 없건 자기 자리를 고수하는 쫌 고지식한 청년일까? 조심조심 아주 조심조심 조용히 노트북을 두들기며 나는 자꾸 옆의 청년이 신경 쓰인다. 공부가 잘 되어야 할 텐데. 잘 외워져야 할 텐데.  

매거진의 이전글 불꽃놀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