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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06. 2020

1972년도 일기 5

중학교 3학년 때


1월 13일 목요일 날씨 맑음


지금 방금 큰일이 생겨났다. 말하기 조차 창피한 일이다. 내가 왜 정신을 못 차리고 그러한 짓을 했을까? 순간적으로 꺼낸 책 때문이었다. 뒤늦게나마 잘못을 깨달았다. 하루 종일 공부도 안 했다. 그 책을 어떻게 처치할까? 다신, 순간적의 마음을 억누르도록 노력하겠다. 내 꼴이 너무도 비참하고 초라해 보인다. 들킨 걸까...! 불안, 초조 때문에... 나에게 중요한 것은 공부이다. 공부... 공부... 자꾸자꾸 되풀이해본다. '시시한 쾌락만큼 인간을 작게 만드는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자꾸자꾸 되새겨 보자. 하루를 허무한 실수로 보내고 난 후의 지겨운 기분을 상상하리라.


1월 14일 금요일 날씨 맑음


이름을 바꿨다 한다. 내 이름은 혜원이, 오빠는 준철, 병진이는 준호. 내 그 전 이름에 대해 애착심이 더욱 강해져 온다. 혜영이란 이름이 더없이 좋게 느껴진다. 혜원이란 이름은 맘에 들지가 않는다. 그래서 과외 애들에게도 말을 못 했다. 그들이 영영 혜영이란 이름을 잊을까 두려워서...  엄마의 그 우리들을 성공시키시려는 애타는 마음을 우리가 깨닫고 노력해야 할 텐데... 오자마자 피로하여 만화책으로 머리를 식혔다. 책은 근처에도 안 갔다. 맘껏 쉬어 볼 양으로...


1월 15일 토요일 날씨 눈


오늘 경화와 새벽같이 태능에 갔다. 춥더라도, 싫증 나더라도 오기로 끝까지 타 볼 양 새벽 8시에 만나 출발했다. 지각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말엔 약간 화가 났지만 나의 잘못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자가용으로 갔다. 눈이 펑펑 쏟아질 때 왠지 마음이 들떴다. 태능에 도착하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사람은 너무 일러서인지 한 명도 없고 선수들만이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수들에게 꿀려 대뜸 나가 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선수들만 있는  곳에 잘 타지도 못하는 우리 둘이 어떻게 그들 틈에 끼일 수 있었겠는가. 일찍부터 가서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이 지나친 욕심이었는지도...

 

1월 16일 일요일 날씨 맑음


온 가족이 또 스케이트장엘 갔다. 오빠, 나, 병진 아니 준호, 영환 이렇게 넷이서 갔다.  어제의 피로가 안 풀렸던지 발이 아파서 제대로 타지도  못했다. 200원이 아까왔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에 걸작 모습으로 타고 있었다. 목엔 수건을 두르고 휘파람을 불며 타고 있는 노선생의 꼴이란... 그 누가  체육선생으로 보아줄까...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아니, 내가 그렇게 까지, 그것이 한심스러운 일이 될 리도 없지. 3일 동안 공부의 ㄱ 자에도 신경을 안 쓴 나!  차라리 편했었다고 말해 버릴까. 과외비를 6000원으로 올렸다는 엄마의 말. 공부만이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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