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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16. 2020

1972년도 일기 14

중학교 3학년 때

2월 10일 목요일 날씨 눈


왜 이럴까. 요사이. 시험 때라서 일까. 너무도 평범한 나날이다. 앞으로 1주일. 1주일만 지나면 미워하는 사람과 모두 헤어지게 된다. 기다려진다. 오늘 처음으로 이번 시험에 싫증을 느꼈다. 내일 시험도 잘 볼는지... 석주. 왜 그렇게 내 앞에서 얄밉게 구는 것일까. 운동하는 힘든 일만을 부반장에게 시키는 우리 선생. 어서 헤어지고 싶다. 마치 노이로제에나 걸린 듯이 그 선생 보기가 두려운 때문이다. 어서어서 세월이 흘러가길. '참고 견디라' '힘을 내라'


2월 11일 금요일 날씨 눈


새벽길, 아무도 침범하지 않은 새하얀 눈길을 좋아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상상할 수 없으리 만치 좋은 극도의 기분이었다. 눈. 눈. x  x  내가 잘못한 것일까.  하긴 너무 급속히 말이 나와 끝을 맺지도 못했지. 나에게서 영화 이야기 나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니 엄마 화내실 만도 하지. 하지만 내가 미리 약속을 해 놓았으니 또 더욱더 신세를 지는 것 같고, 앗사리 깡그리 갚아버린다는 뜻에서 내일 '송 오브 노르웨이'를 구경시켜 주겠다. 내 돈으로 그에게. 그 후엔 다시 정상의 혜영으로 돌아와야지. 


2월 12일 토요일 날씨 눈


난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하려 하며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하려 할까? 시간 갔는 줄 모르게 잠이 안 오는 이 밤. 무엇을 할까? 잘까? 건강을 위하여... 약간 너무한 감은 있으나. 에드워드 그리그의 생애를 그린 '송 오브 노르웨이': 처음엔 잘 모르고 지루하게 보며 후회를 많이 했지만 두 번째 볼 때에는 색다른 것을 느꼈으며 지루한 감이 없었다. 런던 심포니 악단의 음악은 매우 아름답고 듣기 좋았다. 배경도 무척 멋진 산들이었다. 특히 '솔베이지 쏭'은 노래가 슬픈 듯 은은히 들리며 어딘가 가냘픈 곡이 나의 마음을 끌었다. '노르드락'의 죽음. 친구의 죽음과 출세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그리그' 결국 친구는 혼자 죽어갔으나 그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작곡가가 되었다. 결핵병에 홀로 죽어간... 그러나 끝까지 꿈 많던, 또 많은 꿈을 버리지도 않았던 노르드락의 끝의 죽음에 눈물이 나올 듯했다. 정말 친구다운 친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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