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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18. 2020

1972년도 일기 15

중학교 3학년 때

2월 13일 일요일 날씨 맑음


오늘은 하루 종일을 청계천까지 돌아다니며 모옴 단편집을 구하느라 하루 시간을 모두 보냈다. 


그는 온다
                  -타고 오르-

어제도 오늘도 그는 온다.
그리고 가 버린다.

친구여 이리 오라.
그리하여 그에게 내 머리에 
꽂은 이 꽃을 갖다 드리라.

만일 누가 보내더냐고 붇거들랑
제발이지 내 이름을 
일러주지 말아 다오. 


2월 14일 월요일


- 그는 그저 왔다
그대로 가버리는 것이거니.

그는 나무 아래
- 먼지 위에 앉는다. 

거기에 꽃과 나뭇잎 새로
멍석을 편다. 친구여, 

그의 눈은 술퍼 보인다.
그것을 보니 내 마음도 슬퍼진다. 

그는 가슴에 품고 있는 
일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왔다 가 버리는 것이거니.


2월 15일 화요일 날씨 맑음


오늘 구정이다. 학교에서 파한 후 집에 와 한복을 차려입고 큰댁에 갔다. 내 모습에 이쁘다고들 했다. 옷고름 때문에 골치는 썩었지만 그런대로 이뻤는가 보다. 엄마가 오늘부터 집에 계시기로 했다 한다.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내일부터 자랑도 열나게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 과외에서도 떨어지지 않도록...


2월 16일 수요일 날씨 맑음


노오벨 문학상을 받은 '이반 제니 소비치의 하루'를 다 읽었다. 묵묵한 그의 생일! 그 책을 읽노라니 그 책의 괴상한 힘에 빨려 들어가듯 이상야릇하고 흐뭇한 것을 느끼기도 했다. 죄수들의 수용소 생활을 그린 것인데 한 막사 막사에 대해 친구 같은 아니 가족 같은 다정한 분위기도 느꼈고 정말 흐뭇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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