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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21. 2019

여고시절 친구

드문드문 만나도 금방 그 시절로




나의 여고시절이라면 지금으로부터 46년 전 그러니까 1973년이다. 그때 우리 학교 선배님들은 비밀리에 사람을 뽑았다.  무슨 특공대라도 된 양 그렇게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서클.  종로에 있는 태화관이라는 곳에서 매주 만나 독서토론회를 비롯해 많은 활동을 했는데 그런 서클 자체가 그 당시 학교에서는 불법이었다.  그래서 아주 비밀리에 사사사삭 회원 모집이 진행되었다.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남학교에선 또 그 학교 선배님들이 자기 서클 후배들을 엄선하여 뽑았고 그렇게 3월에 신입생 환영회라는 것을 하며 처음으로 남학생들을 단체로 만났다. 남학생 만나는 것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매주 한 번씩 학교 끝나고 태화관에 가 함께 읽어온 책에 대해 토론하는 일은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여하튼 그때 그렇게 설렘으로 만나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 모음집도 등사판을 긁어 주일마다 펴내던 우리들은 세월이 흘러 흘러 각자의 삶을 살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만나게 되었다. 몇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의 첫 만남에서 얼마나 얼마나 쿵쿵 쾅쾅 나의 가슴은 뛰었던가. 척 보는 외모는 모두 변했어도 조금 이야기하다 보니 다가오는 40여 년 전 그 모습 그 느낌들. 그때 그 친구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친구들 중 한 명인 나의 여고 동창 혜경이. 아직 회사에 다니는 그녀는 바쁘다. 그래서 백수인 내가 그녀 사무실 곁으로 간다. 모처럼 서울에 왔다 하니 꼭 만나야 한다 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나온 그녀는 맛있는 것을 푸짐히 시킨다. "서울에선 내가 책임진다. 울산 가면 네가 사줘~ " 하면서. 하하 그렇게 우리의 특별한 점심은 시작된다. 여고동창들 일에서부터 우리의 그 옛날 서클 이야기까지. 아직 현역에 있어 많이 바쁜 친구들. 그래서 일 년에 단 두 번 만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일단 만나면 남자애들까지도 금방 누구야 누구야 이름 부르며 깔깔거리게 된다. 정말 쏜 살같은 빠른 세월의 무상함을 잊게 하는 즐거움이다.



젊은 애들 가득한 드넓은 카페에 60대 할매 둘이 앉아 옛이야기로 깔깔 푸하하하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우리 이 순간을 남겨볼까? 얼짱 각도로 예쁘게 해 봐." 셀프 카메라로 돌려놓고 요렇게 조렇게 폼잡는 우리가 너무 웃겨 하하 푸하하하 막 웃는다.  그렇게 깔깔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훌쩍 그녀가 회사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아쉽다. 나는 온 김에 카페에 남아 우리의 귀한 순간을 남겨보려 한다.  



혼자 밥 먹는 것도 못하던 내가 얼마나 용감해졌는가. 젊은이들만 가득한 카페에 둘도 아닌 홀로 글까지 쓰게 되었으니 하하. 잠깐이지만 친구와 함께 한 이 따뜻한 시간. 그냥 그렇게 서로 보듬으며 오래오래 가는 거다. 지금 이 순간 만날 수 있음에 카페에 있을 수 있음에 마냥 감사하면서.



여고시절 친구가 함께 60대가 되었다. 이렇게 세월은 흘러 흘러 70대가 되고 80대가 되겠지. 그때의 삶은 또 어떻게 될까?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그 어떤 괴로움도 마치 소설 속 이야기를 읽듯 담담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죽는 순간마저도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을 것 같다 하하. 그러니 두려울 게 무어냐. 한낱 소설 속 이야기일 뿐인데 하하. 파이팅!!!


참 아름다운 오후다. 친구와 깔깔거리고 나니 막 기분이 좋다. 열심히 일 잘하고 있겠지? 이렇게 난 서울에서의 특별한 오후를 기록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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