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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03. 2019

도서관 가는 길

5분의 배려 참 잘했다.

9시 2분. 도서관을 코앞에 두고 시계를 보니 9시 2분. 다리를 건너 도서관 안에 들어가면 꼭 5분 늦겠다. 그렇다. 꼭 5분. 내가 그 할머니만 모른 척했더라도 난 제시간에 올 수 있었을 텐데. 일단 도서관을 문 앞에 두고 9시 2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보자 나는 헉헉대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빨리 하던 걸음 속도를 늦추고 하아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포기다. 포기. 참 싫은 단어 포기. 그래도 이미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지금 평일이기에 도서관 문 열기 전에 그 앞에 포진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난 아직도 도서관에 가려고 맘 잡은 날은 꼭 개방 전에 도착하려 애쓴다. 그러면 방학 때는 어마어마하지만 오늘 같은 평일에도 매일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로 문 앞은 붐빈다. 문 열리기를 기다리며 두리번거리다 보면 아침마다 보아 얼굴이 익은 사람이 있기도 하다. 그렇게 핸드폰을 뒤적이며 보며 기다리다 보면 9시 땡 하는 순간 문이 열리고 우우우우~ 기다리던 무리들이 3층 열람실까지 몰려 뛰어간다. 나도 덩달아 막 뛰어 올라가며 그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 전 1970년 내가 뺑뺑이로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배화여중에 들어갔을 때로 막 돌아간다. 내가 지금 막 그때 그 중학교 1학년생이 되어있는 것만 같다.


일요일이면 엄마를 졸라 도시락을 싸들고 사직공원 안에 있는 시립도서관에 갔다. 친구들과 연락하며 누구라도 일찍 오는 사람이 줄 서 있기. 나중에 와서 기다리던 친구와 합류가 되었는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새치기가 허용되었는지 가방을 놓아 자리 맡아 주는 것이 가능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침 일찍 온다고 와도 길게 길게 늘어서 있는 줄. 거기 자리 잡고 하염없이 기다리다 보면 문이 열리는 데 그야말로 아슬아슬. 아주 넉넉히 일찍 온 날에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책상이 시원스레 배치되어있는 종합열람실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줄이 끊기면 그다음엔 시청각실이다. 조그마한 테이블이 달려있는 의자들이 방 하나에 가득한 그런 곳이라도 자리라도 잡으면 다행이다. 이 줄마저 끊기면 그때는 그야말로 누군가 도서관에서 나오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땡볕에 그렇게 많이 기다렸던 기억이다.


그때 그 기억 때문인지 9시 문 열기 전에 도착해 줄 서서 기다리다 막 뛰어들어가는 학생들과 함께 나도 막 뛰어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엄선하여 뽑은 나의 자리. 의자 굴리기가 편하고 시야가 확 트이고. 나름 몇 번 옮겨 다니며 정한 최고의 자리이다. 그러나 나에게만 최고인가 보다. 그렇게 후다다닥 뛰어오는 많은 사람들 대개는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다. 누구는 창가에 누구는 책 가에 누구는 나 홀로 자리에. 정말 취향도 가지각색이지만 어쨌든 중학교 때 힘들게 자리 잡던 버릇 때문인지 나에게는 도서관은 문 열리기 전에 도착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늘 있다. 다행히 오늘 5분 늦었지만 나의 자리에 누가 침범하지는 않았다. 남들에게 내 자리는 최상의 자리가 아닌가 보다. 참 다행이다. 하하 이제야 드는 생각. '할머니 도와드리기를 잘했어.'


할머니란 무슨 이야기냐. 난 여기 도서관 오는 길을 참 좋아한다. 우리 집에서 나와 조금만 걸어 나오면 강변으로 쫘악 펼쳐진 산책로가 나온다. 그 길 따라 마구 걷다 보면 도서관이 나온다. 그 산책길에 도착하기까지 한 15분 정도는 횡단보도도 나오고 시장길도 나오고 작고 낡은 상가가  밀집한 낡은 도로를 지나야 만 한다. 세탁소 미장원 노래방들이 즐비한 낡은 거리를 급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와이? 오늘 조금 늦었다. 그런데 미장원 앞 돌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할머니가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일분일초를 다투며 발걸음을 서두르던 나는 살짝 정말 살짝 '할머니 제가 지금 너무 급해요. 죄송해요.' 하고 지나칠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그 상가 도로에는 차들만 북적일 뿐 걷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 네? 하고 다가갔다.


"나 여기 전화 좀 해줘. 머리 하러 와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서 미장원 문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가리킨다. 아. 네. 네네. 하고는 나의 핸드폰을 꺼내 미장원 문에 적힌 두 개의 번호 중 핸드폰 번호를 돌린다. 아, 난 사실 급한데. 그래도 전화를 돌리는데 그런데 전화벨이 아무리 울려도 받지를 않는다. 아이참. 왜 안 받을까? 급기야 연락이 안 된다는 모 그런 멘트가 흘러나오는데 일분일초를 다투는 내가 거기서 받지도 않는 전화를 마냥 걸어드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난 할머니에게 말한다.


"할머니. 지금 전화를 안 받아요. 제가 지금 급해서 그러는데요 제가 가면서 계속 전화할게요. 그래서 할머니 머리 하러 와 계시다고 말할 께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급해서요."


그리고는 서둘러 떠나며 그 번호로 전화를 계속 건다. 한참 만에 몇 번이나 건 후에 어떤 여자가 잠이 덜 깬 음성으로 받는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길가던 사람인데요, 미장원 앞에 할머니께서 머리 하러 아까부터 와서 기다린다고 전화해달라고 하셔서요."  "그래요? 바꿔 주세요." "아 제가 갈 길이 급해서 할머니는 지금 미장원 문 앞에 앉아계시고 저는 지금 제 갈 길을 가고 있어요. 할머니가 아까부터 문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가보세요."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이 모든 시간이 한 5분 걸린 것 같다. 그렇게 도서관 개방시간에 난 딱 5분 늦는다. 그 할머니는 금방 미장원에 들어가셨을까? 도서관 내 자리에 안착하고 보니 이제야 할머니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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