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산 잘 타는 아이가 보내온 시
오늘 우리 초등 동창 해외 친구 방에는 시카고에 쏟아진 함박눈으로 시끌벅적이다. 시카고의 글 잘 쓰는 아이에게 글에 맞는 사진을 보내라 하니 그곳은 이미 깜깜한 밤이라 즉시 찍어 보내온 사진도 아주 깜깜하다. 그래서 산 잘 타는 아이에게 겨울산 사진 좀 멋지게 찍은 거 있으면 보내라고 하니 감감무소식이던 그 애가 이제야 보내왔다. 난 이미 깜깜한 한밤중의 시카고 사진으로 올렸는데 말이다. 너무 늦은 게 미안했는지 어느 시인의 시를 함께 보내온다. 하하 그 애가 직접 산에 가서 찍은 사진도 멋지고 딸려온 <임영조> 시인의 시도 너무 좋다. 겨울 산행 때의 느낌을 어쩜 이리도 잘 표현했을까. 내가 지금 매서운 한 겨울 산행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따로 만든다.
겨울 산행(山行)
눈 오다 그친 일요일
흰 방석 깔고 좌선하는 산
아무리 불러도 내려오지 않으니
몸소 찾아갈 수밖에 딴 도리 없다
가까이 오를수록 산은
그곳에 없다
다만 소요하는 은자의 처소로 남아
오랜 침묵으로 품(品)을 세울 뿐
어깨는 좁고 엉덩이만 큰 보살
도량이 워낙 넓고 깊으니
나무들은 제멋대로 뿌리를 박고
별의별 짐승까지 다 받아주는
이승의 마지막 대자대비여!
뽀드득 뽀드득 잔설을 밟고
숨가쁘게 비탈길을 오르면
귀가 맑게 트이는 법열이여!
잡목들이 받쳐든 푸른 하늘에
간간 수묵을 치는 구름
눈짐 진 노송이 문득
잘 마른 화두 하나 던지듯
옜다! 솔방울을 떨군다
덤불 속에 멧새들이 화들짝 놀라
재잘재잘 산경을 읽는 소리
은유인지 풍자인지 아니면 해학인지
들어도 모를 난해시 같다
좌우간 정상에 있을 때 몸조심하고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욱 조심하도록
귀뺨을 때리는 눈보라여!
단지 헝클어진 마음이나 빗으러
겨울산을 오르는 나는
리얼리스트인가?
로맨티시스트인가?
그것이 알고 싶어 산에 오른다 <임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