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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03. 2021

미나리

국내 극장에서첫 개봉하는 날

남편과의 데이트다. 미나리 그 첫 개봉을 보기 위함이다. 고깃집에서 합리적인 가격의 점심특선을 먹고 오늘 개봉하는 세계적 영화 미나리를 보는 코스다.

이렇게 사람 많은 고깃집은 11시 반에 와야 새로 만든 음식으로 아주 깔끔하게 먹을 수 있어. 어때 가성비 이만한 곳이 없지?


그렇게 경치 좋은 곳을 예약해 느긋하게 브런치를 즐긴다. 아침도 안 먹고 배를 좀 굶긴 후에 식당으로 직행. 푸하하하 아내인 나도 편하고 우리의 뱃속도 편하고. 그리고도 커피타임까지 느긋하게 즐긴 후 새로 생긴 깔끔한 영화관으로 직행한다.

여보 이게 다 세련된 와이프가 치밀하게 시간 계산하여 예약한 덕이야. 할인도 대폭 받고 모든 게 완벽하지?


생색을 있는 대로 내며 드디어 영화관 도착. 새로운 고민에 빠졌으니 팝콘을 살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극장에서 분위기상은 당연히 팝콘이 있어야 하는데 밥을 가득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온 우리. 여기 다시 콜라와 팝콘? 노노노 그건 너무 배부르잖아. 그래도 영화하면 팝콘이지. 아, 살까 말까? 그러나 깔끔한 영화감상을 위해선 안 사는 게 맞다. 팝콘에 콜라에 또 먹으면 입안이 지저분해질 테고. 음, 그래도 극장에선 팝콘인데. 아 어떻게 할까? 그래 깔끔하게 영화에만 집중하자. 팝콘 안 사! 위대한 결정을 내리고 상영관 안으로 직행.


옛날엔 애국가에 대한뉴스에 국기에 대한 맹세까지 무언가 영화 보기 전 준비작업이랄까 서서히 몸과 마음이 정비되던 기억인데 지금은 아니다. TV에서 보던 온갖 광고만이 시끌벅적이다. 얼마 만에 온 영화관인가. 광고를 끝도 없이 봐야 한다. 집에서처럼 소리를 죽일 수도 없고 에구 꼼짝없이 저 시끄런 소리를 들어야 하네. 화면은 또 왜 이리 흐릿할까? 워낙 고화질 화면을 집에서 봐왔기 때문일까. 영화관 스크린 화질이 영 맘에 안 든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된다. 그냥 옆집의 어떤 삶을 보는 듯 무리 없이 일어날 법한 대화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거대한 농장을 꿈꾸는 남편과 정상적인 도시의 삶을 원하는 아내.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젊을 때 서로 죽고 못살며 불렀다는 노래는 이제 TV에서 흘러나올 뿐이고 부부는 노상 싸움을 한다. 한국에서 온 할머니는 고춧가루에 멸치에 화투를 내놓으며 가족에 합류한다. 심장이 약한 어린 데이비드와의 화해 과정. 한국의 할머니와 미국의 손주. 프리티 보이 프리티 보이 하는 한국 할머니에게 난 예쁜 게 아니야. 잘 생긴 거야! 하며 불만을 한 껏 드러내는 꼬맹이 데이비드. 페니스가 아니야! 딩동이라고 해! 밤에 가끔 오줌 싸는 데이비드. 친구 집 가서 자면 왜 안돼? 교회가 끝나고 교회 친구 집에 가서 자겠다고 떼쓰는 데이비드에게 딩동 브로큰이라 안돼!라고 말해 우리를 빵 터지게 하고 데이비드를 부끄럽게 만드는 한국 주책 할머니. 푸하하하


할머니가 한국에서 심장에 좋다는 한약재로 비싸게 지어간 쓰디쓴 한약을 먹기 싫다고 할머니 몰래 화장실에 쏟아버리고 그 한약 그릇에 자기 오줌을 받아 슬그머니 할머니에게 가져다 놓는 손주. 하하 그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에게 반감이 가득했던 손주가 결국 마음 문을 활짝 여는 과정이 재밌으면서도 감동으로 그려진다.


아 어떡해. 갑자기 찾아온 뇌졸중으로 한쪽 팔다리 사용이 불편한 윤여정이 조금이라도 에 도움이 되고자 식구들 없는 틈에 집안의 쓰레기를 모아 드럼통 안에 넣고 태우다 불똥이 잔디밭에 튀어 훨훨 불타기 시작한다.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농장 전체에 번진다. 훨훨 타오르는 불길. 모든 걸 태우는 시뻘건 불길. 아, 어떡해. 엉엉 눈물이 절로 철철 흘러나온다. 엉엉 어떻게 길러낸 작물인데. 엉엉 아 저걸 어떡해 어떡해 불이 훨훨 타오르고 나의 눈물도 철철 흘러내린다. 엉엉 드디어 농작물 판로도 뚫었는데 다음 주부터는 농작물을 내보낼 수도 있는데. 이젠  돈이 들어올 수 있는데. 뒤늦게 집에 도착한 가족. 훨훨 타오르는 불속에 뛰어들어 조금이라도 건지려다 불속에 휘말리고 거기서 서로를 애타게 부르며 찾다 극적으로 살아난다. 아 타오르는 시뻘건 불꽃 따라 펑펑 울다 보니 영화가 끝나버렸다. 엉엉.


엄청난 불길을 보며 허탈한 할머니가 하염없이 걸어가는데 할머니 할머니이~ 할머니이이이~ 하면서 절대 뛰어서는 안 되는 심장 아픈 데이비드가 할머니를 붙잡으려 막 뛰어간다. 슬로 모션으로 보이는 그 뛰는 모습 따라 나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여보 손수건.


그렇게 클라이맥스와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아,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그러나 이들의 모든 싸움 갈등은 훨훨 타오르는 불길 따라 모두 사라진 것 같다. 가족은 다시 정, 사랑 그런 것들로 똘똘 뭉치게 될 것 같다. 말이 없어도 마지막 아빠와 아들이 미나리 캐는 장면에서 그 모든 걸 느낄 수 있다. 다시 열심히 살아갈 이 가족에게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마구 보낸다. 뜬금없이 남편이 묻는다. 

마지막에 무얼 말하는 거지? 
이젠 갈등 없이 함께 잘 살게 됐다는 거지. 


눈물을 닦으며 내가 자신 있게 말한다. 모두가 많이 행복해지면 좋겠다.


(사진:꽃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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