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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을 맞았다

by 꽃뜰

백신을 맞았다. 남편 친구들이 안 맞겠다는 추세여서 예약을 미루다 그래도 맞자하여 동네 항상 가는 내과에 전화하니 마지막으로 딱 두 자리 남았단다. 그렇게 늦게 예약하여 이제야 맞았다. 서울에서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백신을 맞기 위해 꼭두새벽 5시에 엄마 집에서 출발하여 9시에 도착. 잠깐 쉬고 11시까지 병원 도착.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기실에 앉아있다. 맞으려는 사람, 맞고 30분 대기 중인 사람. 예약 시간까지 지정되어있어 별 기다림 없이 항상 우리를 돌봐주던 의사 선생님께 진찰을 받고 TV에 나오는 그 커다란 주삿바늘 무시무시한 백신을 맞으러 주사실로 들어간다. 네? 벌써 끝이야요? 헤. 아무것도 아니네. 아프지도 않아. 두려웠던 마음은 싹 사라지고 아니 이제부터가 문제라지. 이상이 없는가 30분을 앉아서 대기하다 집으로 온다. 물을 많이 마시라 했지. 물 마시자 여보~ 포트에 뜨겁게 물을 끓여 냉수를 섞어 따뜻한 물을 만든다. 물 마시고 쉬고 거기까진 좋았는데~


엘보가 와서 한 달째 착실하게 병원에 다니고 있는 남편. 오후 시간이 되자 병원에 다녀오겠단다. 의사 말에 매우 순종족인 합리적인 남편과 달리 매우 충동적인 나는 발목 근처가 가끔 아프기도 했지만 좀 지나면 괜찮아져서 굳이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남편이 정형외과 간다 하니 나도 한번? 하고 따라나섰다. 진찰을 받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니 가랑비에 옷 젖듯 힘줄에 한마디로 염증이 생긴 거란다. 나을만하면 다시 그쪽에 충격을 주어 아파지고 그런 상황. 그러나 다행히 관절은 아주 깨끗하단다. 잘 치료해주면 된다며 약을 지어주시고 물리치료 그리고 충격파 치료를 겸한단다. 물리치료실에 올라가 나는 충격파 치료를 먼저 받으라 하여 남편이 들어가는 방과 반대편에 있는 다른 곳으로 들어간다. 아파요? 묻는 말에 아파요!라고 답하는 젊은 물리치료사의 답을 들으며 하이고. 의사가 아프다면 도대체 얼마나 아플꼬?


드드드드 뻐근하게 저려오는 다리. 내가 살짝 아픈 거가 심해졌을 때의 느낌. 아, 너무 아프다. 문득 드는 생각. 백신 맞으면 꼼짝 말고 편안히 쉬라고 했는데 그런데 백신 맞고 이런 거 해도 되나? 저 오늘 백신 맞았는데 이렇게 아픈 거 해도 되나요? 으으으으 아 아파요. 당황한 젊은 물리치료사. 진찰받을 때 말씀 안 하셨나요? 해도 되니까 처방이 나왔을 겁니다. 말했어요. 그런데 처음에 이야기했고 이 치료는 나중에 나갈 때 추가적으로 말씀하시는 것 보아 혹시 잊으신 건 아닐까요? 아아아아 아 아파요. 아, 괜찮을까요? 백신 맞았는데. 하하 난 얼마나 걱정이 되는지. 하필 이날 정형외과를 따라나섰을까. 백혈구가 백신과 싸우는 중에 도움은 못 줄망정 이렇게 고통을 주어서 될까. 분명 의사 선생님께 말씀은 드렸으나 그건 아주 처음이었고 전혀 중요케 생각 않으시는 듯했다. 너무 일찍 말해서 혹시 잊고 이런 처방을 내리신 건 아닐까. 으으응 아파요 아파 충격파 치료라는 그 아픈 걸 참아내며 난 백신이 걱정되어 죽겠다. 자꾸 젊은 물리치료사에게 묻는다. 참을 수는 있는데 백신 맞았는데 괜찮을까요?


나도 참. 어쩌라고. 그 젊은 총각 보고 어쩌라고. 주책이다. 나도 참참참!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 생각하셨으니 처방이 내려졌겠지 일찍 말해 잊고 처방 내린 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왜 하며 그걸 또 물리치료사에겐 왜 자꾸 말해 그를 당황하게 만드느냐 말이다. 불안해서 그가 일찍 끝낸 걸까? 난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에고 고고 병원에선 좀 진득하게 의사가 해주는 대로 가만히 있는 게 좋은데 난 나이도 들었으면서 궁금한 걸 다 묻는다. 백신 맞았는데 괜찮을까요? 이렇게 아파도 괜찮을까요? 어쩌라고. 그 젊은 물리치료사 보고 어쩌라고. 이 아침 생각해보니 그때 내 행동이 너무 철부지 같고 어리석어 보인다. 젊은 물리치료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퐁퐁 솟는다. 언제쯤 되어야 난 모든 곳에서 세련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사진:꽃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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