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서
"헬로, 어게인~"
까만 제복의 경비가 웃으며 말한다. 헉. 뭐지? 저분이 아까 그분? 대충 까만 흑인에 퉁퉁하고 그리고 까만 제복을 입고 있으니 모두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은데 앗, 이 분이 바로 아까 내가 정성껏 물어봤던 그분이란 말인가. 하이고~ 모야. 내가 도대체 어디를 헤매고 있는 거야? 왜 그분이 다시?
한참을 이야기해준 그분 말 대로 난 간다 했는데 뱅글뱅글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왔던 것이다. 하이고 오오오 나를 다시 보니 그분,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런가 보다. 가까이 다가와 웃으며 내가 어디서 어떻게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잘 설명해주려 애쓴다. 고맙기도 하고 무언가 창피하기도 하고 그저 환한 웃음만을 팍팍 날리며 땡큐를 비롯한 온갖 감사의 단어를 줄줄이 복창한다. 하하 감사합니다.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그도 함박웃음을 날리며 손을 흔들어 준다. 하하 아, 유쾌하고 고마운 분.
난 홀로 떨어졌다. 여기까지 와서 해보고 싶은 걸 꼭 해봐야겠다. 해설사와 함께 그림 설명 듣는 프로그램이 공짜라는 사실과 동관에서 3시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이 있음을 안내데스크의 그녀들은 알려 주었다. 난 꼭 그거 체험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지금 세시 10분 전. 여기는 서관. 뛰어가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으리라. 우리 친구들은 자연사 박물관에
가기로 되어있다.
난 동유럽 여행 때 오스트리아에서 거대한 자연사 박물관에 가봤기 때문에 자연사 박물관 가는 것에는 전혀 흥미가 발동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여기 이 멋진 그림이 많은 곳에서 그림을 보며 함께 대화하는 이 프로그램에 꼭 참여하고 싶다.
그래서 친구들 자연사 박물관 가는 동안 난 혼자 빠지기로 한다. 나의 단짝 순기를 꼬셨으나 따로 가는 거 안 하고 친구들과 동행하겠단다. 우쒸.
캬~ 멀기도 하다. 서관에서 동관 가는 거, 초행자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헉헉 헉헉 헐레벌떡
"헬로, 어게인~"까지 들어가며 돌고 돌아 물어 물어 헤매고 헤매다 가까스로 왔는데... 그런데
아무도 없다. 분명히 여기서 그 프로그램이 시작한다고 했는데 말이다.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지. 다시 열심히 영어 한다.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여기 참여하고 싶은 데 어디냐, 여기라고 했는데 아무도 없다. 제발 안내 좀 해달라~ 등등
드디어~
방금 출발했다며 나를 안내해 주는데~
오마 낫 사람들 모여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더니 인사까지 시키네. 에구.
오호호호홋 젊은 남녀 학생과 막 회사에서 일하다 빠져나온 듯한 샐러리맨
그리고 나처럼 이방인 인도 남자가 한 명.
선생님은 아주 젊은 멋쟁이 아가씨다. 키가 크고 늘씬하고 금발이 예쁘게 찰랑거리는.
서관에서 본 할머니 선생님처럼 자상하지는 않다. 약간 신경질적이다. ㅎㅎ
그래도 기본 룰이 여기서는 모두의 의견을 물어보는 건가 보다. 건성으로나마 모두의 의견을 묻는다.
그때 그 서관의 할머니 선생님은 일일이 눈길을 맞추며 참으로 진심으로 대화하던데 여기 젊은 아가씨는
그렇지는 않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그림 앞에서 그렇게 하나하나 질문을 하고 인상을 묻고 어떻게 그 그림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시간이 어찌 흘러갔는지 모른다. 현대판 많은 조형물에서 그림까지. 그렇게 우리는 한 스터디 그룹 되어
열심히 그림 공부를 한다.
아니, 작품들 속으로 마구 마구 너도 나도 빠져들어 간다. 질문도 많고 웃음도 많고. 매 시간마다 각 코너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니. 다음에 시간 많이 갖고 와 마냥 이 미술관에 머물고 싶다. 시간 시간마다 프로그램 다 쫓아다니며 그림 공부해오고 복습하고 질문하고 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하 잠깐의 여행에 이렇게 야무진 꿈을 꾸어본다. 어쨌든 맛을 보았다는 게 중요하다. 알아야 꿈도 꾸는 거니까. 하하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모두 제 갈 길로 흩어진다. 각 나라의 사람들이 잠시 같은 그림으로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헤어진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바쁜 샐러리맨은 회사로, 관광객으로 보이는 인도인은 또 다른 관광으로.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그저 잠깐 함께 공부했을 뿐. 젊은 아가씨 선생님은 한 시간의 수업 끝난 것이 안심인 듯 매우 힘든 일을 하고 난 듯한 표정이다. 많이 힘들었는가 보다.
자, 이제 나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우리 친구들을 찾아가야 한다. 국립자연사박물관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영어로 확실히 익혀놓고.... 히히 물어물어 가야 할 테니까.
빨리 가야 한다 가야 한다 하는데 그런데 아, 어찌 이리 멋진 작품이 많단 말이냐.
하나만 더.
하나만 더.
안돼. 빨리 가야 해.
그러다가
정말 늦겠기에
후다 다다다 다다닥
뛰어라 뛰어. 이젠 정말 가야 한다.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라 달려~ 단체행동에서 빠진 것도 어딘데 지각까지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헐레벌떡 달려라 달려~ 빨리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수도 없이 물어봤던 Could you tell me how to get to the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자연사 박물관 앞에 우리 친구들이 타고 있는 버스가 있다 했겠다. 그런데 자연사 박물관 앞까지 물어물어
왔건만 사람이 없다. 차도 없다. 분명 관광버스들이 대거 대기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다시 묻는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묻고 또 묻는다. 다급해져 나의 상황을 설명한다. 자연사박물관 앞에 오라 해서 왔는데 바로 여기가 자연사박물관 앞인데 아무도 없다고.
내가 물어본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 대답한다. 혹시 뒷골목 말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대형 버스가 뒷골목에 있겠는가. 아니라고 큰길에 있을 거라고 난 주장한다. 큰길이라면 지금 여기가 맞으니 잘 찾아보라 한다.
어쩜 이렇게 주의 깊게 들어주고 함께 걱정해 줄까? 참 친절한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만 하던 영어가 통하는 것도 신기하다. 히히.
헤매고 헤매다 겨우 도착. 난 큰길 가로 갔고 버스랑 친구들은 뒷길 이면도로에 있었던 것이다. 흐유~
헉헉. 뒤늦게 합류한 벌칙으로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기로 한다. ㅎ ㅎ 아, 그래도 무사히 친구들을 만났으니 다행이다. 정말 큰 일 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