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갈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래도 미국까지 왔는데 선물을 사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가이드가 데리고 간 미국 코스트코. 무얼 사나? 친구들은 선물용 쵸코렛과 영양제 등을 산다. 짧은 시간에 이것저것 고르려니 무얼 사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웬만한 건 한국 코스트코에도 다 있다. 영양제가 매우 좋다고 꼭 사라고 옆에서 들 부추기니 짧은 시간에 괜히 마음이 급해져 좋다는 것들을 카트에 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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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좋다는 루테인, 몸에 좋다는 쎈트럼, 무릎에 좋다는 코사민, 뼈에 좋다는 비타민 D, 또 뼈에 좋다는 칼슘, 감기에 좋다는 타이레놀 위에 좋다는 젠탁... 나도 참. 아무 약도 안 먹는 나는 가이드가 좋다는 대로 온갖 약을 충동구매한다. 미쳤다. 선물 받은 영양제들 단 한 번도 제대로 못 챙겨 먹어 결국 유효기간 지나 몽땅 버리면서 과연 이렇게 사간 것들을 나는 다 먹을 것인가? '꼭 필요한 것만 사자!'를 또 깜빡했다. 에잇. 콩!!! 정신 차려랏!!! 커다란 통에 들은 작고 동그란 알갱이 M&M 쵸코렛이 만원밖에 안 한다며 미숙이는 얼른 챙긴다. 덩달아 나도 챙겼지만 저 큰 통을 어찌 가져간단 말이냐. 영양제만으로도 우리들 짐은 차고 넘쳐 핸드캐리 할 가방을 사야 할 판이다.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 빼놓는다. 잘했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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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젠 꿈같은 미국 여행도 그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서양사람들 보다는 중국인과 인도인이 더 많은 식당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는다. 우리 모두는 오늘 하루 긴 스케줄로 많이 지쳐있다. 그런데 식당 안의 그들은 많이 뚱뚱하다. 나의 똥배가 걱정되어 다이어트하는 수준과는 많이 다르다. 뚱뚱하다고 나 자신을 너무 비하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하. 밥을 다 먹고 나서 우리는 두 팀으로 갈라진다. 식당이 호텔과 가깝다 하니 “밥 먹은 것 소화도 시킬 겸 걸어갑시다~ ” 걷자 파와 “다리 아파요. 그냥 차 타고 가요~” 차로 가자 파. 융통성 많은 우리 가이드님, 걸을 사람 걷고 차 탈 사람 차 타잔다. 오예! 히히 난 걷자파에 붙는다. 선선한 저녁에 호텔이 코앞이라는 데 걷지 못할 이유가 없다.
룰루랄라 우리 걷자파는 걸어간다. 어스름 땅거미가 밀려오고 있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미제 큰길을. 하하. 어서 와~ 어서 와~ 이 신호등이 맞는 겨?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호텔이 저 멀리 보이는 데 뱅뱅 돌다 보면 다시 제자리. 머여~ 차들은 쌩쌩 달리고. 건널목 신호등은 생소하고. 어딘가를 눌러야 보행자 신호가 파랗게 변할 텐데 그 어디를 찾지 못하겠다. 여기저기 쑤시고 들추고. 횡단보도 앞에서 바뀌지 않는 정지 신호에 건너지도 못하고 뒤지고 뒤지다 겨우 찾아내 꾸욱 누르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흐유~
아,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가 보인다. 조명이 살짝 들어오기 시작한다. 길에서 헤맸지만 결국 우리 버스를 찾아내기뻐서 자~ 여기를 보세요 하나 둘 셋. 찰칵. 하하. 기념촬영. 앗. 그런데 차 문이 꽉 잠겨 있다. 차 안에서 우리들 짐 꺼내야 하는데. 때마침 등장하는 우리 기사님, 검은 아저씨. 우리 보고 웃는 것도 같다. 오홋.
"저기요 우리~ 짐을 꺼내야 해요." 하려다가 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해하는 그 까만 아저씨를 자세히 보니 체격이랑 거의 비슷하지만 절대 우리 기사는 아니다. 어딘가 다르다. 아니네~ 그가 지나가고 나서 우린 푸하하하 쏟아지는 웃음을 어쩔 줄 모른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다른 흑인 아저씨였던 것이다. 우리도 서양인들에게 그렇지 않을까? 우리에게 그들이 모두 비슷해보이듯이 우리도 그들에겐 하하.
차들만 쌩쌩 달리는 미국 도로를 걸어 무사히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자신만만. 오예. 든든하게 먹은 밥도 다 소화된 것 같고 역시 걷는다는 것은 너무 좋아~ 이제 내일이면 우리 중 일부가 또 떨어져 나간다. 헤어짐은 언제나 너무 싫어~ 또 한 방에 모두 모인다. 한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 얽히고설키고 누워서 뒹굴뒹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팡팡 웃게 만들까? 그냥 좋다. 그냥 웃음 폭발. 하하 푸하하하 깔깔 까르르르 폭풍웃음.
오늘 쇼핑한 것들을 재 점검. 잘 샀을까? 영양제 정말 가서 다 먹을까? 웃음도 끝나고 수다도 다 끝나갈 즈음 갑자기 성애랑 순기랑 바빠진다. 미국을 떠나는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란다. “너희들 운동할 때 입으면 참 좋을 거야.” 하면서 냉장고 티가 두 개씩 들어 있는 걸 한 봉투씩 선물로 준다. 혜정이가 검은색을 골라 그 자리에서 끌러 입어 보는데 옴마야 너무너무 예쁘다. 아.. 나에겐 흰색과 분홍이 배당되었는데 나도 깜장이면 좋겠다 싶어 "나, 깜장으로 바꾸면 안 될까?"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꾹꾹 참는다. 나까지 그러면 너무 혼란일 테니까. 색깔 고르랴 사이즈 고르랴. 서로 자기에게 무엇이 맞을까. 검정했다가 하양 했다가 왁자지껄. 그 와중에 옷 입어보랴 난리도 아닌 북새통이 잠시 이루어진다. 하하.
충동구매로 온갖 약을 사들인 나는 현금이 모자란다. 애초 많이 가져오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현금과 등록된 카드만 결제가 되는 코스트코 특성상 미국에 사는 순기가 대부분 친구들의 결제를 대행해 주고 그날 밤 모두 수금한다. 난, 오홋. 미국에서 현금지급기를 한번 사용해 보려고 오늘 아침으로 미뤘다.
“순기야~ 돈 갚을 께. 그런데 내가 미국에서 현금지급기 쓰는 이 순간을 좀 찍어주셔. ”
오호호홋. 된다. 된다. 그냥 어려워만 보였던 미국에서의 모든 일들 중 하나를 또 수행하는 순간이다. 음하하하하하 모~ 별 거 읍네!!! 헤헤
오홋. 기념으로 영수증도 찍어보자. 크레디트 카드로 모자랐던 현금을 찾아 순기에게 확실히 지불한다. 오호호홋. 참 잘했어요~
오늘은 체크아웃하는 날. 모든 짐을 싸들고 호텔을 떠난다. 일찌감치 아침 먹고 큼직한 트렁크를 낑낑 차에 싣고 우리 모두 출바아알~
“웨스트 버지냐~” 존 덴버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지금 버지니아를 지나고 있다. 선명하게 보이는 '버지니아 주' 표지판. 오홋 정말 시골이네~
그런데 그 한적한 시골을 지나는데 앗. 버스가 움직이질 않는다. 이 한적한 마을에 저 멀리 큰 교통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하이구우~ 큰 사고인가 보다. 차가 막 얽혀있다.
길 가의 한 집에서도 집주인이 나와 무슨 일일까?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다. 멍멍 강아지도 주인을 따라 무슨 일일까? 사고 난 쪽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