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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an 11. 2022

우리 부부 밤마다 PT

3주 연기해주세요~
언제부터 안 왔능교!
12월 17일부터요. 출석 카드 드릴까요?
아임더 이름 치면 되임더.


무뚝뚝한 아저씨. 주인아주머니는 우리만 보면 싱글벙글 입이 찢어질 듯 함박웃음을 날려주시는데 아저씨는 그렇지 않다. 손님 누구에게나 떽떽거리고 화난 얼굴이고 불만이 많다. 나는 있는 대로 생글거리며 그 무뚝뚝한 분으로부터 말을 끄집어낸 거다. 하하 성공이다. 직접 이름을 쳐서 기록하겠다는 친절을 보이시니 말이다. 무슨 얘기냐.


우리 동네 헬스장이다. 나의 단짝 친구 S는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근육운동을 해야 한다고. 그녀의 다그침에 헬스장을 찾아다녔다. 시내 유명하다는 곳에 가보니 쭉쭉빵빵 미녀들에 울퉁불퉁 근육질의 젊은이들로 가득이다. 게다가 매력적 시커먼 운동복을 입은 근육질의 남자가 상담도 한다. 헉!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기계도 헬스장도 번쩍번쩍 무언가 새 기계들로 가득 찬 것 같아 끌리지만 나이 든 내가 가기엔 적당치 않은 것 같다. 패스! 그렇게 헬스장을 찾아다니다 결정을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 중이었다. 앗, 집 앞의 커다란 목욕탕. 5층짜리 건물에 헬스 싸우나 골프 온갖 것들이 쓰여있다. 우리 아파트 단지 바로 앞의 건물. 걸어서 5분 정도? 오래된 이곳이 이제야 눈에 띄다니? 이런 곳에 피티가 있을까? 목욕탕인 걸. 망설여지지만 들어가 봤다.


오홋. 1층은 로비 2층은 여탕 3층은 남탕 4층은 헬스장 5층은 살림집. 그런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집 앞이지만 목욕탕을 가지 않는 우리는 여기 갈 일이 없었다. 우리와 함께 나이 들어 꽤 낙후했지만 규모가 크다. 이사온지 십여 년 세월에 이곳도 많이 낡아있다. 시내에서 내가 보던 세련된 헬스장과는 차이가 크다. 기계들에서도 그 연륜이 나타난다. 온통 옛날 고리짝 고물딱지들 다. 앗, 그런데 소개받은 피티 선생님은 우람한 체격에 온통 울퉁불퉁. 하핫. 시내 한 복판의 트레이너들 못지않다. 시내 헬스장엔 여러 명의 트레이너들이었는데 여긴 이 거대한 곳을 그분 혼자 트레이닝도 헬스장 관리도 맡아한단다. 시간대별로 다 차 있고 겨우 밤 8시 꺼가 마침 비어있다. 오홋. 가격이 시내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그래. 이 정도라면. 덜컥 등록을 했다. 시작이 반이여~ 하핫.                           


일단 내가 시작했다. 감히 PT를 받은 것이다. 시내는 엄청 비싼데 동네 이 가격이라면 해볼 만했다. 한 달 해보니 어째 서방님께 영 미안하다. 그런데 남편은 이런 걸 굳이 돈 내면서 할 리 절대 없다. 그러나 PT선생님께 여쭤다. 남편이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격을 알고 말하려 한다며 같은 시간에 남편과 함께 한다면 얼마를 내야 하느냐고. 다행히 내가 하는 가격에 조금만 더 올려해주겠다고 한다. 남편이 과연? 고집 센 남편이 매일 저녁 나와 함께 헬스장에 가서 PT를 받을까?


해보니 너무 좋더라로 시작해 조심조심 그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일단 가보기만 하면 안 될까? 선생님께서 조금만 더 내면 우리 둘을 한꺼번에 해주시겠다고 했거든. 요즘 피티 얼마나 비싼데 그래도 여기 동네라 이 정도 가격이야. 어쩌고 저쩌고 나름 힘들게 말을 꺼냈는데 앗, 흔쾌히 그래 가보자. 한다. 그리고 세상에  한번 받아보고는 쏙 빠져 나보다 더 PT마니아가 되었다. 인생에 가장 잘하는 투자 같다고. 그러잖아도 근육운동을 해야 할 텐데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몇 개월 전이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근육 운동하라며 아예 피티 전도사가 되었다. 푸하하하


이 헬스장에서 우리 부부는 유명해지는데 하하 와이? 경상도 남자들이 아내와 함께 피티를? 그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단다. 밤마다 피티 선생님 구령 따라 엇둘엇둘 부부 함께 땀 뻘뻘 흘리는 모습이 이쪽에선 영 생소한가 보다. 헬스장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도 안 하는 게 경상도 사나이들이라는데 그것도 함께 피티를? 남편이 하겠다해요? 아지메들이 더 다투어 내게 묻는다. 푸하하하.


열심히 하던 우리 오미크론이 확산되며 방역이 강화되어 못하게 다. 밤 8시가 우리 타임인데 헬스장이 8시 반까지만 운영하게끔 지침이 내려온 것이다. 헬스를 안 하면 목욕탕도 갈 일 없으니 우린 헬스도 목욕탕도 멈췄던 것이다. 어느새 3주가 후딱 지나갔다. 그동안 우린 정말 운동을 1도 안 했다. 딱 하루 스쿼트랑 모든 코어운동을 하던 대로 집에서 요가매트 깔고 했을 뿐이다. 그다음 날부턴 룰루랄라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게 참 할 것 같지만 집에서 하기는 정말 힘들다.


안 되겠다. 조금이라도 하자. 방역은 풀리지 않았기에 우린 조금 이른 시간에 할 수 있을까 여러 번 묻다 드디어 시간을 얻어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생글생글 주인아주머니는 방역 때문에 못하는 것이니 우리 올 때까지 연기해주겠다고 했었다. 마침 그 친절한 주인아주머니가 안 계셔 무뚝뚝한 주인아저씨에게 말해야만 했던 것이다. 안 된다 하면 어떡하지? 괜히 조마조마해지기 까지 했다. 생글생글 있는 대로 웃으며 말하기 참 잘했다. 무서운 아저씨가 부드러운 웃음을 보여주셨다. 역시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고울 수밖에 없다. 푸하하하 파이팅!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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