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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Feb 03. 2022

아드님과 치맥

하하 좋아라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애들 주고 남은 아이스크림을 냉장고 위에 두라 하셨어요. 내가 반장이니까 그런 일을 아주 똘똘하게 잘 해낼 걸로 아신 거죠. 그러나 전 그렇지 못했어요. 발이 안 닿아 까치발을 하면서까지 정말 그걸 냉장고 위에 두었던 거예요. 
하하 정말? 그럼 냉장고 위가 어딘데?
냉동실을 말씀하신 거죠. 
푸하하하 그걸 냉장고 위에 두었다고? 다 녹았겠네.
네.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럼?
나중에 선생님께서 웃으면서 말씀해주셨어요. 
푸하하하 우아 심했다. 


아직도 그 상황을 생각만 하면 깔깔 배꼽 쥐고 웃게 된다. 그게 몇 학년 때인가. 그 여자 선생님일 땐가? 하하 그렇게 우린 추억 찾기에 나섰다. 오랜만에 맥주와 치킨, 치맥이 있으니 남편과 나와 아드님 셋이서 하염없이 옛날 추억여행이다. 정말 끝도 없다. 


어릴 때 아빠는 정말 엄격하셨죠. 그런데 나한 테만 그러셨더라고. 나 이미 대학 가서 서울 있을 때 E는 하루 5시간씩 오락했다던데! 난 중학교 때 이미 독서실을 다녔어요. 엄마가 다니라 하니까. 
독서실에서 공부했어?
그럼 공부하죠. 전 하라는 건 했으니까요. 정말 수동적이었거든요. 
야 내가 E도 중학교 때 꽉 잡았어. 무슨 말이야. 
에이. E가 그러던데요. 자기 오락게임 실컷 했다고. 저는 심지어 독서실 다녀와서 밤에 한 시간 오락하는 거 그것도 못하게 그 자리에서 컴퓨터 전원을 끊어버리고 하셨는데요. 
무슨 말을. 내가 E 꽉 잡았다. 


하하 남편은 그저 꽉 잡았다는 말만 하고 그 개구쟁이 막내가 얼마나 지멋대로였는지를 형은 다 알고 말한다. 나는 이미 손을 놓은 상태였다. 야단치며 관계 나빠지는 것보단 그 애가 무얼 하건 열렬히 응원하며 관계를 좋게 가자 주의였으니까. 


만화책 보다 들키면 아빠는 그 자리에서 쫙쫙 찢어버리셨죠.  
엄마는 만화책이라도 좋다. 책이라면 다 읽어라 주의였고.
네. 엄마는 오락게임도 하게 하셨죠. 
그치. 오락게임이라도 좋다. 컴퓨터와 친해져라 였으니까. 하하


억울하게 몰린 남편은 내가 회사가 바빠서~ 너희들 잠깐 보니까 그때 잘 되라고~ 변명이 자자하다. 하하 끝도 없는 우리의 이야기는 며느리와 어떻게 어려움을 헤쳐나갔는지도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그랬구나. 그랬어. 그저 잘 사는 줄만 알았지. 그렇게 고생들을 했구나.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이 되어있는 아드님과의 이야기는 과거로 미래로 현재로 뿅뿅 끝날 줄을 모른다. 아. 치맥의 위력이라니. 밤이 깊어 간다. 우리의 대화도 깊어 간다. 하하 이런 시간이 정말 좋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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