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화 내는 게 난 정말 싫다
난 가출을 했다.
그가 화 내는 게 난 정말 싫다.
그런데 그가 화를 냈다.
그래서 난 가출을 했다.
그러나 갈 곳이 없다.
그런데 멋진 곳이 생각났다.
'교보문고!!!!'
발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눈 가는 대로,
탈탈탈탈
작은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한다.
눈과 손이 자유롭고
주차할 걱정 없고
난 요즘 버스를 즐긴다.
평일 오전이니
그리 사람은 많지 않다.
독서대에 자리 잡는다.
스탠드 불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기다란 독서대~
아, 얼마나 좋아.
어찌되었건...
이제 부턴 나만의 시간이다.
내가 종종
특별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 오던 곳.
그러나 얼마나 다르냐.
여보~ 나 지금 '남아있는 나날'
읽고 있어.
여보~ 나 지금 배고파~
여보~ 혼자 가서 먹어야하는데 떨려.
차라리 굶을까봐.
여보~ 정말 책 잘 읽힌다.
여보~ 여기 너무 좋아.
그랬을 전화를 난 아예
진동이다 못해 무음으로 해놓고
그것도 성이 안 풀려 꾹 꾸욱꾹
쎄게 눌러 전원을 꺼버린다.
흥!!!!
내가 전화 받나봐라.
흥!!! 흥!!! 흥!!!
내가 분명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에겐 어느 수위가
있다. 거기까지는 가면 안된다.
그걸 알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는 남자 아닌가. 무어 그깢 일로
화를 낸단 말인가?
딱 그가 화내던 장면만
자꾸 클로즈업되어 나타나며
그를 화 나게하기까지의
나의 행동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점점 나의 화만 커진다.
흥!!!!
내가 전화 받나봐.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가출도 했었어요.
몇십년만에 스티븐스를 만나
켄턴양은 말한다.
오홋. 그녀도 가출을?
내 눈을 확 당긴다.
재밌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다.
ㅎㅎ 에라 모르겠다.
흥! 내가 전화 받나 봐!
책이나 실컷 읽는 거다. 흥!
켄턴양은 어찌된 걸까.
아, 사랑이 안 이루어지나.
혹시 크게 아픈 건
아닐까 그런 우울함이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을
지배한다.
그녀의 사랑이 잘
이루어지면 좋을텐데. 아,
다행히 그녀는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티븐스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쨌든
곱게 나이든 모습으로
스티븐스 앞에 나타나는 캔턴양
살짝살짝 어긋나는
이루어질 수도 있었던 사랑
우리 인생에 그런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충직한 집사 스티븐스의
모처럼의 휴가길을 따라
나는 가끔은 너무도 절제하는
그의 사랑에 가슴 졸이며
달링턴경 모시던 최고시절을
흐뭇하게 추억하며
켄턴양과의 아슬아슬
이루어질 뻔!한 사랑을
너무 아쉬워하며
아름다운 책 여행을 마친다.
삶은 다 그렇게 아슬아슬
비껴가는 가 보다.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그래. 이제 난 할 수있어.
4층 후드코트로 간다.
맘대로 골라서 주문하고
벨이 울리면 가져다
먹는 곳이다.
흠..전에 오달달달 떨면서
첫 혼밥하던 때와는 달리
그것도 경험이라고
이젠 제법 씩씩하게 가게마다
둘러보며 고른다.
베트남 쌀국수?
아니야. 전에보니 너무 향이
진하더라. 패스.
냉밀면?
아니 쫌 밥이 안될 것 같아.
패스.
된장찌게?
에이. 집에서 맨날 먹는 걸.
패스.
짜장면.
오 예!!! 먹고 싶었던 거.
"짜장면 주세요."
당당하게 주문하고
당당하게 벨 받고
당당하게 한 자리 차지한다.
구석자리 아닌 한 가운데.
흠... 혼자 먹는다고 모!!!!
그런데... 어떤 남 학생 한명이...
그리고 어떤 젊은 아가씨 한 명이...
내가 터억 자리 잡은 한 가운데
그 왼쪽 옆으로
그 오른 쪽 옆으로
그렇게 혼자 와 앉는다.
핸폰에 코 박은 채.
하핫.
당당하게!!!!
양 쪽에 혼밥족 한 명씩
거느리고 나도 혼밥한다.
엣헴. 음 맛있구만.
그렇게 매 끼니 골라
사먹으며 난 문 닫는 10시까지
있었고 그가 더 골탕먹으라고
이젠 도서관으로 간다.
그곳 열람실은 11시까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11시까지 책보고
글쓰고 하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집에 들어 간다.
입은 다시일미터
화난 상태 유지하고.
흥!!! 흥!!!!! 흥흥흥!!!!!
하루 온종일 화만 내고
있었던 듯이.
아. 그런데
이런 마음상태 좋지 않다.
그렇게 그의 화내던 장면만
생각하니 계속 흥!!! 흥흥!!!
내가 화해 하나 봐!!!
그런데 이거 아니다.
엉엉. 풀어야 한다.
이런 엉망의 마음이
무엇이란 말이냐.
아까운 시간이 그냥 막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