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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27. 2022

똥꼬 수술 14

지금 시각 2월 27일 일요일 오후 7시다. 남편은 오늘 밤 부부모임이 있다. 내가 왜 빠졌다고 말할까? 똥꼬 수술했다고 할까? 남편이 모라고 말했을지 궁금하다. 사전 의논을 할 걸 그랬다. 저녁도 먹고 좌욕도 끝낸 나는 티브이를 틀어놓고 뉴스를 보고 있다. 그냥 기진맥진이다. 왜 나 혼자 남아 이 오인실 병실을 지켜야 하나? 우리 방 모두가 퇴원했다. 아니 우리 방뿐만 아니라 옆방도 그 옆방도 몽땅 비어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금요일 수술한 사람들의 대거 퇴원이다. 그런데 나만 홀로 이 병동을 지키고 있다. 아이고.


의사 선생님은 가장 신뢰가 가는 분인데 이런 묘한 원칙이 있었네. 왜 당신 혼자만 3박 4일 입원을 주장하시는 걸까. 오늘 밤을 잘 보내야 한다. 일단 티브이를 틀었다. 생산적인 일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물론 청소 빨래 밥 같은 집안일을 하나도 안 해 주부 천국 같았지만 갇혀서 밥만 얻어먹으니 나를 생산적인 일로 이끌지는 못한다. 집에 가고 싶다. 내일은 월요일 아침이니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한 뉴스가 전파를 타고 있다. 아, 전쟁은 없어야 하는데.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데. 그냥 누워서 뒹굴뒹굴 티브이나 봐야겠다.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는 상태. 그래 에너지가 다 소진한 느낌이다. 밥은 오래오래 씹어서 맛없게 만들어서 먹었다. 후딱 뜨거울 때 먹는 게 맛있는데 그 와중에 좋은 똥을 생각했다. 꼭꼭 씹어 오래오래 먹어야 똥이 좋다. 전쟁이니 주가가 폭락하겠네. 아이고.


매우 기세 등등하게 생산적인 모습으로 입소했는데 삼일 만에 기진맥진. 아픈 덴 없지만 앉아서 한참 노트북을 두들기니 똥꼬가 아파 누웠다. 누워서 노트북을 두드리는데 별로 흥이 나지 않는다. 테이프 알레르기가 있는 나의 팔은 벌겋다. 아이스 찜질로 가라앉혔으나 일부 벌겋게 된 데가  매우 가렵다. 긁고 싶어 미치겠다. 이제 노트북은 그만하고 조용히 티브이나 보면서 나의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야겠다. 누워서 노트북을 두드리기란 너무 힘드니까. 그렇게 지친 상황으로 신시와 아가씨를 보고 있다. 5인실방에서 혼자 자기란 쉽지 않다. 지금 새벽 세시 자꾸 잠이 깬다.


<계   속>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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