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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26. 2022

안과의사 친구

나에겐 초등학교 동창들이 있다. 그러니까 얼마나 오래된 친구 들이냐 하면 1957년생인 우리가 1970년 2월에 졸업했으니까 1964년부터 함께 학교에 다닌 친구들이다. 광화문 한복판 덕수궁 뒷담에 딱 붙어있던 서울 덕수 국민학교다. 그 담에 난 개구멍을 통해 덕수궁을 자유로 드나들던 짓궂은 남학생들의 무용담에 여학생들은 깜짝 놀란다. 그 옛날에도 엄마들의 치맛바람은 거세어 광화문 살지 않으면서도 그 학교를 다닌 친구들이 꽤 많다. 한 반에 백 명이 넘는 학생들로 한 학년이 열반도 모자라 3부제 수업까지 했던 학교. 3부제란 학생이 너무 많아 교실을 하루에 세 번 나누어 쓰는 제도다. 그래서 매년 학구제 위반이라는 것으로 다른 곳에 사는 학생들을 걸러내던 시절. 주소를 꼭 두 개씩 외우고 다녀야 했고 학교에서 검사 나온다 하면 광화문 주변 아는 집에 위장으로 살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 대대적 검사에 걸려 6학년 때 자기 동네 학교로 쫓겨난 친구들도 꽤 있었으니 우린 그때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한다. 그 동창들이 아이 러브스쿨 때 모여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단톡방에 오늘 아주 귀한 글이 올라왔다. 오래 기억하고 싶어 이곳에 옮긴다.




오늘 내게는 정말 뜻깊은 하루가!


며칠 전 말도 못 하시고 듣지도 못하시는 할머니 한분이 보호자와 오셨는데 전혀 안 보이신다고 방법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진찰 결과 백내장이라 수술만 잘 되면 시력 회복 가능할 것 같다고 하였는데, 문제는 전신마취가 아니고 눈만 국소 마취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소독된 수술포를 전신에 덮어 씌우고 수술을 하자면 수술 중 환자와의 소통이 매우 중요한데 이번 경우는 만에 하나 수술 중 오차가 생겨 환자와의 소통이 필요한 경우 정말 아무 대안이 없는 매우 위험한 상황을 만나기 때문에 며칠을 망설이다가 오늘에야 수술실로 향했다.


다행히 아무 탈없이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환자와 보호자 귀가 전에 잠시 보았는데, 두 분이 고맙다고 수화로 "감사합니다"란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지난 십수 년간 오늘처럼 보람되고 긴장을 한 기억이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내 생애 이런 일이 또 있으려나 싶기도 하다. 몇 년 전 수술을 받은 할머니께서 가시기 전 진찰대에 앉아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원 짜리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주시며 살포시 웃음을 지으시던 모습이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모두에게 감사드리는 맘으로, 오늘 더운 이 하루를 마감하려 한다. "인생 살아보니 인맥보다 치맥이 좋더라" 저녁에 시원한 맥주를 한잔 들 하시게나!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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