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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14. 2022

우리 동네 손칼국수 집

우리 동네는 아파트 정문만 나가면 그야말로 먹거리 골목이라 할 정도로 식당이 많다. 그만큼 사라지는 집도 많고 새로 들어서는 집도 많아 간판 장사만 배를 불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딱 한 집. 아주 작고 너무 볼품없이 보여 들어가기조차 꺼려지는 칼국수 집은 오래도록 바뀌지 않는다. 장사를 하나?


폭염주의보가 연일 터지는 땡땡 땡볕 오후 2시 제일 더운 때였고 집안 청소에 골몰하던 우리는 밥해먹을 기운도 없어 그냥 칼국수나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집밥 귀신 남편이 이렇게 흔쾌히 밖으로 나가자 하는 것은 그도 매우 지쳤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베란다 붙박이장 하나를 맡아 깨끗이 물로 락스로 닦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대대적 손님맞이용 집안 청소 중이니까. 나는 그사이 반대편 붙박이장의 온갖 것을 끄집어내 쓸 것들로만 다시 채워 넣는 작업을 힘차게 하던 중이었다.


룰루랄라 단골 칼국수집에 갔으나 앗. 브레이크 타임! 아니 벌써! 문을 열고 물어보니 사람이 너무 몰려 육수가 다 떨어져 지금 문을 닫고 육수를 새로 끓이는 중이란다. 두 시간은 걸린다는 것이다. 에고 칼국수를 먹기로 한 우리는 할 수 없이 장사할 것 같지도 않은 그 볼품없는 집에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신발 놓는 곳 조금 남겨두고 그대로 방바닥. 신발 벗고 올라가 바닥에 앉는 형태다. 아주 작은 그곳엔 밥상이 꼭 네 개 있고 뒤로 그대로 주방이다. 70대 아주머니 혼자 모든 걸 하는 것 같다.   


도무지 네 개의 밥 상 중 두 개가 차 있었는데 한 곳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그 맞은 편엔 척 보기에도 늘씬하고 멋쟁이인 아가씨가 화장기 없는 얼굴까지는 괜찮은데 무언가 막 펑펑 운 것만 같은 얼굴로 밥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할아버지 옆 밥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그 아가씨와 살짝 비껴 마주 보는 상태가 되었다. 여기서도 비냉이냐 물냉이냐 짜장이냐 짬뽕이냐처럼 갈등이 생긴 나는 반반씩 나누어먹자고 남편을 꼬셔 칼국수와 비빔밥을 시켰다.


그 할아버지는 식사를 마친 상태인가 보다. 그리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바로 뒤 주방에서 식사 준비로 바쁜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나가셨고 그 아가씨 밥이 나왔다. 무얼 시켰나 슬쩍 보니 장터국수다. 우리 맞은 켠에 앉아있으니 자꾸 눈길이 간다. 호호 불어가며 너무도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눈시울이 붉은 것도 같고 아무래도 꽤 울고 난 후 모습 같다. 왜 저 멋쟁이 아가씨가 화장기 하나 없이 홀로 이 허름한 곳에서 밥을 먹을까? 무어 슬픈 일이 있나? 슬픔과 절망 속에 있다가 그래도 밥은 먹어야겠어서 나왔을까? TV 보는 척 힐끔힐끔 그녀를 바라보며 나의 상상력은 작동한다. 실연했을까? 무슨 어려운 일이 있을까? 그래도 저렇게 밥을 맛있게 먹으니 괜찮다. 많이 많이 씩씩하게 드세요. 뭔지 모르지만 속으로 마구 응원을 보낸다.


드디어 우리 밥이 나왔다. 비빔밥과 된장찌개 그리고 칼국수. 난 빈 그릇을 두 개만 달라고 부탁한다. 왜 그러냐고 아주머니가 묻는다.


"아, 서로 반 반씩 나누어먹으려고요."

"그러면 맛없어. 비빔밥에 된장이 강해 그거 먹고 칼국수 먹으면 맛없어."


하면서 아주 마지못해 하신다. 빈 그릇을 주면서도 


"하나씩 먹어야 맛있지. 이거 먹다 저거 먹다 하면 아주 맛없어." 


계속 투덜거리신다. 오홋. 당신 음식에 대한 저 자부심. 좋다. 하하 그래도 어쩌랴. 난 비빔밥도 먹고 싶고 칼국수도 먹고 싶은 걸. 칼국수엔 이상하게 노란 단무지 같은 게 잔뜩 들어가 있다. 웬 칼국수에 단무지를 이렇게 많이 넣었을까? 하면서 먹는데 앗, 그것은 단호박이었다. 아 맛있어.


신나게 먹고 있는데 앞자리 그녀도 다 먹었는가 일어나서 돈을 계산한다. 그런데 우아 일어난 모습을 보니 키가 늘씬하기가 와우. 저 멋진 아가씨가 왜 이런 집에? 화장은 안 했지만 속눈썹은 아주 길게 드리워져 있다. 맨발에 칠해진 매니큐어 색상도 너무 멋지다. 질끈 동여맨 머리임에도 갸름한 얼굴과 기다란 목 날씬한 몸매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 제발 별 일 아니기를. 그녀 펑펑 눈물 쏟으며 운 거 절대 아니기를. 하하 나도 참.


TV에선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재방송되고 있다. 우리를 끝으로 밥상 차리기를 마친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우리가 밥 먹고 있는 곳으로 올라와 철퍼덕 앉아 그 프로를 아주 열심히 본다. 이런 곳엔 대개 드라마가 시끄럽게 틀어져있기 일수인데. 내가 한 마디 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이런 프로를 보시네요."

"난 이런 프로 너무 좋아요. 세계 테마 기행이니 그런 여행 프로만 봐요."


난 진심으로 웃으며 말했다.


"참 좋아요. 이제 훌쩍 해외로 떠나시기만 하면 되네요."


하. 그 순간. 이거 뭐지? 내가 말을 잘 못했음을 깨달았다. 아주머니가 무언가 뜨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냥 '좋아요~'로 끝냈어야 할까? 아니 왜 이 아주머니도 세계 여행 갈 수 있지! 그냥 어색한 채로 계산을 하고 나왔지만 난 진심으로 그 아주머니가 그렇게 열심히 본 곳에 직접 다녀오게 되기를 바랐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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