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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21. 2022

남자 친구 하세오

독후감

도서관에서 순전히 외모만 보고 골라낸 책이 이렇게 재밌을 때 난 참 기분이 좋다. 순전히 외모만. 하하 그렇다. 손에 잘 잡히고 책장이 쉽게 넘어가고 글씨가 크고. 그런 외모만으로 골라낸 책. 작가도 몰라 제목도 몰라 그거 상관없이 골라진 책이 이렇게 재밌을 때 아 난 기분이 너무 좋다.


재밌다. 남자 친구 하세오. 난 처음엔 남자 친구 하세요~로 알았다. 하하 남자 친구 하세요? 남자 친구 하라는 말인가? 했는데 남자 친구 이름이 하세오였다. 일본 책이다. 대학생 때 이야기부터 동거하는 지금까지의 이야기인데 하세오는 여자 주인공의 대학 선배로 학창 시절 종종 찾아가 쿨쿨 잠자곤 하던 남자 친구다. 근육질의 건장한 남자지만 언제나 팔베개를 해주고 참으로 편하게 잠만 잘 수 있게 해 주던 남자. 그러니까 그렇게 학창 시절 함께 많은 잠을 잤어도 절대 섹스는 하지 않았던 관계.


세월이 흘러 여자 주인공은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하고 7년 만에 바로 이 하세오의 연락을 받는다. 그리고 만나 밤까지 함께 지내지만 역시 팔베개를 할 뿐 섹스는 하지 않는다. 7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만나자마자 학창 시절 바로 그때로 돌아가긴 했지만. 


일본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여주인공이 29살에서 30살이 되는 때의 이야기니까. 동거하면서도 유부남 애인과 섹스도 하고 또 하세오라는 섹스는 안 하지만 툭하면 함께 잠을 자는 남자 친구도 있고. 착실한 동거남은 어느 날 주먹으로 그녀를 때려 피가 철철 나고 얼굴이 퉁퉁 붓게 만들고 결국 떠난다. 


혼자된 여주인공이 하세오를 만나지만 역시 섹스를 하지 않는다. 동거하면서도 신지라는 잘생긴 의사 유부남과 툭하면 섹스하던 여주인공. 그 남자의 아내가 둘째 아기를 낳고 몸 풀러 친정 간 새 이 여주인공을 회사 세미나 열리는 곳에 데리고 갔는데 거기 우연히 업무차 왔던 하세오를 따라 나오게 되는 장면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통쾌하다. 섹스만 즐기던 이기적인 유부남을 빵! 차 버리던 순간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세오는 그녀와 섹스를 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가 섹스하는 많은 여자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 둘은 섹스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남은 계속 갖는다. 아주 편안하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남자다. '연인도 애인도 필요 없어요. 하세오가 필요해요.'라는 광고가 있단다. 하하 일본 젊은이들의 사랑 풍속도랄까. 


한 번이라도 믿을 수 있었다면 그건 내게 진실이라는 주인공 말이 유난히 와닿는다. 동거를 하면서도 남자 친구가 있으면서도 유부남과 섹스를 맘껏 즐기는 그게 참 우리 세대에 생소하긴 하지만 순식간에 훌쩍 다 읽을 정도로 심리 묘사가 무언가 통한다. 참 재밌게 읽었다. 그거면 되었다. 



(사진: 친구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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