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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Sep 19. 2022

남자화장실


내릴 때가 다 되어가는데 여자 화장실에 사람이 있다. 급하다. 빨리 내 자리로 돌아가 내릴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 빨리 안 나오나? 할 수 없다 조금 기다린다. 그런데 전혀 나올 기미가 없다. 여자 화장실 맞은편엔 남자 화장실이 있다. 거기는 선명하게 '비었음'이 보인다. 아, 어떻게 할까?


그렇지만 어떻게 남자 화장실을 가? 그래도 내려서 재빨리 리무진을 타고 집에까지 가려면 또 1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데 역사 안의 화장실을 갔다가 리무진 버스를 타려면 시간상 버스를 놓칠 테고. 아 어떡하나 어떡하지? 


그래도 어떻게 남자 화장실을 가? 그렇지만 지금 안 가면 방법이 없는데 아 어떡하나. 왜 여기서는 안 나오는 걸까? 큰 거 보나? 똑똑 노크해볼까? 아니야 요즘은 노크하는 것도 실례라던데. 그냥 가만히 기다려야 된다던데. 아 왜 안 나오는 걸까? 어떡하지? 남자 화장실은 여전히 비어 있다. 어떡하지? 


에라 모르겠다. 그래 남자 화장실을 들어가자. 내릴 때가 다되어 급해진 나는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남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 다행히 남자 화장실에도 소변기가 아닌 여자화장실과 꼭 같은 둥근 변기가 있다. 다행이다. 내가 감히 이런 생각을 한 건 나도 언젠가 여자화장실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여자 아닌 남자가 쓰윽 나오는 걸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 급하면 남자화장실을 이용해도 되겠구나. 


재빨리 볼일을 보고 손을 닦고 조심조심 남자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앗! 바로 코앞에 중년의 남자. 문 앞에 딱 버티고 있다가 아주 이상한 눈길을 보낸다. 뭐야? 이 여자! 참 별일 다 보네. 왜 남자화장실에서 나오는 거야? 바로 그렇게 말을 하는 듯하다. 코앞의 여자화장실엔 이제 '비었음'이 선명하다. 


아, 너무 무안하고 창피해 나도 모르게 속삭인다. "여자 화장실에서 사람이 하도 나오질 않아서요..." 하고는 36계 줄행랑친다. 하도 이상한 눈으로 보기에 제대로 말도 못 하고 황급히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 사이 여자화장실 사람은 볼일 다 보고 나왔는가 보다. 그러니 여자화장실 비어있는데 남자 화장실에서 여자가 나오니 그 남자 째려볼 만했다. 


황급히 내 자리로 돌아가는데 그 남자가 계속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 같아 뒤통수가 켕겨서 혼났다. 너무 이상한 여자 취급을 받았다. 이젠 아무리 급한 상황이어도 남자화장실은 이용하지 말아야겠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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