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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l 08. 2019

16시간 공백의 룰을 깨고 한밤중에 코다리 냉면을!

와우~ 62.1 킬로그램!



내심 걱정했는데 그동안 잰 몸무게 중의 가장 적은 무게 62.1 키로다. 와우~ 와이 내심 걱정을 했느냐 하면 어젯밤 처음으로 16시간 공백의 룰을 깨고 한 밤중에 남편과 함께 전날 코스트코에서 사 온 코다리냉면을 맛있게도 냠냠 신나게 먹었기 때문이다. 월요일인 오늘 아침 일주일에 한 번 행하기로 한 거대한 세리모니, 깨끗이 쏟아내고 깨끗이 닦고 깨끗이 벗고 로션도 안 바르고 무게 나갈 건 모두 내려놓은 채 살포시 체중계에 올라가는 나만의 의식. 와우~ 거기서 62.1킬로가 나온 것이다. 뱃속은 아직도 더부룩한데 말이다. 만약 어젯밤 남편과 그런 걸 먹지 않았다면 나의 몸무게는 오늘 아침 62킬로 아래로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은 후회는 금물. 이미 일어난 일이다. 또 어제는 그럴 만도 했다. 분위기가. 




분위기라니, 어떤 분위기? 어제 주일, 교회에 다녀온 우리는 전날 코스트코에서 장 봐온 것을 그대로 내팽개쳐 두었기 때문에 바빴다. 오이소박이도 담그고 깍두기도 담그고 배추김치도 담가야 했다. 그런데 저녁 8시에 우리 집으로 손님들이 온다. 나는 감리교회를 다니는데 이 곳엔 속회 예배라는 것이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주어진 책의 내용에 따라 그 날치 성경공부를 하고 함께 친목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는 부부가 모여서 하기에 부부 속회라고 한다. 다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 매주 만나 이런저런 온갖 이야기를 하고 기도제목을 나누다 보니 가족 이상으로 참 친하다. 그 속회 예배를 각 집으로 돌아가면서 하는데 오늘 우리 집 차례인 것이다. 교회 끝나고 온 우리는 정말 바빴으니 김치 담그고 대청소를 하고 함께 나눌 간식 준비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후다 다다다닥 그래도 우리 밥은 먹고 해야겠지?  그래서 아무리 급해도 오자마자 우리는 점심을 맛있게 차렸다. 고기를 잘 안 먹는 남편, 그러나 우리 나이에 고기는 꼭 먹어줘야 한다기에 어제 코스트코 옆 농협에서 질 좋은 한우를 사놓았다. 코스트코 고기가 더 질 좋을 수 있을지 모르나 나랑 남편 딱 둘 뿐인데 그곳이 고기는 너무 양이 많다. 그래서 조금만 사려고 그 옆 농협에서 샀다. 요걸 매 끼니 아주 조금씩이라도 먹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아주 조금 고기도 굽고 상추에 쑥갓에 풋고추에 된장찌개에 가지나물에 그런 류의 밥상을 차려 둘이 낑낑 들고 거실 한가운데 커다란 TV 앞으로 왔다. 아무리 바빠도 밥 먹을 땐 드라마~ 하하. 그 선택권은 나에게 있으니 일단 내가 골라놓으면 그는 아주 싫지 않는 한 보는 것이다. 그렇게 골라낸 게 '바람이 분다'. 김하늘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는 모두 괜찮았던 것 같아 골랐다. 감우성도. 처음엔 그냥 그런 그런 드라마인가 보다 하고 보았는데 앗. 그게 아니다. 세상에. 이 남자가 치매라니? 이 젊은 남자가? 시들시들 우리를 팍 끌어당기는 전환. 삼십 대 후반의 너무 사랑해서 결혼한 젊은 부부인데 남자는 아기가 뭐 필요하냐고 아기를 절대 안 갖겠다 하고 여자는 아기를 꼭 가져야만 하겠다 한다. 왜 그럴까? 왜 아기를 안 가지려 할까? 에고... 남자가 그 젊은 남자가 알츠하이머, 치매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짐 되는 게 싫어 자기가 치매라는 사실도 숨기고 막무가내로 아기를 안 가지겠다고 한다. 여자는 아기를 안 가지려면 이혼을 하자고 주장하며 결국 이혼한다. 모 그렇게 진행이 되는데. 음, 본인이 치매라는 사실을 숨기고 남자는 그녀가 정을 떼도록 그렇게 모질게 몰아간다. 아, 그것도 모르는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더니. 이것저것 잔소리가 늘어가고 한숨만 쉬는 남편이 영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진득한 남자의 사랑이야기가 정말 아름답게 펼쳐지는데 조금만 보고 우리는 꺼야만 했다. 일을 해야 했으니까.  아, 그리고 그 남자 주인공에게는 어릴 때부터의 친구가 있었으니 아, 그 남자 둘의 멋진 우정도 정말 기가 막히다. 그런 친구 하나만 있어도 이 세상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 친구를 보며 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나의 여고시절 짝지를 생각해본다. 순기랑 나는 저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 둘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어쨌든 만나서 하는 행동은 순기랑 나랑 만났을 때 하는 행동과 정말 똑같다. 하하 어릴 때 친구는 그래서 귀하다.  


어쨌든 무사히 김치를 다 담갔고 화장실이며 거실이며 손님맞이 대 청소도 후다다닥 실행되었고 그리고 손님을 맞았다. 진지하게 교재 공부를 하고 즐거운 친목의 시간이 되었으니 밤 10시가 넘도록 많은 이야기가 쏟아지고 웃음이 쏟아진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옥계 계곡으로 일박이일 휴가를 가자는 신나는 이야기를 한창 쏟아놓고 그들은 퇴장했다. 모두 은퇴한 그들 중 한 명이 캠핑카를 만들었고 그걸 타고 계곡에 가서 하룻밤 캠핑하고 오기로 온갖 작전을 짰다. 항상 여행은 가기 전 계획 짤 때가 정말 신난다. 회도 먹고 돼지고기도 구워 먹고 이불은 각자 챙겨 오고 긴팔 옷도 챙겨 오고 하하 정말 많은 계획을 짰다. 이미 여행을 떠난 듯 우린 들떴고 신이 났다. 


늦은 밤 그들이 휑하니 모두 떠나고 나니 잔뜩 어질러진 우리들의 먹은 흔적 하며 정신없이 김치 담그랴 대청소하랴 간식 준비하랴 바빴던 우리는 무언가 허탈하다. 그래. 우리 저녁을 못 먹었네. 물론 케이크에 떡에 자몽에 토마토에 참외에 커다란 자두에 히비스커스 빨간 차에 그런 것들을 끝도 없이 먹어 배는 부르지만 그래도 식사는 아니지 않은가. 라면? 아니 어제 사온 코다리냉면! 그래 그거 좋다. 해서 밤 11시가 넘은 그 늦은 시각에 나는 코다리냉면을 삶기 시작했으니 달걀도 삶아 위에 얹어 구색도 갖추고 말이다. 그렇게 거실에 크게 펼쳐져있는 우리들의 먹은 흔적 그 위에 놓고 신나게 코다리 냉면을 그야말로 한밤중에 먹기 시작했으니 아, 맛있다. 아, 맵다. 이거 우리가 코다리 냉면집에 가서 먹던 냉면과 꼭 같네. 차라리 더 깨끗한 거 아냐? 그러게 맛있네. 아, 그런데 나 어떡하지? 사실은 7시 이후에 아무것도 안 먹었어야 하는데. 그런데 속회 예배드리고 모두 먹는 데 나만 안 먹기도 그렇잖아? 그래 일주에 한 번 이날만 하지 않는 것으로 해라. 한 주에 하루쯤 룰을 깨는 것은 괜찮겠지? 그렇게 남편과 함께 합리화를 시키며 둘이 신나게 먹는다. 무언가 먹을 때는 TV 드라마를 함께 보는 우리. 아까 보던 그거. 바람 부는 날! 그 드라마를 켠다. 아, 참 아름다운 이야기다. 냉면을 다 먹고 나자 우리는 가위바위보! 커피 타 오기! 내가 이겼다. 하하 진 남편이 꾸물꾸물 일어나 물을 끓여 맛있게 타 온다. 이럴 때는 또 달달한 믹스커피가 제격이다. 하하 맛있게 커피를 마시면서 보고, 이미 시간은 밤 12시를 넘어가고 있지만, 우리 한 편만 더. 저 상황에 어떻게 여기서 끊어? 한 편만 더 보자. 하면서 새벽 3시까지 있었으니 하하 우리도 참. 쏘파에 널브러져 꼼짝 않고. 아, 머리도 목도 어깨도 아파라. 그러나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아, 그가 연락도 없이 정을 딱 떼고 떠난 지 5년 만에 그녀와 마주치게 되는 그 순간. 아. 감우성도 정말 연기를 잘하고 김하늘도 잘하고 감우성의 남자 친구도 잘하고. 재밌다. 그리고 많이 슬프다. 그렇게 무려 8회까지 초스피드로 보고 우리는 잠을 잤다. 





그리고 오늘 아침 체중계 세리모니를 했으니 그동안 했던 거 모두 도루아미 타불 되었겠다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사이에는 더욱 줄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소수점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런 식으로 하면 다음 주엔 61킬로 대로 내려갈 수도 있겠다. 16시간의 공백시간. 저녁을 7시쯤 모두 끝내고 16시간 공백을 유지하는 것. 즉 다음날 11시에 식사를 하면 되는 것이다. 일찍 일어나 힘들 것 같으면 방탄 커피를 마셔주고 견딜만하면 안 마시고. 그 정도만 하여도 무언가 관리가 되는 것 같아 기쁘다. 어젯밤 룰을 깨고 한 밤중에 먹기 시작하니 무어 더 먹을 거 없나 뒤져보게 되더라. 코다리 냉면을 먹고 또 믹스커피를 신나게 마시고 그리고 자두도 더 먹었고 그리고 꿀꽈배기 맛있는 과자도 한 봉지 뜯어 더 먹었다. 먹지 않을 때는 하나도 안 먹을 수 있는데 무언가 아무 생각 없이 먹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들어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건 분명히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먹을 뿐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 


한 번 룰을 깼다고 이걸로 포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생긴다. 내가 정한 나만의 다이어트지만 그 룰이 깨질 때는 반드시 있다. 어제처럼 밤늦게까지 무언가 꾸역꾸역 먹게 되는 바로 이런 순간 말이다. 그렇다고 완전 포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정한 규칙을 어길 수도 있다. 내가 왜 그랬지? 후회가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자포자기 자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거 안된다. 하루쯤의 실수는 있을 수 있다. 아니 언제고 어떻게든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삶은 갈 수 있다. 골프가 그렇듯이. 언제고 중요한 것은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포기? 그건 아니다. 한 번쯤은 맘대로 한 밤중에 실컷 먹을 수도 있다. 규칙이란 깨지라고 있는 것. 푸하하하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와? 어쨌든 난 기죽을 것도 없고 다시 나만의 내 멋대로 다이어트. 16시간의 공백을 지켜내고 아침에 참기 힘들면 방탄 커피. 아니면 견디기. 딱 요정도이다. 종종 실패를 한다 해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것. 그래 난 오뚝이닷! 헤헤. 그런 마음 자세면 된다. 골프에서 실수를 할 경우 그 홀 자체를 깡그리 잊고 새 홀에 새 맘으로 임해야 하듯이 나의 실패는 깡그리 잊자. 어젯밤 내가 먹은 것 한 밤중에 신나게 먹은 것 이런 것들 까맣게 잊도록 하자. 정말 맛있게 먹고 정말 즐겁게 바람이 분다를 보지 않았는가. 얼마나 멋진 시간을 보냈는가. 그거면 되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꾸역꾸역 먹어대니 속이 아침까지도 더부룩하다. 기분이 그리 상쾌하지 못하다. 요런 느낌은 참 싫다. 16시간 공백일 때는 아침에 참으로 신선했다. 쏙 들어간 배와 함께 무엇이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퐁퐁 솟아나던 그 16시간 공백의 시간.  그거 하루 못했다고 큰일 나는 거 아니다. 다시 지키면 된다. 그래 파이팅!!! 다시 오늘부터 내 멋대로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 시작이다. 아니 이젠 이걸 생활화해도 될 것 같다. 저녁 7시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기. 난 지금까지 잘 해왔고 또 잘할 수 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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