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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Feb 10. 2023

미용실 루비

나랑 남편은 거의 30년째 한 미용실에 다니고 있다. 까마득한 그 옛날부터 예약제를 실시했던 세련된 미용실. 번화가 꽤 유명했던 그 미용실은 번창하다가 지금은 부부가 함께 그 옛날부터의 단골 고객만으로 운영하고 있다. 남편과 아내 딱 둘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예약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그 유명한 원장님께 머리 감김도 받고 많은 서비스를 받는다. 특히 커피 마니아인 그 원장님의 커피는 일품이다. 바쁜 와중에도 꼭 커피를 직접 내려주신다. 그래서 우린 미용실에 갈 땐 커피를 안 마시고 간다. 뉴욕 여행 다녀왔을 때 블루버틀에서 커피도 사다 드렸다. 커피를 아는 분이 그 선물의 매력을 알 테니까. 


그렇게 남편과 나는 한 달에 한 번 함께 가서 머리통은 원장님께 맡겨두고 틀어주는 음악에 주는 커피에 흠뻑 취한다. 그리고 나면 머리가 다 되어있다. 30년 단골이니 그야말로 척하면 척이다. 원장님께서 알아서 머리를 다 해주신다. 단골이란 이런 때 얼마나 편한가. 어떻게 해주세요~ 굳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니까 나랑 남편은 그곳 원장님과 그의 아내 실장님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 어느 날부터 그곳에 새 식구가 생겼다. 루비라는 촌스런 이름의 고양이다. 루비는 종종 내가 앉아야 할 자리에 떡 버티고 앉아 비켜주지 않는다. 난 깨우지 않고 곁에서 기다려준다. 어떤 사람은 오자마자 루비에게 말도 걸고 어루만지기도 하고 정말 친하게 지내는데 난 그게 좀 힘들다. 만지려 해도 어딜 어떻게 만져야 할지 모르겠다. 왕 일어나 버릴까 봐 조심스러워 손을 위에서 허우적대다 에이 하지 말자 살며시 내려놓기 일쑤다. 


그 루비가 오늘도 역시 내가 앉아야 할 의자에서 꼼짝을 않는다. 쿨쿨 자는 걸까? 루비~ 그 어떤 사람처럼 친하게 해보고 싶지만 내겐 영 어색하다. 그냥 곁에서 루비가 깨기까지 기다릴 뿐이다. 미용실 밖에는 가끔 동네의 길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린다. 한 번은 길에 나갔다가 그 길고양이 패거리들에게 심하게 몰매를 맞았다 한다. 그래서 나가길 꺼리지만 그래도 여전히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고 원장님이 문을 열어주면 미용실 주변만 살살 돌다 들어온단다. 


요즘 젊은 아이들은 머리감기고 청소하고 그런 보조 싫어해요. 어서 헤어디자이너만 하고 싶어 하지요. 궂은일 하려는 미용을 배우는 애들은 없단다. 그래서 보조가 필요한 그 원장님은 아예 아무도 직원을 두지 않고 있다. 그게 속이 훨씬 편하다 한다. 그 덕에 우린 원장님께 모든 서비스를 받아 신나지만 원장님과 실장님 부부는 궂은일도 도맡아 해야 하니 무척 힘들게다. 그래도 속 편한 게 더 좋은가 보다. 


예약한 손님 한 두 명이 있을 뿐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원장님과 나의 남편은 음악이야기로 지칠 줄 모른다. 난 틀어주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오늘도 머리는 원장님께 맡긴 채 편안한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향 좋은 커피가 함께 하는 머리가 만들어지는 시간. 하하 루비도 이 공간이 무척 편한가 보다. 내가 머리를 다 마치기까지 몸을 한 번 뒤틀었을 뿐 쿨쿨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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