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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l 18. 2019

87세 엄마 건강검진에 맞춰

의리상 나도 함께 굶어 16시간 간헐적 단식 성공





글 쓰고 싶은 것도 많고, 읽고 싶은 것도 많고, 써야 할 것도 많지만 난 그 모든 걸 딱! 접어두고 있다. 87세 엄마랑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냥 엄마 곁에서 엄마에게만 집중한다. 건강검진을 너와 함께 가면 참 좋겠구나. 씩씩하게 매 년 홀로 받으셨는데 얼마 전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래서 날을 잡았고 오늘 함께 병원에 간다. 그럴 때 나는 모든 걸 끊고 엄마에게만 집중한다. 써야 할 것도, 쓰고픈 것도, 읽어야 할 것도, 읽고픈 것도 정말 많지만. 어떠랴.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두둥실 두리둥실~ 더 이상 브런치 글 읽고 쓰는 것에 스트레스받지 않으리라.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기다. 하하 그거면 된다. 그렇게 난 브런치를 즐기리라. 내 멋대로다.  


이 나이 맞으세요?


건강검진실에 가서 등록을 하는데 간호사가 몇 번씩 엄마 얼굴을 보고 문진서를 보며 되묻는다. 하하 그리고 난 알 수 있다.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87세로 절대 안 보는 간호사 말에 엄마는 금방 얼굴이 환해지신다. 그야말로 함박웃음 가득이시다. 하하 시작이 좋다. 그렇게 엄마는 건강검진실로 들어가셨고 어젯밤부터 검진 때문에 밥을 굶어야만 했던 엄마에게 의리상 함께 쫄쫄 굶은 나는 배가 고파 죽겠다. 


음, 자연스럽게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거야. 서울 나들이하느라 방탄 커피도 안 가지고 왔는데 잘 된 거지. 자연스럽게 16시간의 공복을 만들게 되었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데 건강검진실 문이 스르륵 열리며 엄마가 나오신다. 곁에 따라 나온 간호원이 흉부촬영하고 오세요~ 한다. 엄마를 곁에서 밀착 경호하며 영상 촬영실로 향한다. 한 참을 걸어 도착.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고 나와 기다리세요. 간호사 말 따라 엄마를 탈의실로 모시고 가는데 탈의실 1, 2가 있다. 탈의실 1로 들어가신다. 따라 들어간다. 엄마 옷을 잘 받아놓고 가운으로 갈아입으시게 이것저것 서류를 들어드리며 도와드린다. 다 갈아입고 촬영실 앞에 앉아있으니 엄마 이름이 불려 흉부촬영실로 들어가신다. 보호자는 못 들어가고 문이 닫힌다. 조금 기다리니 문이 쓱 열리며 엄마가 나오신다. 그리고 탈의실로 들어가시는데 앗, 탈의실 2로 들어가신다. 들어갈 때 분명 1에서 갈아입으셨는데. 엄마~ 아까 이 방에서 갈아입으셨잖아요. 하며 살며시 탈의실 1로 모시고 나온다. 살짝 치매가 오는 걸까? 연세 많으신 엄마가 혼자 사시니 사소한 것에도 자꾸 치매로 생각이 간다. 엄마, 스스로 찾아가 보세요. 우리 나왔던 건강검진실. 그리 다시 가야 하거든요. 괜히 이것저것 자꾸 시험해보고 싶어 절대로 내가 길을 인도하지 않는다. 엄마가 가시는 대로 곁에서 부축만 한다. 다행히 잘 찾아가신다. 오홋. 울 엄마, 아직 괜찮으시네~ 다시 건강검진실에 오니 이제 다 끝났어요. 3주 후 결과서가 집으로 배달됩니다. 야호! 이제 점심시간이 다아아~ 





나야 요즘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 중이니 16시간 공복을 잘 참아낼 수 있지만 생으로 굶으신 엄마는 얼마나 많이 배가 고프실까? 견디기 힘드실 게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배가 고프네.라고 자꾸 말하신다. 하하 우리는 정말 맛있는 삼계탕을 먹기로 한다. 죽을 먹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이 엄마 겨우 한 끼 굶었을 뿐인데 모. 위는 건드리지도 않았잖아. 괜찮을 거야. 그래도 간호사에게 물어볼까? 아니 아이 그런 것까지 묻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하하 그렇지? 드디어 룰루랄라 유명한 삼계탕 집으로 향한다. 아, 그런데 배가 고파 죽겠는데 너무 유명한 곳이고 점심시간이어서인지 줄에 줄을 서고 그뿐만이 아니다. 오는 대로 예약지에 이름을 적어야지만 줄 선 것도 인정이 된다. 나도 엄마도 배가 많이 고프지만, 그래도 이런 유명한 곳에서 먹어야 더 맛있으니까 참으며 기다린다. 드디어 자리 잡고 뽀글뽀글 끓는 삼계탕 도착. 아~ 맛있다. 폭풍 흡입. 하하


그득한 배를 끌어안고 느긋하게 산책하듯 걸어서 집으로 간다. 다행히 엄마가 사는 곳  바로 옆에 커다란 종합병원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난 자꾸 말한다. 엄마 얼마나 다행이어요? 이렇게 큰 병원을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거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까 조금만 아프거나 이상하면 엄마는 이 병원에 오시면 되어요. 어디가 잘한다고 멀리 갈 생각 절대 하지 마세요. 가까운 게 제일 좋은 거니까요. 난 자꾸 엄마에게 다짐시킨다. 건강지식이 난무하는 할머니들은 정보가 많다. 그래서 툭하면 관절은 어디가 좋다더라. 허리에는 어디라더라. 치매는 어디가 좋다더라. 그러면서 할머니들 사이에 유행하는 병원에 가시려 한다. 그때마다 나는 말린다. 엄마, 가까운 곳이 제일 좋을 거야. 가까운데 다니세요. 멀리 가지 말고. 모든 과가 다 있는데 굳이 어디 멀리까지. 좋으면 얼마나 좋다고. 그러지 말고 근처 병원의 의사 선생님을 믿으세요. 그게 최고입니다. 난 자꾸 그렇게 말한다. 이제는 엄마도 가까운데 있는 그 큰 병원을 신뢰한다. 가까우니까 참 좋아. 하시면서. 




집에 가는 길에 엄마가 아침마다 산책하는 아주 작은 공원이 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찻길가 인도가 아닌 공원 안으로 들어가 걸어간다. 그런데 공원 가운데쯤 왔을 때 아, 안녕하세요. 아, 그동안 왜 안 보이셨어요? 공원 한가운데 벤치에 앉아계신 어느 분과 반갑게 인사한다. 엄마보다 많이 젊어 보이는 분이 보호자와 함께 앉아계신다. 나, 큰 수술받았어요. 운동도 하나 소용없어요. 뇌가 터져 난리 낫었어요. 이제는 괜찮지만 그래도 걷는 게 어려워요. 그래서 누가 있어야지만 공원에 나올 수 있어요. 넘어질까 봐 혼자는 못 다녀요. 운동도 다 소용없어요. 그분은 자꾸 말끝마다 운동도 다 소용없어요 를 붙이신다. 한참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말한다. 저분이 정말 운동을 열심히 하셨거든. 이 곳을 매일 정말 열심히 많이 걸으셨고 운동기기란 기기는 모두 하고 이 곳에서 제일 열심이셨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안 보였거든. 그래서 자꾸 운동도 다 소용없다 말하는 거야. 그럴 만도 하지. 정말 열심히 운동했거든. 아하 그래서구나. 그분은 누군가 보호자가 오기만을 기다려 당신이 열심히 운동하시던 그곳에 잠깐이나마 걸어 나오시는 것이다. 운동도 다 소용없다. 그 말을 여러 번 하셨다. 안타깝다. 그런데 쓰러지시다니. 계속 운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집에 가는 길에 아름다운 가게도 있다. 엄마 저기 들어가 볼까? 그럴까? 하하 사람도 많다. 온갖 게 다 있다. 이것저것 옷을 골라본다. 세상에. 감이 무척 좋고 색깔도 너무 고운 티셔츠가 도무지 3,500원. 엄마 이거 참 예쁘다. 나도 내 스타일의 블라우스를 단돈 3,500원에 골라냈지만 아무래도 너무 끼는 것 같아 그만둔다. 엄마 티셔츠만 하나 사 가지고 나온다. 하하 그곳에는 정말 별거별거 다 있다. 구경하는 것도 참 재밌다. 모자도 가방도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 충동구매는 지양하고 나온다. 




아, 엄마 화장품 사야지요? 기초화장품 떨어졌다 하셨죠. 근처 롯데마트에 들어간다. 집에 가기 전에 밖의 일을 다 보고 가자고 우리는 결론 낸 것이다. 멋진 영양크림과 기초 세트를 골라냈는데 어디가 나을까 두 군데를 뒤져보다가 아, 인터넷! 엄마 기다려보세요. 이따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화장품가게를 나와 우리는 근처 롯데리아로 간다. 같은 화장품이 쿠팡에 훨씬 싼 가격에 나와있다. 보여드리니 우아 젊은 애들은 얼마나 싸게 사는 걸까? 신기해하셔서 나는 직접 구매하는 걸 보여드린다. 우리 딸 젊어서 이런 것도 잘하네. 하하 난 엄마 앞에서 자랑스럽게 인터넷 구매를 보여드리며 젊음을 과시한다. 푸하하하. 커다란 팥빙수가 싸기도 하지. 단돈 3,500원에 인절미 듬뿍, 팥 듬뿍인 팥빙수를 엄마랑 빡빡 긁어 바닥까지 다 먹는다. 하하 아, 시원하고 맛있다. 


"난 사이즈를 몰라." 하는 엄마에게 입어보시게 하고 맘에 들어하시는 브래지어를 사드린다. 그리고도 이런저런 옷도 구경하고 지하 식품부도 무어 살 거 없을까 두리번거리다 괜히 쓸데없는 거 사지 말자하여 맛있게 생긴 아삭 복숭아만 한 박스 산다. 그런데 이젠 정말 다리가 아파하셔서 집으로 간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각자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함께 벌렁 침대에 누워 얼굴에 마사지팩을 붙인다. 그리고 시작된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그때 그랬어? 엄마는 몰랐네. 아, 엄마. 내가 그렇게 크게 사춘기를 앓았는데 정말 몰랐어? 글쎄 그냥 어린애들 그러다 말겠지 했겠지. 믿었으니까. 넌 참 착실했거든 공부 잘하고. 이런저런 옛날 아주 옛날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엄마 그래도 우리 9시 뉴스는 봐야 세상 돌아가는 걸 알겠지요? 그렇게 거실로 나와 뉴스를 본다. 그리고 이제 엄마랑 같이 잠을 잘 것이다. 엄마 침대에서 손을 꼭 잡고 돌아가신 아빠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딸과 정말 찐하게 데이트했네~ 엄마가 많이 좋아하신다. 그래서 이 밤, 나도 참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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