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아, 운전도 힘들겠어. 앞이 하나도 안 보이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 쏟아지는 빗속에 난감해한다.
일 때문에 홀로 창원에 간 오빠는 비 때문에
언제 도착될지 모르겠단다.
고속도로의 차들이 꼼짝도 안 한단다.
"오빠는 늦게 오더라도 예약을 했으니 가야지."
하면서 너무 비가 와 가기 싫은 발길을 겨우 재촉하며
엄마, 나, 새언니 모두 차에 올랐다.
미국에서 온 오빠가 한 턱 낸다 했으니까.
아, 그러나 쏴아 쏴아
양동이로 퍼붓듯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폭탄은 자동차 앞 유리를 가득 메운다.
"앞이 하나도 안 보여."
남편이 어쩔 줄 모른다.
게다가 번쩍번쩍 빛이 쫙 퍼지더니
우르릉 꽝꽝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띵동 띵동 핸드폰에선 폭우경보가 계속이다.
그뿐인가.
정작 물주인 오빠는
창원에서 오는 도로에 묶여
언제 도착할지 알 수도 없단다.
취소 취소 취소를 해야겠다.
"죄송합니다. 오늘 6시 예약했던 사람인데
비가 너무 와서 갈 수가 없어요. 죄송합니다."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취소하고
우린 차를 돌려 집으로 왔다.
그리고 다음날 토요일.
"어제 너무 미안했어. 다시 가자."
드르륵 예약.
그러나 우린 경주에 갔다 여기저기 들러보다
늦은 점심을 하는 통에 배가 그득하다.
6시 저녁시간이 되어도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다.
"아, 예약하지 말걸."
예약만 안 했으면 굳이 밥 먹으러
다시 나올 필요도 없었을 것을.
전날처럼 세차게 내리지는 않지만
오늘도 우중충 하늘엔 시커먼 구름 가득에
간간이 비가 내린다.
정말 나오기 싫은 저녁이다.
"그래도 예약했으니 가야지. "
"아무렴. 오늘 또 취소할 순 없지."
우리 다섯은 갔다.
사장님이 반갑게 환영해 주신다.
"92세 우리 엄마고요. 오빠... 새언니..."
난 친절한 사장님께 우리 가족 소개를 한다.
오빠는 수프로 해물탕을 시키고
메인으로 칠리새우와 양장피 잡채를 시킨다.
비가 쏟아지는 우중충한 날씨에
수프는 그야말로 뜨끈뜨끈 너무 맛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우리 배는 너무 불러서
빼갈과 함께 했지만 많이 남는다.
"미국에선 이런 거 당연히 다 싸가지."
우린... 중국집에서 남은 요리 싸 온 적이 있던가?
그런 적 없는 것 같은데 말해볼까?
그래. 아깝다. 말해보자.
"너무 많이 남았는데 싸가도 될까요?"
조심스러운 나의 물음에 이게 웬걸.
"네. 네. 그럼요."
너무도 친절하게 답해주시며
사장님이 직접 통을 가져다주신다.
뜨끈뜨끈 해물탕과
양장피 잡채. 칠리 새우를 담는다.
이십여 년 단골인 그 사장님께
비 온다고 취소한 게 미안해 다시 가니
정성껏 정말 정성껏 우리를 대접해 주신다.
배가 불러도
하하 그게 너무 좋다.
다시 가길 잘했다.
역시 사람은 오랜 인연이 좋다.
오빠에게도 자랑한다.
"우리 이십 년도 넘은 단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