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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Nov 15. 2024

점심 드시고 가실래요?

우리는 롯데백화점에서 원어민 영어 수업을 한다.

수업이 끝나면 꼭 2차 3차를 간다.


2차는 거기 멤버십 카드가 있는 엄마들 덕에

백화점 특별 카페에 들어가 세 잔씩 가능하므로

나누어 마시며 이야기하는 거다.


돌아가면서 특별 룸을 예약해 두어

우린 맘껏 소리치며 수다를 떨 수 있는 구조다.


그 후 3차는 모두 함께 밥을 먹으러 간다.

백화점 8층에 짜장면이 5,900원 하는 곳이 있어

게다가 룸도 있어 우리가 줄곧 사용했는데


너무 싸게 받아서인지

망했나 보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중국집이 사라졌다.


그래서 우린 가성비 좋은

다른 식당을 찾아야만 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차를 마시고 나서

다 같이 헤어지는 분위기다.


즐겁게 대화를 하고 모두

밥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헤어지길래 난 곁에 있는

엄마에게 물어봤다.


모두 헤어지는 분위기인가 보아요?


네. 오늘은 밥 안 먹나 보네요.


하면서 난 화장실을 갔다 갈 거라며

화장실로 향했고

그녀도 화장실 갔다 간다며

나랑 함께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그녀가 내게 묻는다.


매우 젊고 세련되고 예쁜 엄마다.

20대 때 유럽에 100일 동안

자유여행을 다녀오기도 한


영어를 무척 잘하고

불어도 잘하고

테니스와 등산을 즐기는

아주 예쁘고 매력적인 엄마다.


점심 드시고 가실래요?


앗, 그녀와 나 단 둘 뿐이다.

매우 젊고 세련된 그녀와 나

단 둘이서만?


난 어색했다.

여러 명이 함께 있을 땐 모르지만

일단 헤어지는 분위기면 그걸로 끝.


다음에 사람 많을 때

함께 밥을 먹어야지

따로 둘이서...


어색할 것도 같고.

그리고 할 일도 많고.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같이 수업했던 엄마들과 함께

수다 떨 땐 그 많을 일을 제치고

수다에 동참했지만


따로 둘이서?


요건 좀 어색하다.

그래서 사양했다.


아, 내가 여행 다녀와서 할 일이 좀 있고.

식사는 다음에 해요.


했지만 영 마음이 찜찜하다.


아, 혹시 밥을 먹고 가야 하는?


아니요. 저는 그냥 출근하면 돼요.


아, 출근? 그럼 밥을 먹고 가야겠네?


아니요. 집에 잠깐 들르면 돼요.


아, 여기서 난


아, 그럼 그렇게 해요.

우리 다음에 봐요.


하고 헤어졌는데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녀는 밥을 먹고

출근해야 하는 입장인데 그렇다면

함께 밥을 먹여 보내지.


어쩌자고 거기서

나만의 자유시간이 생겼다고

그거 까먹는 걸 아까워했을까.


난 배려심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힘들게 말했을 텐데

기꺼이


네, 좋아요. 함께 밥 먹고 가요.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거기서 문득 나만의 자유시간이

생각났을까.


두고두고 미안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녀 역시

둘이 남게 되니 예의상 그래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하튼 아직 그리 친하지도 않은데

딱 둘이서 밥을 먹긴 어색한 건 사실이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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