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8일. 강아지 별로 떠난 반려견 이야기
선물처럼 왔다가 떠난 녀석의 샴푸를 빼던 날
아무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물건에 대한 애정은 컸다.
특히 녀석의 흔적이 묻은 물건은 유난히 소중했다.
아주 가끔, 녀석의 물건이 안 보이면
엄마는 “낡아서 버렸어” 하고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그런 걸 까맣게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나 찾곤 했다.
그리고, 엄마가 이미 버린 뒤라는 걸 알게 되면
마음이 무너졌다.
결국 짜증을 낸 적도 있다.
"왜 내 물건은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 맘대로 버려요?"
엄마는 모른다.
내게는 추억이 깃든 물건이라는 걸.
아직도 나를 다 알지 못하신다.
그래서일까.
녀석을 떠나보낸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녀석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따로 모아 두어야만 했다.
한편으로는,
그 물건들을 바라보는 게 더 슬퍼서였다.
돌아오지 않는 작은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날,
가장 마음을 아프게 만든 건 두 개의 샴푸였다.
짙은 노란빛 아로마 향이 나는 큰 샴푸와
하얀색 소나무 향의 작은 약용 샴푸.
큰 샴푸는 평소에 사용하던 것이고,
약용 샴푸는 녀석이 걷지 못하던 시절,
오줌 독성으로 인해 배 쪽 피부가 상했을 때부터
썼던 것이었다.
일을 마치면 늘 물부터 끓였다.
뜨거운 물이 안 나와 큰 커피포트에 물을 데우고,
세숫대야를 꺼냈던 날들.
아픈 뒤로는 살이 빠져
세숫대야 안에 쏙 들어가게 된 녀석이
나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돌리던 순간들.
그 녀석의 몸에
조심스레 약용 샴푸를 바르고
목욕을 시켰던 날들.
추울까 싶어 타월로 털을 닦아내고
드라이기로 털을 말리던 시간들.
그때마다 코끝에 남았던 소나무 향.
자식 같고, 아기 같아서
매일 목욕을 시켜도 하루하루가 새롭고 행복했던 시간들.
모두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엄마가 없던 날,
두 개의 샴푸를 빼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선반 꼭대기에 놓인 샴푸를 바라보는 눈.
빼기 싫어 머뭇거리는 마음.
움직이지 못하는 손.
샴푸에 손이 닿는 순간, 마음이 떨리며 말했다.
“이 샴푸를 치우는 순간,
녀석이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거야…”
마음은 여전히 샴푸를 그대로 두고 싶어 했다.
솔직히, 나도 녀석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손을 뻗어 샴푸를 들고
화장실 문턱을 넘었다.
녀석이 내게 선물처럼 남긴 물건들.
내게 선물처럼 왔다가 떠난 녀석의 흔적이
물건 어디 남아 있을까,
혹시라도 내가 녀석과의 추억을 잊을까 두려워서.
작고 하찮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대할 수 없었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녀석의 물건을 잘 간직할 것이다.
내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함께할 것이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향은 남아 있지만 샴푸의 향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