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 코트 속 강아지

6082일 강아지 별로 떠난 반려견 이야기

by Heba

7월의 어느 날


우리에게 온 지 석 달쯤 되던 어느 해 7월.

목적지 없이 강아지를 안고 대문을 나섰다.


기다랗고 가파른 계단의 마지막을 내려섰을 때,

내 팔에 안겨 있던 녀석이 갑자기 구토를 했다.


묽은 토사물이 사방으로 튀는 순간,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나, 어째… 강아지가 아픈가 보네.”


장염 진단을 받은 녀석이 링거를 맞는 동안,

병원 문밖에서 조카와 쪼그리고 앉아 걱정했었다.




8월의 어느 날


그날은 내 ‘관심’이란 게 무엇인지를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등에 긁힌 듯한 작은 상처 하나.

갈색 털에 가려졌지만 내 눈엔 보였다.


벌레라도 있는지 장난감 돋보기를 들여다보고,

피가 맺힌 피부엔 빨간 약물 한 방울이 퍼졌다.


새끼손가락 크기만큼의 피부질환은 치료됐지만,

그 자리엔 다시 털이 나지 않았다.


내 몸에 난 상처처럼 속상함이 오래갔다.




9월의 어느 날


외출 후 돌아온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 강아지.

작은 몸에 풍선처럼 부푼 배가 옆구리까지 빵빵했다.


주방 쓰레기통에 버려진 밤껍데기를 몰래 주워 먹은 것.

마침 동생에게 발견된 녀석은 병원에 다녀왔다.


혹시 수술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10월의 어느 가을날


나, 동생, 조카는 인천에 1박 2일 일정이 있었다.


무럭무럭 자라는 게 보이지 않았어도

이미 제법 자란 녀석.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전철을 타고 함께 가보기로 했다.


고민 끝에 롱니트 코트 안에 녀석을 숨겼다.

불룩 튀어나온 옷은 언뜻 보면 아기처럼 보였다.


철도 직원의 눈치를 살폈지만 무사히 통과했다.


퇴근길 전철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고,

승객들에 떠밀릴 때면

‘깽깽’ 하고 울기라도 할까 봐 긴장됐다.


노약자석 앞에 서서 가는 내 팔 엔 통증이 밀려왔고,

어깨는 빠질 듯 아팠다.


밀착된 사람들의 열기로

몸속까지 덥다고 인식되는 순간,

땀이 땀구멍마다 솟아났다.


중간에 내려 땀 좀 식히고 탈까 고민하고 있는데,

“애기 엄마, 여기 앉아요. 옷 속에 있는 애기 많이 덥겠어요.”

할머니가 자리를 양보해 주셨지만.


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

내 몸을 더 뜨겁게 만들었다.


결국, 녀석도 더웠는지

니트 목 부분으로 코만 내밀고 숨만 쉬더니—


아뿔싸.

막을 틈도 없이 내 턱 아래서 얼굴을 쑥 내밀었다.


팔랑거리는 큰 귀, 동그랗고 까만 두 눈,

깜장코와 뾰족한 주둥이.


앞에 앉은 할머니는 할 말을 잃으셨다.


화끈거리는 내 얼굴,

발갛게 민망해진 두 눈은

밤 풍경이 휙휙 지나가는 창밖을 향했다.


강아지는 신이 나서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며 코로 흠흠거렸다.




소중했던 시간들이었던 탓일까.

더 나이가 들면 잊힐까 두렵다.


하지만,

녀석과 함께했던 그 행복한 시간은

항상 어제처럼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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