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2일. 강아지별로 떠난 반려견 이야기
강아지 녀석은 방이든 화장실이든 내 옆에 꼭 붙어 있으려 했다.
내가 보이지 않으면 이 방, 저 방을 부지런히 끼웃거리며 나를 찾았다.
나는 그런 녀석이 귀엽기도 하고 장난을 치고 싶어
문 뒤에 조용히 숨어보곤 했다.
그러면 네 발이 종종걸음으로 바빠졌다.
녀석은 문지방에 앞발을 올린 채, 방 안에 내가 있는지 살폈고, 익숙한 냄새가 나면 잠시 망설이다가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몸을 옆으로 돌려 다른 방으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녀석은 한 번도 고개를 들거나 문 뒤로 머리를 넘겨 나를 확인하진 않았다.
방과 방 사이를 오가며 내가 있는 곳을 찾지 못하면,
결국 나는 이름을 불러줄 수밖에 없었다.
“조니.”
그제야 녀석은 문 뒤에 숨어 있던 나를 발견했고,
반가움과 화풀이를 섞은 듯 정강이를 깨알같이 물었다.
그리고 앞니로 잘근잘근 씹듯이 씹었다.
그럴 땐 얼마나 아픈지, 눈물이 핑 도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개와도 숨바꼭질을 할 수 있다는 걸.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 시간이 즐겁다는 걸.
한 번은 조카에게 이 얘기를 들려줬다.
그날 이후, 우리 셋은 자주 숨바꼭질을 했다.
녀석은 늘 술래였고,
조카와 나는 숨을 곳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했다.
문 뒤, 침대 위 이불속, 침대 아래, 옷 행거 사이, 커튼 뒤, 옷장 속….
우리는 온 집안을 숨는 장소로 삼았다.
녀석은 고개를 들고 흠흠거리며 냄새를 감지하려 애썼지만,
미묘한 냄새만으로는 우릴 정확히 찾긴 어려워 보였다.
못 찾을 것 같으면 우리가 먼저 슬쩍 있는 곳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럼 녀석은 신나게 달려와 꼭 한 가지 행동을 했다.
고개를 들고 시끄럽게 짖은 후,
우리의 정강이를 꼬집듯 물고 꼭꼭 씹었다.
그 꼬집는 듯한 통증은 마치 송곳으로 귓속을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그럴 땐 책이든 손이든 급히 녀석의 입을 막아야 했다.
숨바꼭질은,
한 살 전후였던 녀석과 초등학교 1학년이던 조카, 그리고 나.
우리 셋이 함께한 유일한 놀이였다.
그리고 그 놀이는 나에게 기억 재소환이란 걸 꺼내주었다.
나는 녀석이 '문 뒤로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며칠 동안 숨바꼭질 놀이에서 내가 문 뒤에 숨어 있었음에도,
녀석은 근처까지 왔다가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행동을 다시금 확인했고,
그걸 이용해 놀이를 이어가곤 했던 것이다.
녀석을 입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녀석과 함께 노량진 학원가로 산책을 가던 길이었다.
녀석은 어려 목줄 없이 앞장서 걷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
좁디좁은 옆 골목으로 조용히 몸을 숨겼다.
‘내가 이름을 부르면, 어디서 부르는지 알겠지?’
개는 소리를 잘 듣는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골목 안에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조심스레 이름을
불렀다.
“조니.”
녀석은 귀를 쫑긋 세우더니,
내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골목 안에서 몸을 드러내고 있었는데도,
녀석은 휙— 하고 내 앞을 지나쳐 버렸다.
당황한 나는 다시 이름을 불렀고,
녀석은 끽— 서더니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다시 달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가 있는 골목을 그냥 지나쳐갔다.
그제야 알았다.
질주하는 개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걸.
그 순간,
‘이렇게 한순간에 개를 잃어버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장난이 아니라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었단 걸 깨달았다.
나는 급히 골목 밖으로 나와, 녀석이 나를 알아보도록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의 내가 참 무지했다.
개는 전속력으로 달릴 때 균형을 잡기 위해 정면을
응시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지거나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걸 지금은 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 하나.
개의 후각은 아무리 뛰어나도
바람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냄새의 정확도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우리 강아지, 그때 많이 놀랐을 것이다.
사랑하지만 놓칠 수도 있는 관계라는 거.
지금도 또렷한 이 기억.
너무 미안했던 마음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아서이다.